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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논산)개태사(開泰寺)
    답사는 즐거워/문화재답사 2017. 10. 10. 10:00


    개태사(開泰寺) 


    논산에 풍수답사를 위해 몇 번 다녀온 곳이지만 정작 중요한 명재고택을 이런저런 이유로 가질 못해서 이번에 마음 먹고 길을 나섰다. 가는 길에 관촉사, 파평윤씨종학당, 김장생선생묘역 등과 개태사를 들러왔다.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절터만 남아있고 그 아래쪽에 새로 개태사를 중건하여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절에는 개태사석불입상(보물219호), 오층석탑, 철확 등 유물이 전해오고 있다.



    개태사지 (開泰寺址)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세력을 완전히 물리친 후, 태조 23년(940)에 지은 절이다.

    당시 절 안에는 태조의 초상화가 있어서 나라에 전쟁의 기미가 있으면 그 앞에 기원문을 올려 나라가 태평하기를 빌었다고 한다. 그 후 이 절은 고려 후기에 이르러 왜구의 빈번한 약탈에 의해 차츰 기울어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위치는 세종 10년(1428)에 옮겨진 것으로, 개태사 안에는 개태사지삼존불상(보물 제219호)이 있고, 이외에도 석탑과 쇠솥이 있다. 전성기에 장국을 끓였다고 전해지는 이 쇠솥은 지름 3m, 높이 1m, 둘레 9.4m에 이를 정도여서 수백명의 승려가 기거했다는 전설을 사실로 뒷받침하고 있다. 건물 자리와 주춧돌, 석조, 불상의 대좌, 죽대들이 남아 있으며, 이곳에서 출토된 청동제 반자는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절터에 있었던 석조불좌상 1구는 상방산의 한 암자에 안치되어 있다.

    개태사터 일대는 삼국시대 후기 신라군이 당과 동맹을 맺고 백제를 공략할 때 통과한 진격로로, 백제의 계백 장군이 5천 결사대를 이끌고 근처 황산벌에서 신라와 최후의 전투를 벌였던 장소로 유명하다. 그후에도 군사·교통의 요충지로 주목을 받았던 곳이다. 또한 주변에는 사찰을 지키기 위해 만든 약 6㎞에 달하는 토성이 있다.

    <문화재청 사이트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충청남도  기념물  제44호

    문화재명칭

    개태사지 (開泰寺址)

    소재지

    충남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29-1번지 3필

    관리자(연락처)

    충청남도 논산시 문화관광과 041-730-3226

     

    ▼ 개태사 입구...

    ▼ 개태사 입구... (논산시공식블로그 동고동락에서 인용)

    ▼ 개태사 입구 연못...

    ▼ 개태사 전경...


    개태사오층석탑 (開泰寺五層石塔)


    개태사는 고려 태조 13년(930) 고려 건국을 기념하고자 창건한 사찰로, 이후 폐허가 되어 절터만 남아있던 것을, 훗날 김광영 스님이 새로 건물들을 지어 ‘도광사’라 하였다가 다시 ‘개태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절마당에 자리하고 있는 이 탑은 옛 터에 남아 있었는데, 절을 새로 지을 때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옮길 당시 아래 부분이 일부 없어져 완전한 제 모습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즉, 높직한 바닥돌 위로 기단(基壇)이 없어진 채, 5층의 탑신(塔身)만이 차례로 쌓여 있다.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고, 몸돌을 덮고 있는 지붕돌에는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꽃봉오리 모양의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비록 일부가 없어져 본래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기는 하나, 조각 기법이 소박하고 단아한 기품이 느껴지는 탑으로,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문화재청 사이트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74호

    문화재명칭

    개태사오층석탑 (開泰寺五層石塔)

    소재지

    충남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396번지

    관리자(연락처)

    충청남도 논산시 문화관광과 041-730-3226

     

    ▼ 개태사 오층석탑...

    ▼ 개태사 극락대보전...



    논산 개태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論山 開泰寺址 石造如來三尊立像)


    개태사는 고려 태조가 후백제와 최후의 결전을 벌인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태조 19년(936) 격전지에다 세운 사찰이다. 이 삼존석불은 그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의 본존불은 민머리에 얼굴이 둥글지만 평면적이고 귀는 길게 늘어졌다. 어깨와 가슴은 투박하게 만들었으며, 오른손은 가슴에 들고 왼손은 배에 대어 무엇을 잡은 것처럼 만들었는데 지나치게 둔중하다. 

    왼쪽의 보살상은 머리 부분이 없어진 것을 복원한 것이다. 본존불보다 조각이 화려하고 섬세한 편으로, 어깨와 가슴이 좀더 부드럽고, 팔찌와 천의(天衣)자락에 장식무늬가 표현되어 있다. 오른쪽의 보살상은 왼쪽의 보살상과 거의 같은 수법으로 얼굴이 역사다리꼴이고, 목에는 두터운 삼도(三道)가 있다.

    단정하면서도 통통한 몸집, 큼직한 두 손과 부피감 있는 팔, 다소 두꺼워진 천의와 선으로 새긴 옷주름 등은 통일신라보다 진전된 고려 초기의 새로운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후삼국 통일을 기념하여 만든 작품이며, 고려 초기 지방 석불상으로는 우수한 작품에 속하고 있어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문화재청 사이트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보물  제219호

    문화재명칭

    논산 개태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論山 開泰寺址 石造如來三尊立像)

    소재지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108

    관리자(연락처)

    충청남도 논산시

     

    ▼ 논산 개태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論山 開泰寺址 石造如來三尊立像)...(문화재청 사진 인용)

    ▼ 논산 개태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論山 開泰寺址 石造如來三尊立像)...(논산시공식블로그 동고동락에서 인용)

    ▼ 개태사 경내...



    개태사철확 (開泰寺鐵鑊)


    개태사는 고려 태조인 왕건이 세운 사찰로, 철확은 이곳 주방에서 사용했다고 전하는 철로 만든 대형 솥이다.

    벙거지 모자를 뒤집어 놓은 모양으로, 직경 289cm, 둘레 910cm, 높이 96㎝, 두께 3cm이다. 조선시대에 절이 없어지면서 벌판에 방치된 채 있던 것을, 가뭄 때 솥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 비가 온다고 하여 여러 곳으로 옮겼다가, 일제시대 때 서울에서 열린 박람회에 출품된 후 새로 건립한 지금의 개태사에서 보존하고 있다. 

    <문화재청 사이트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1호

    문화재명칭

    개태사철확 (開泰寺鐵鑊)

    소재지

    충남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179-5번지

    관리자(연락처)

    충청남도 논산시 문화관광과 041-730-3226

     

    ▼ 개태사 철확이 보관된 우주정이 멀리 보인다.

    ▼ 개태사 철확(논산시공식블로그 동고동락에서 인용)

    ▼ 개태사 신종루...



    개태사지석조 (開泰寺址石槽)


    개태사의 옛 터에 남아 있는 것으로, 스님들이 사용하는 물을 담아두던 도구이다.

    사찰 부엌에서 물탱크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며, 현재 개태사의 옛 터인 마을 안길의 땅속에 매몰된 상태로 보존하고 있다. 그 크기가 거대한 것으로 알려져 절에서 쓰던 둘레 9.4m의 개태사 철확(철솥)과 함께 당시 사찰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유물이다. 또한 원래의 자리를 지키고 있어 개태사터의 역사를 살피는데에도 좋은 자료가 된다.

    <문화재청 사이트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75호

    문화재명칭

    개태사지석조 (開泰寺址石槽)

    소재지

    충남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관리자(연락처)

    충청남도 논산시 문화관광과 041-730-3226

     

    ▼ 개태사지에 땅에 뭍혀있는 석조...(인터넷 다음 이미지에서 인용)



    금동탑 (金銅塔)


    이 금동탑은 의장이 화려하고 정교한 면에서 법당 내에 모셔둔 사리탑의 일종으로 추측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금동탑은 대개 높이가 20∼30㎝ 정도이고, 50㎝가 넘는 것이 극히 드문데, 이 탑은 현재 높이만도 155㎝로 규모가 큰 편이다. 더구나 현재 남아있는 탑신은 5층이지만 원래는 7층 정도였을 것으로 보이고, 머리장식의 일부가 사라진 것으로 보아 원래 높이는 지금보다도 더 높았을 듯하다.

    2층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우고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꾸민 탑으로, 석탑의 일반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기단에는 네 모서리와 각 면에 목조건축에서 볼 수 있는 기둥모양을 가지런히 새겨두었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둥근 테를 두른 연꽃잎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고려시대 석탑양식의 특징을 뚜렷이 보여주는 부분이다.

    기단 위에 난간을 두르고 탑신을 세웠으며, 1층 탑신에 출입문과 기둥을 두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등 목조건축의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2∼5층의 탑신에는 모두 불상을 새겼지만 조각은 그리 뛰어나지 못하다. 지붕의 모서리마다 풍탁(風鐸)을 달았으나 일부는 결실되고 현재는 몇 군데에만 매달려 있는 상태이다.

    표면의 금칠은 거의 벗겨져 남아있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보존이 잘 된 작품으로, 넓게 짜여진 기단에 비해 탑신은 경쾌하게 날아오르는 듯하다. 각 부분에 꾸밈이 많은 점이나, 탑에 매달린 장식들이 많은 점 등에서 공예탑의 성격이 분명히 드러나면서도 목조 건물 의 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대형의 금속공예품이면서 세부표현이 정교한 점에서 고려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문화재청 사이트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국보  제213호

    문화재명칭

    금동탑 (金銅塔)(개태사 금동대탑)

    소재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55길 60-16 (한남동, 삼성박물관 리움)

    관리자(연락처)

    삼성미술관 리움

     

    ▼ 국보213호로 지정된 금동탑... 원래 이 탑의 이름은 개태사 금동대탑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반환소송 이후 

    이름도 금동탑으로 바뀐듯 하다....

    ▼ 개태사 금동대탑 반환하라는 입간판... 개태사 경내에 있다...(논산시공식블로그 동고동락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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