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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종대왕 태실(景宗大王胎室)
    답사는 즐거워/문화재답사 2016. 8. 2. 09:30


    경종대왕 태실(景宗大王胎室) 


    충주지역 풍수문화답사를 준비 중에 사전 답사형태로 다녀오게 되었다. 여러곳을 방문했는데 이곳에 경종대왕의 태봉이 있는줄은 모르고 문화재를 뒤적이다 우연히 알게 되었다. 마을 한 가운데에 있는데 비교적 도로도 잘 갖춰져서 찾기는 쉬었다.

    태실이 있는 곳은 대부분 태봉으로 명명하고 그 정상에 태실을 위치시킨다. 태봉은 낮으마하면서도 모양이 솥을 엎어놓은 형태 즉 복부형이 주를 이루는데 이런 곳은 부귀영화를 주관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경종대왕의 태실이 있는 이곳도 다른 곳과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일제시대에 태항아리는 수탈되었고 석물들만 흩어져 있던것을 1976년에 모아서 복원했다고 하는데 다행이 석물이 그대로 있었던 모양이다. 눈에 띠게 새로운 석재로 복원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오르는데 상당히 가파르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사방이 트이면서도 멀리서 산이 둘러주어 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좋은 곳이다.



    경종대왕 태실(景宗大王胎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호. 태봉마을의 서쪽으로 볼록하게 솟은 산봉우리가 있는데, 이 산을 속칭 태봉(胎峰)이라 부르고 있으며 후삼봉(後三峰)에서 북쪽으로 뻗은 산줄기의 끝에 위치한다.

    1688년(경종 14) 10월 22일에 후궁인 희빈장씨(禧嬪張氏)의 몸에서 숙종의 첫왕자로 태어나 왕실의 예에 따라 일등태봉인 이곳을 골라 이조판서인 안태사(按胎使) 심재(沈榟)의 집례로 다음해 2월 22일 진시(辰時)에 태항아리를 석함에 넣어 장태(藏胎)한 뒤 봉토하였다.

    후에 왕으로 즉위한 경종은 관례에 따라 그의 태실을 석물로 가봉(加封)하여야 하나 재위 4년중에 이를 이루지 못하고 승하하였으므로 다음의 왕인 1756년(영조 2)에 이르러 지금과 같은 석물로 장식된 태실로서 격식을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 경종태실은 1831년(순조 31)에 주민 김군첨(金君瞻) 등이 태실직이에게 화를 입히려고 태실의 석물 일부를 훼손하는 변작사건이 일어나 다음해에 보수한 일이 있으며, 1928년에도 태항아리를 꺼내 가면서 파헤쳐져 석물이 엄정면사무소까지 옮겨져 있던 것을 1976년에 원위치에 복원하였다.

    태실은 중앙에 사각의 하대석을 놓고 그 위에 구형(球形)의 중동석(中童石)을 놓은 다음 보주가 있는 팔각의 옥개석을 얹어 석실을 만들고 주위에 팔각으로 전석(磚石)을 깔고 보호난간을 설치한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이며, 태실 앞에는 귀부와 이수를 갖추고 “경종대왕태실(景宗大王胎室)”이라 쓰여진 태실비가 세워져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발췌>

     

    문화재지정 

    충청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6호

    문화재명칭

    경종대왕 태실(景宗大王胎室)

    소재지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

    관리자(연락처)

    충청북도

     

    ▼ 경종대왕 태실 측경..

    ▼ 경종대왕 태실 안내문

    ▼ 경종대왕 태실이 있는 태봉의 소나무... 정겹다.

    ▼ 경종대왕 태실비

    ▼ 경종대왕 태실비 정면...

    ▼ 경종대왕 태실비 후면...

    ▼ 경종대왕 태실 측후경

    ▼ 경종대왕 태실

    ▼ 경종대왕 태실의 바닥에 깐 전석...

    ▼ 경종대왕 태실 후경


    ▼ 경종대왕 태실 옆에 세워져 있는 원자일때 태실비

    ▼ 경종대왕 태실이 있는 태봉... 가운데 봉우리...

    ▼ 경종대왕 태실에서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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