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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성북)안암골 답사(고려대박물관,개운사,보타사,인명원터,보제원터,선농단)
    답사는 즐거워/문화재답사 2017. 9. 30. 11:37


    안암골 답사 


    내가 살고 있는 서울 성북구는 역사문화유적지가 많은 곳이다. 특히 성북동을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고려대학교가 있는 안암골에도 반드시 들러야 할 만한 곳이 여러곳이다. 그중 고려대학교박물관은 꼭 들러야 할 곳 중 한 곳이다. 이곳은 작은 사립박물관이지만 이곳에 국보3점, 보물급 문화재가 즐비한 곳이기 때문이다.또한 보타사 마애불은 서울에 있는 두곳의 백불 중 한 곳이다. 보타사에는 최근에 보물로 지정된 관음상도 함께 있다. 답사하면서 놓치기 쉬운 곳이 고려대 이공대에 있는 인명원터와 안암로타리에 있는 보제원터다. 이 후에 선농단을 들러 역사문화관을 둘러본 후 선농단을 둘러본다. 

    월곡1동 웰빙생활풍수반 회원님들과 함께 9월 마지막주 수업을 현장답사로 진행했다. 그런데 핸드폰 사진이 다 지워져서 사전답사 때 찍은 사진으로 답사기를 대신한다.


    고려대학교 박물관


    1934년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 도서관 내의 참고품부(參考品部)로 출발하였다. 박물관 건립에 뜻을 가지고 있던 보성전문학교 교장 김성수(金性洙)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민속품을 출연하고 일본 동양문고(東洋文庫) 사서 출신의 손진태(孫晉泰)를 도서관 사서로 임명해 참고품의 수집과 정리를 맡겼다. 설립 이후 보성전문학교 창립 30주년 기념사업을 계기로 각처에서 유물 기증이 잇따랐고 안함평(安咸平) 여사가 출연한 거액의 희사금을 토대로 다수의 유물을 수집할 수 있었다.

    1962년 연면적 851평 규모의 3층 건물을 준공해 처음으로 독립된 박물관 시설을 갖추었고 1973년에는 대학박물관 최초로 한국현대미술실을 개설하였다. 2005년에는 현재의 위치인 백주년기념관으로 박물관을 옮겨와 3,000평 규모의 전시 및 수장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전시실은 백년사전시실, 역사민속전시실, 고미술전시실, 현대미술전시실, 기증자기념전시실 등 총 5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약 500여 점의 유물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소장품 규모는 개관 초기인 1942년 무렵 이미 3,000여 점에 달했다. 6·25 전쟁으로 상당수의 유물이 소실되었으나 지속적인 발굴과 유물수집을 통해 현재는 고고, 역사, 민속, 서화, 도자, 현대미술에 걸쳐 총 10만 25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유물로는 현행 1만원권 지폐도안으로 사용되고 있는 현존 유일의 조선시대 천문시계인 혼천시계(渾天時計)와 현존 최고(最古)의 청화백자인 흥녕부대부인묘지(興寧府大夫人墓誌) 등을 들 수 있다. 국보와 보물을 각기 3점씩 소장하고 있으며 국가지정기록물 제1호(유진오제헌헌법 초고)와 제2호(안재홍 미군정 자료) 역시 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설립 이래 1959년웅천패총(熊川貝塚) 발굴을 시작으로 총 34회의 발굴조사를 실시하였고 대학박물관 최초의 해외전시로 평가되고 있는 1996년 미국 6개 대학 순회전시 ‘The Fragrance of Ink’를 포함해 총 60여 회의 국내외 전시를 기획하였다. 2000년부터는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신설해 일반인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강좌와 초등학생들을 위한 어린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미지정(국보177호 분청사기인화문태호, 국보230호 혼천시계, 국보249호 동궐도 보유)

    문화재명칭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재지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안암동)

    관리자(연락처)

    고려대학교(박물관단체관람 02-3290-1514)

     

    ▼ 고려대학교 본관...

    ▼ 고려대학교 상징 호랑이상...

    ▼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국보230호 혼천시계...

    ▼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국보249호 동궐도.

    ▼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국보177호 분청사기인화문태호.

    ▼ 개운산 개운사 일주문...

    ▼ 보타사 전경...

    ▼ 보타사 마애보살좌상(보물1828호)

    ▼ 고려대학교 이공대캠퍼스에 있는 인명원터

    ▼ 인명원터에는 지금도 묘지의 모습이 어렴풋이 나타난다.

    ▼ 안암동로타리에 있는 보제원터 표석... 이곳이 여행자의 무료숙박과 병자에게 약을 나눠준 곳으로 경동시장 한약방의 기원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선농단(先農壇)


    사적 제436호.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고 일컬어지는 고대 중국의 제왕인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를 주신으로 제사지내던 곳이다.

    면적은 4㎡이며, 지금은 사방 4m의 돌단만이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선농(先農)의 기원은 멀리 신라시대까지 소급되는데,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시대에도 태조 이래 역대 임금들은 이 곳에서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며 선농제(先農祭)를 지냈다.

    또한, 제를 올린 뒤에는 선농단 바로 남쪽에 마련된 적전(籍田)에서 왕이 친히 밭을 갊으로써 백성들에게 농사일이 소중함을 알리고 권농에 힘쓰기도 하였다. 1476년(성종 7)에는 이 곳에 관경대(觀耕臺)를 쌓아 오늘날의 선농단이 이룩되었다.

    왕이 적전에서 친경할 때에는 농부들 중에서 나이가 많고 복 있는 사람을 뽑아 동참하게 하였다. 이처럼 왕이 선농단에서 친경하는 제도는 1909년(융희 3)을 마지막으로 일제하에서 폐지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선농단(先農壇) 향나무


    천연기념물 제240호. 선농단의 향나무는 현재 국내에서 자라고 있는 향나무 중 크고 오래된 것 중의 하나로서 나무의 높이가 10m, 가슴 높이의 직경(胸高直徑)이 72㎝, 가지밑 줄기높이(枝下樹高)가 2.3m에 달한다. 정확한 수령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 나무가 있는 선농단이 1392년 지어졌던 것과 관련지어 볼 때 500여 년은 넘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관(樹冠)은 동쪽으로 4.1m, 서쪽으로 4.5m, 남쪽으로 6.8m, 북쪽 3.6m 정도 퍼진다. 가지자람은 2m 높이에서 줄기 북쪽에서 나온 가지가 서쪽으로 굽어 7m 가량 뻗었으며, 2.5m 높이에서 남쪽으로 자랐고, 3m 높이에선 동쪽으로, 6m 높이에서는 남쪽으로 가지가 뻗어 수관을 이루고 있다. 긴 가지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쳐지기 때문에 가지마다 받침기둥을 세웠다.

    <위키백과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사적 제436호

    문화재명칭

    선농단(先農壇)

    소재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제기2동 274-1

    관리자(연락처)

    서울시 동대문구(선농단역사문화관 02)355-7990)

     

    ▼ 선농단역사문화관....

    ▼ 선농단역사문화관 내부....

    ▼ 선농단은 국왕이 농사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인근 청량리 부근의 적전에서 친경을 시행했다. 

    ▼ 친경 후 모여든 백성들에게 소고기국에 밥을 말아주는 선농탕을 대접했는데 여기서 설렁탕이 유래되었다. 

    ▼ 선농단 전경... 

    ▼ 선농단 위쪽에서 바라본 모습.... 

    ▼ 선농단 향나무... 수령 500년이 넘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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