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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주)임진왜란 최초의 육지 전투 승전지 해유령 전첩지(蟹踰嶺戰捷地)답사는 즐거워/문화재답사 2017. 8. 15. 22:41
해유령 전첩지(蟹踰嶺戰捷地)
양주에서 파주로 넘어가려고 길을 가는데 길옆에 큰 전적비가 눈에 들어온다. 이 지역은 한국전쟁 때 수많은 전적지가 있기 때문에 6.25관련 전적비인줄 알았는데 살펴보니 임진왜란 당시 최초의 육지전투 승전지라고 적혀있다. 전혀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맞닥뜨리면 흥분되기 까지 한다.
자세히 읽어보니 이 또한 아픈 역사가 숨어있다. 임진왜란 때 선조의 무능은 다시 꺼내기조차 역겨운 것이지만 이곳에서 승전을 올린 장수를 모함에 의해 참수하고 뒤늦게 되돌리려 했지만 이미 형을 집행한 뒤였다 한다. 그러니 나라 꼴이 어찌되었겠는가? 이즈음에 다시한번 되새겨야할 교훈이다.
이 작은 고개에서 전투승리를 이끈 장수도 대단하고 500여년이 지난 뒤에 향토사를 정비하여 기념비를 세운 양주시민들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해유령 전첩지(蟹踰嶺戰捷地)
경기도 기념물 제39호.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蓮谷里)에서 파주 광탄(廣灘)으로 넘어가는 고개 길이다.
부근의 지세는 연곡리의 입구가 좌우로 낮은 산이 마치 삼태기 모양으로 둘러 있어 산 위에 매복해 있으면 그 안으로 들어오는 적을 포위하여 섬멸할 수 있기 때문에 전략상으로 매우 주요한 지역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을 때 한강의 방어선이 무너지자 신각은 유도대장(留都大將) 이양원(李陽元)과 함께 양주 산중으로 들어가 흩어진 병사들을 모으고 함경도병사 이혼(李渾)으로부터 지원병을 얻어 서울로부터 북상하는 왜군을 해유령 입구에서 적의 선봉 부대를 맞이하여 목 70여급(級)을 베어 큰 승리를 얻었다.
그러나 임진강으로 도망하였던 도원수 김명원(金命元)은 한강 패전의 책임을 신각에게 미루고 명령불복종죄로 무고하는 장계를 올렸다. 이에 우의정 유홍(兪泓)은 그 내용을 믿고 신각의 참형을 주창하여 양주에서 참살되었다.
뒤늦게 승전보를 접한 조정에서는 형 집행을 중지하기 위하여 선전관을 파견하였으나 형 집행 후에 현장에 도착하였다. 이곳에는 2,000여 평의 대지 위에 높이 1060㎝의 화강암으로 된 사각 기둥의 전첩비를 세웠으며 기단(基壇)의 면적은 약 40평 정도이다. 또한 부근에 사당도 세워져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경기도 시도기념물 제39호
문화재명칭
해유령 전첩지(蟹踰嶺戰捷地)
소재지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 산28-9
관리자(연락처)
양주시청
▼ 해유령전첩비 전경...
▼ 해유령전첩비 전경...
▼ 해유령전첩비 앞에 세워진 전첩기... 글자가 퍼져서 읽기 어렵다.
▼ 해유령전첩비 앞 잔디밭에 있는 해유령전승기공사적비... 쓰고 싶은 말이 많겠지만 4면을 빼곡히 써놔서 이 또한 읽기 어렵다.
▼ 해유령전첩비와 해유령전승기공사적비...
▼ 해유령전첩지 안내문... 깔끔하다..
▼ 해유령전첩비 앞에 세워진 충현사 삼문...
▼ 충현사... 담장 너머로 찍었다..
▼ 해유령전첩비에서 바라본 입구 전경...
▼ 이곳에는 국토지리정보원의 측량기준점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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