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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고창)고창읍성(高敞邑城)과 무장읍성(茂長邑城) 답사
    여행등산/여행이야기 2017. 9. 25. 20:20

    일년에도 서너번씩은 찾아가는 고향이다보니 고창읍성도 자주 가는 편이다. 이번 선운사 꽃무릇 구경을 오면서 읍성을 들러 성밟기를 해보고 소나무숲에서 힐링을 겸하였다. 더불어 무장읍성을 오랫만에 찾았는데 관리가 잘 안되어 풀이 무성하다. 복원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찾아오는 문화재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고창읍성(高敞邑城)


    사적 제145호. 둘레 1,684m. 지정면적 18만 9764㎡.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고창지역이 백제 때 모량부리(毛良夫里)로 불렸던 것에서 유래된 듯하다.

    동쪽으로 진산(鎭山)인 반등산(半登山)을 둘러싸고 있으며, 동·서·북의 세 문과 치(雉 : 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성) 여섯 군데, 수구문 두 군데, 옹성(甕城 : 성문의 앞을 가리어 적으로부터 방어하는 작은 성)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 읍성이 언제 축조되었는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고, ≪고창읍지≫나 ≪동국여지승람≫에 단순히 둘레가 3,008척, 높이가 12척이고 성안에 삼지사천(三池四泉)이라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또한, 숙종 때 이항(李恒)이 주민의 힘을 빌려 8년 만에 완성시켰다는 설도 있고, 1453년(단종 1)에 축조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성벽의 ‘濟州始(제주시)·和順始(화순시)·羅州始(나주시)·癸酉所築宋芝政(계유소축송지정)’이라는 각명(刻銘)으로 미루어 볼 때, 계유년(癸酉年)에 전라도의 여러 지역에서 축성을 위하여 역부(役夫)가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계유년이 어느 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성벽의 축성법으로 보아 1573년(선조 6)으로 추측되고 있다.

    조선시대의 읍성에서 흔히 보이는 홍예문과 초루(譙樓 : 성 위에 세운 누각)를 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주초와 문짝을 달던 홈이 팬 누문(樓門)이 있는데 이것은 서울의 돈화문(敦化門)·홍화문(弘化門) 또는 평양의 고구려시대의 성문, 보은의 삼년산성(三年山城)이나 강화읍성 등에서 볼 수 있는 양식과 비교되는 것으로, 성곽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1976년의 발굴 결과 서문지와 동문지가 확인되었으며,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최근 보수공사를 하여 원형에 가깝도록 재현시켜 놓았다. 성벽을 쌓은 자연석은 거칠게 다듬어 굄돌을 넣는 방식으로 쌓았으나, 그 가운데는 초석(礎石)·당간지주(幢竿支柱) 같은 것을 깨뜨려 쓴 것도 있다.

    그러나 미석(眉石 : 성의 맨 아래에 성벽 바깥으로 내밀게 깐 얇은 돌) 이하의 성가퀴는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이와 같은 읍성의 존재는 중국·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 나라의 독특한 형태로서 행정적·군사적 목적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시설이었다.

    특히, 이 성은 여자들의 성벽밟기 풍습으로 유명한데, 이는 한해의 재앙·질병을 가시게 하는 기양의식(祈禳儀式 : 복을 비는 의식)의 하나로 좋은 민속자료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사적 제145호

    문화재명칭

    고창읍성(高敞邑城)

    소재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관리자(연락처)

    고창군청

     

    ▼ 고창읍성 입구...

    ▼ 고창읍성 입구에 답성놀이에 대한 안내문...

    ▼ 고창읍성 답성놀이 동상...

    ▼ 고창읍성 입구에 신재효 고택이 있는데 꽃무릇이 활짝 피어서 들어가 보았다.



    ▼ 고창읍성 성곽을 밟고 한바퀴 돌아본다.

    ▼ 고창읍성 성곽...

    ▼ 고창읍성에서 바라본 군청 방향... 고창고보가 그곳에 있는데 인물이 나올만한 곳이다.

    ▼ 고창읍성에서 바라본 석정온천 방향...

    ▼ 고창읍성 동문인 등양루(登陽樓) 

    ▼ 고창읍성 소나무 숲길...

    ▼ 고창읍성에 있는 성황당...

    ▼ 고창읍성 성황사...

    ▼ 고창읍성 동헌 평근당

    ▼ 고창읍성 인증샷...


    무장읍성(茂長邑城)


    사적 제346호. 지정면적 182,596㎡. 고려시대까지 무송(茂松)과 장사(長沙)의 두 고을이었던 것을 효과적인 왜구의 방비를 위하여 1417년(태종 17) 합하여 두 고을 첫자를 떼어 무장이라 하고 성과 관아를 새로 마련하였다.

    전라도의 여러 고을에서 장정과 승려 2만수천명이 동원되어 둘레 1,470척(尺), 높이 7척의 성벽을 쌓고, 성 위에 높이 1척짜리 여장(女墻 : 성위에 낮게 쌓은 담) 471개를 만들고, 옹성(甕城 : 성문의 앞을 가리어 적으로부터 방어하는 작은 성)을 갖춘 남문과 동·북문을 세웠다.

    성벽 밖으로는 둘레 2,127척의 해자(垓字 : 성 밖으로 둘러 판 못)를 파서 견고히 하고, 병마사가 현감을 겸직하는 진(鎭)을 베풀었던 곳이다. 이후 성은 더욱 넓혀 축조되었던 듯하니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둘레가 2,639척이라 하였다. 성안에는 뱀의 두 눈처럼 생긴 지형에 두 곳의 샘을 마련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읍성은 사두봉(蛇頭峰)이라 부르는, 남북으로 기다란 구릉을 중심으로 하여 평원을 마름모꼴에 가깝게 네모지게 성벽이 감싸고 있다. 둘레가 대략 1.2km이고 성벽은 바깥의 돌이 흙 속에 묻힌 채 높이 1∼2m로 확연하게 남아 있다. 해자는 너비 4m, 길이 574m가 남아 있다.

    성에는 남문인 진무루(鎭茂樓)가 있으며, 성안에는 옛 고을의 풍모를 알 수 있는 객사와 동헌이 있는데, 객사는 송사관(松沙館)이라 하여 옛 무송·장사의 끝자를 따서 이름지었다. 성안에는 조선시대의 각종 건물터와 사직단·여단(厲壇)·성황단 등의 터전이 그대로 남아 있다.

    조선시대의 읍성으로는 그 유례를 보기 어려운 확실한 연혁을 가지고 있어 학술적·역사적 중요성이 매우 크다. 성안의 중요한 건물들은 별도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사적 제346호

    문화재명칭

    무장읍성(茂長邑城)

    소재지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성내리

    관리자(연락처)

    고창군청

     

    ▼ 무장읍성 입구...

    ▼ 무장읍성 

    ▼ 무장읍성 진무루...

    ▼ 무장읍성 객사

    ▼ 무장읍성 객사 송사관...

    ▼ 무장읍성 새로 복원된 연못...

    ▼ 무장읍성 동헌 원경...

    ▼ 무장읍성 동헌의 담장...

    ▼ 무장읍성 동헌 취백당...

    ▼ 무장읍성 동헌에는 아름다운 소나무 한그루가 있다... 일명 세한도 소나무...

    ▼ 무장읍성 연못을 복원했는데 그곳에 있던 연꽃씨가 퍼져서 연꽃밭이 되었다 한다. 이곳의 연꽃은 최소 100년이 넘은 거라는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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