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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주지역 문화유산답사1(고구려비, 중원탑, 억정사대지국사비, 백운암철조여래좌상)
    답사는 즐거워/문화재답사 2016. 8. 4. 10:00


    충주지역 문화유산답사1 


    지난해에 충주지역 풍수문화답사를 다녀오려다가 여의치 않아 금년으로 미뤘는데 봄에는 여러가지 일정과 겹쳐서 올 가을로 예정했다. 충주하면 떠오르는 고구려비, 중원탑, 탄금대와 더불어 어떤 곳을 넣을지 고민되어 일단 충주에 있는 문화재를 두루 확인해볼 생각으로 몇군데를 다녀왔다.

    일단 서울에서 진입하기 쉬운 청룡사지, 고구려비, 중앙탑, 탄금대를 생각하고 있다. 한꺼번에 다올리려면 지면을 많이 차지해서 두 세번으로 나뉘어서 올릴 예정이다.



    충주 고구려비(忠州 高句麗碑)

     

    국보 제205호. 총높이 203㎝, 비면높이 144㎝, 너비 55㎝. 1979년 4월 충주 문화재동호인의 모임인 예성동호회의 제보를 받은 단국대학교 학술조사단의 조사에 의해 학계에 보고되었다.

    고구려 광개토왕릉비를 축소한 듯한 모양의 4면비이다. 화강암의 표면에 3~5㎝의 크기로 글자를 새겼고, 글자체는 예서에 가까운 해서이다. 마멸이 심해 앞면과 좌측 면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판독할 수 없으며, 그때문에 비 자체를 4면비가 아닌 3면비로 보는 견해도 있다. 비문의 내용은 단편적이지만 당시 신라와 고구려의 국제관계·영역문제를 비롯해 고구려인의 국제질서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판독할 수 있는 글자가 비교적 많은 앞면의 경우 10행에 각 해당 글자수는 23자이다. 그리고 좌측 면은 7행에 각 행마다 23자가 새겨져 있다. 그러나 우측 면과 뒷면은 글자의 흔적을 확인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총글자수를 산정하기는 어렵다. 첫머리에 '고려대왕'이라는 구절이 있고, 대형·주부·대사자 등 고구려 관등이 자주 나와 이 비가 고구려에 의해 세워졌다는 증거가 된다. 당시 고구려는 신라를 아우(弟)와 같은 위치로 대하고 있었다.

    비문에서는 고려 대왕과 신라 매금왕이 형제처럼 위아래로 화합하여 '수천'하자는 구절이 있다. 수천은 천도 또는 천제의 뜻을 지켜나간다는 의미이다. 또 고구려왕이 남하하여 신라왕을 부른 뒤 신라왕과 그 신하들에게 의복을 하사하고 있다. 이는 고구려가 신라에 대해 종주국으로 자처하고 있음을 뜻하며, 광개토왕릉비문에서 "백제와 신라는 옛부터 속민이어서 늘 조공을 바쳐왔다"라는 구절도 하나의 증거가 된다.

    400년에 이미 고구려는 신라의 요청을 받고 보병과 기병 5만 명을 파견해서 낙동강 유역에 침입한 왜군을 격파하여 신라에 대한 영향력을 높인 적이 있었다. 비문에서 고구려는 신라를 동이라고 칭하고 있다. 이는 자신을 '중화'로 여기는 의식을 전제로 하여 나온 표현으로, 당시 고구려는 자신을 천하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주변 국가나 종족들을 조공국과 같이 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고구려의 군사지휘관이 신라 영토 내에 주둔하고 있었던 사실도 비문 속의 '신라토내당주'라는 구절을 통해 확인된다. 이때 고구려의 군사지휘관이 주둔하고 있던 신라 영토는 중원 지방이 아니라 소백산맥 이남의 경상북도지방으로 추정된다.

    신라가 고구려에 예속되어 있었던 것은 광개토왕대부터 장수왕대까지이므로 이를 기준으로 비의 건립연대를 생각할 수 있다. 그중 비문의 내용에서 '십이월이십삼일 갑인'과 '신유년'이 나오므로, 이를 단서로 추정하여 대략 421년과 481년으로 비정하는 견해가 유력하다. 특히 광개토왕릉비에는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가 '속민'으로 표현되던 것이 이 비에서는 '여형여제'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적어도 5세기 이후의 표현이며 그동안 양국 관계에 일단의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 〈삼국사기〉에 의해 고구려와 신라의 본격적인 대립이 5세기 중반 무렵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비의 건립연대는 5세기 전반이 더 유력해진다. 그러나 문자의 판독을 달리해 449년을 유력한 건립연도로 보는 견해도 있다.

    <다음 백과사전에서 발췌>

     

    문화재지정 

    국보 제205호

    문화재명칭

    충주 고구려비(忠州 高句麗碑)

    소재지

    충북 충주시 가금면 용전리 입석마을

    관리자(연락처)

    문화재청

     

    ▼ 충주 고구려비(忠州 高句麗碑)는 원래 노천에 있다가 비각안에 모셔져 있었는데 지금은 전시관을 새로 지어 그 안에 모셔져 있다. 

    ▼ 충주 고구려비는 대략 5세기에 만들어졌다.

    ▼ 충주 고구려비 1면

    ▼ 충주 고구려비 3면(앞면)... 이쪽에 글자가 식별 가능하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忠州塔坪里七層石塔)

     

    김삿갓 유적지는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노루목에 있으며, 이곳은 차령산맥과 소백산맥 준령의 북단과 남단에 위치하며, 경북 영주시와 충북 단양군과 경계를 이루는 3도 접경지역으로 산맥의 형상이 노루가 엎드려 있는 듯한 모습이라 하여 노루목이라 불려오고 있다. 또한 김삿갓 유적지내에 흐르는 '곡동천'은 여름철에는 유리알처럼 맑고 풍부한 수량이 기암괴석 사이로 넘치고 가을에는 형언각색 단풍으로 인하여 보는 이의 가슴을 평온하게 만들어 주는 신비로운 곳이다. 묘에 안치하였다..

    <다음 백과사전에서 발췌>

     

    문화재지정 

    국보 제6호

    문화재명칭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忠州塔坪里七層石塔)

    소재지

    충북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

    관리자(연락처)

    문화재청

     

    ▼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忠州塔坪里七層石塔) 안내판...

    ▼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흔히 중앙탑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얼마전까지 수리한다고 둘레막을 쳐놨었는데 지금은 수리 완료한 상태다.

    ▼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건너편 남한강...



    억정사 대지국사비((億政寺大智國師碑)

     

    보물 제16호. 비신 높이 267㎝, 너비 130㎝, 두께 24㎝. 화강암 석재로서 개석은 없고 비신의 상부를 좌우로 귀접이하였는데, 보존 상태는 좋은 편이다. 비문은 박의중(朴宜中)이 짓고 승려인 선진(旋軫)이 쓰고 또 전액도 하였으며, 국사의 문인인 중윤(中允)이 1393년(태조 2)에 세우고 혜공(惠公)이 각자(刻字)하였다.

    비문에 국사의 이름은 찬영(粲英), 자는 고저(古樗), 호는 목암(木菴), 속성은 한씨, 양주 사람이고, 또 지감국사와 탑명인 혜월원명(慧月圓明)은 시호임을 밝히고 있다. 이밖에도 1328년(충숙왕 15)에 출생하여 14세에 수법하고 공민왕의 명으로 내원(內院)에 들어가 왕을 보살피고 우왕·창왕에게도 충성을 다하였으며, 1390년(공양왕 2) 63세로 입적할 때까지의 경력과 국사의 천부적 자질과 인품·학력 등을 기리는 내용이 실려 있다.

    또한 음기(陰記: 비 뒤에 새긴 글)에는 국사의 문도들과 속인 문도들의 이름을 새겼다. 글씨는 당시 송설체가 유행할 때였으나, 그 영향은 전혀 보이지 않고 왕희지(王羲之)의 법을 잘 체득한 것으로서 구양순(歐陽詢)과 우세남(虞世南)의 법을 겸수한 듯한 느낌이 든다.필력이 굳세고 결구도 잘된 작품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송설체가 크게 유행하면서 점점 서격(書格)이 떨어지게 되는데, 이 비는 그 과도기의 것으로 고려시대의 여운이 남아 있는 마지막 글씨 중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발췌>

     

    문화재지정 

    보물 제16호

    문화재명칭

    억정사 대지국사비((億政寺大智國師碑)

    소재지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비석2길 35-21(괴동리)

    관리자(연락처)

    문화재청

     

    ▼ 억정사 대지국사비((億政寺大智國師碑) 안내판...

    ▼ 억정사 대지국사비와 비각...

    ▼ 억정사 대지국사비

    ▼ 억정사 대지국사비에서 바라본 마을 앞쪽...



    충주백운암철조여래좌상(忠州白雲庵鐵造如來坐像)

     

    보물 제1527호.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 소재의 백운암은 1886년 무당의 신분으로 진령군이라는 작호를 받아 여자 대감이 된 윤씨에 의하여 창건된 사찰로 전해진다. 이 사찰의 주불전인 대웅전에는 나말여초에 조성된 철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원래 이 불상은 인근 대규모 사찰이었던 억정사지에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충주는 철의 산지로 이 철불과 함께 대원사 소장 충주 철조여래좌상(보물 제98호) 및 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보물 제512호)이 전하며, 이들을 일컬어 충주지방의 3대 철불이라고 한다. 여러 조각을 나누어 주조하여 이어 붙인 흔적이 표면에서 확인된다. 2006년 수리·보수를 실시하여 개금과 녹을 걷어내고, 결손 된 부분을 보수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고려 전반기는 이른바 같은 공방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철불들이 여러 지역에서 제작되어 지역 색이 강한 하나의 유파를 형성하고 있다. 백운암 철불 역시 충주 대원사 철조여래좌상 및 단호사 철조여래좌상과 함께 충주유파를 형성하고 있는 불상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 불상은 단호사 철불이나 대원사 철불로 이행되기 전 단계의 양식적 특징을 보이는 이른바 충주철불의 시원 양식이라는 점에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3구의 충주철불 중에서 예술적·조형적으로 가장 우수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발췌>

     

    문화재지정 

    보물 제1527호

    문화재명칭

    충주백운암철조여래좌상(忠州白雲庵鐵造如來坐像)

    소재지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 223-2

    관리자(연락처)

    문화재청(백운암)

     

    ▼ 충주백운암철조여래좌상(忠州白雲庵鐵造如來坐像) 안내문...

    ▼ 충주백운암철조여래좌상이 모셔진 대웅전 건물...

    ▼ 충주백운암철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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