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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강릉]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 강릉김씨 시조 묘)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9. 2. 28. 09:00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 강릉김씨 시조 묘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을 다녀왔다. 이곳은 100대 명당에 드는 곳이라 진작 다녀와야 하는데 강릉에 가서도 다른 곳 보기 바쁘다 보니 항상 이곳은 뒷전이었다. 이번에 풍수문화답사로 맘먹고 다녀온 곳이다.
이곳은 신라시대 태종 무열왕 5대손 김주원 묘이다. 엄밀히 말하면 왕릉은 신라왕에 붙는게 맞는데 이곳은 명주군왕으로 식읍을 받은 묘라고 봐야 하지만 명주군왕묘라고 하는 것도 이상해서 그냥 문중에서 쓰는 명주군왕릉으로 나도 쓴다. 하지만 강릉김씨 시조 묘라는 꼬리말을 같이 붙여서 글을 올리니 이해 바란다.
김주원 묘라고 처음에는 했다가 점차 명주군왕지묘로 바뀌다가 근현대에 와서는 명주군왕릉이 되다보니 여러가지 능묘제가 혼합되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체 시조 묘로 만들어져 있다.
입구에 홍살문을 만들고, 묘 앞에는 왕릉의 격식에 맞추자니 정자각을 세워야 하는데 지금 있는 능향전이 정자각 용도로 지어졌다. 그런데 그 모습이 황제의 릉에 있는 침전의 모양을 하고 있고, 능향전 앞쪽에도 황제릉 침전에 있는 석물들과 유사하다. 황제릉에는 침전쪽에 문무석인을 세우면 릉상에는 아무것도 세우지 않는데 이곳은 위, 아래로 석물이 즐비하다. 과하면 모자람만 못하는데 너무 많이 치장한 듯 보인다.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은 매우 가파른 맥선상에 있는데... 어찌보면 맥이 쉽게 흘러내리지 못하게 하려는 듯 석물을 많게 설치하였다. 이곳 명주군왕릉은 상하릉으로 되어 있다. 앞쪽이 왕, 뒤쪽이 왕비로 되어 있다. 원래 상하릉인 경우 뒤쪽이 왕이 되는데 이곳은 여러가지가 혼합된 장법이다.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은 가파른 곳에 혈을 맺다보니 부족함이 많다. 본신 청룡이 앞을 바짝 막아 내명당이 거의 없고 백호는 넓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어서 바람이 무섭다. 그런데 전체적인 국세로 보면 빈틈이 거의 없을 정도로 사격이 막아주어 능상(묘역)에 오르면 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다. 또한 햇빛이 묘역을 양명하게 비추어 한겨울인데도 묘역은 눈이 다 녹아 있다.
입수도두에 올라 용을 살펴보니 좌선룡의 치올라오는 맥이 도두에서 좌선맥으로 살짝 돌고 있다. 우측은 낭떠러지이니 안쪽으로 붙여야 하는데 안쪽도 공간이 많지 않다. 좁은 혈장에서 최선을 다한 모양새다.
이곳은 입구에서부터 엄청나게 넓은 터에 시조 묘역을 조성한 것으로 봐서 강릉김씨대종회의 재물이 넉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시조 묘가 명당도 좁고 가파른데 후손들이 돈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후손들이 돈 많은지 확인해보지는 않아서 모르니까 현재의 상태를 말하는 거지만 재물과는 인연이 부족한 것으로 봐야 한다.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 강릉김씨 시조 묘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강릉 김씨의 시조 김주원(金周元)의 무덤.
조선 선조 때 김주원의 후손인 김첨경(金添慶)은 강릉부사 재임 시, 주원의 현몽(現夢)으로 선대(先代)부터 실전(失傳)된 시조묘소를 찾기로 결심하였다. 그 뒤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한 끝에 지금의 자리를 찾았다고 한다.
그 때 능묘(陵墓) 앞과 사면은 돌로 만든 층계가 있었고, 그것의 네 모퉁이에는 1척 남짓한 돌 동자상(童子像)이 있었다고 전한다. 또 무덤 속에서 유해를 담은 백사(白沙) 항아리가 나왔는데, 그 뚜껑에는 북두칠성의 형상이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김주원(金周元)
김주원은 신라태종무열왕의 5대손으로 혜공왕 13년(777)에 이찬(伊飡)으로 시중(侍中)이 된 인물이었다. 선덕왕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당시 왕의 선출이나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던 화백회의에서 김주원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그러나 이 때 상대등(上大等)이었던 김경신(金敬信: 원성왕)이 화백회의의 의장이라는 직책을 이용해 비상수단으로써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리고 먼저 왕실에 들어가 즉위식을 올려 왕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김경신이 알천신(閼川神)의 도움으로 즉위하게 되었다고 한 것과, 하늘의 뜻으로 비를 내려 재선출한 결과 왕이 되었다고 한 표현은 김경신의 즉위를 합리화하기 위한 의도에서 꾸며진 말로 이해된다.
한편, 김경신의 전횡에 위협을 느낀 김주원은 강릉으로 퇴거하였다. 그는 강릉으로 낙향한 이듬해에 원성왕에 의해 명주군왕(溟州郡王)에 봉해졌다. 그리고 명주 관하의 3개 군과 1개 읍을 식읍(食邑)으로 받았다.
김주원이 받은 식읍은 그의 후손들이 강릉 지역에서 독자적인 지방세력으로 성장하는 데 경제적 기반이 되어 주었다. 강릉 지방에서 김주원 직계손들의 반독립적인 세력은 신라 말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
신라 하대에는 오늘날 영동 지역에 속하는 어떤 세력도 이들과 연고 없이는 존립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위세가 강성하였다.
1942년 후손들이 기적비(紀蹟碑)를 세웠다. 또한 1960년 이승만 대통령이 찬한 신도비(神道碑)가 금산리 능소 앞에 세워졌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강원도 시도기념물 제12호
문화재명칭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 (강릉김씨 시조 묘)
소재지
강원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산285
관리자(연락처)
강릉김씨대종회
▼ 명주군왕(溟州郡王) 비
▼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 진입로 홍살문...
▼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은 엄청 넓은 터에 각종 숭모비와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 재실...
▼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 입구 홍살문...
▼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비... 엄밀히 말하면 왕릉은 신라왕에 붙는게 맞는데 이곳은 명주군왕으로 식읍을 받은 묘라고 봐야 하지만 명주군왕묘라고 하는 것도 이상해서 그냥 문중에서 쓰는 명주군왕릉으로 나도 쓴다. 하지만 강릉김씨 시조 묘라는 꼬리말을 같이 붙여서 글을 올리니 이해 바란다.
▼ 왕릉의 격식에 맞추자니 정자각이 필요한데... 정자각 용도로 쓰는 능향전.. 그런데 그 모습이 황제의 릉에 있는 침전의 모양이고 앞쪽에도 황제릉 침전에 있는 석물들과 유사하다. 그런데 황제릉에는 침전쪽에 문무석인을 세우면 릉상에는 아무것도 세우지 않는데 이곳은 위, 아래로 석물이 즐비하다. 과하면 모자람만 못하는데 너무 많이 치장한 듯 보인다.
▼ 능향전 뒤로 조선왕릉에서 보이는 참도가 보인다. 묘역으로 연결되어 있다.
▼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강릉김씨 시조 묘) 묘역 오르는 길에 특이한 석물이 있다. 홍살문을 상징하는 듯 하다.
▼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은 가파른 능선에 위치해 있다. 햇빛이 잘 드는 곳과 안드는 곳이 확연하다.
▼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강릉김씨 시조 묘) 전경... 석물이 엄청 많다.
▼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강릉김씨 시조 묘)... 묘역에 꽃송이가 참배객을 반긴다.
▼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강릉김씨 시조 묘) 묘비... 오래전에는 묘라고 칭했는데 근자에 왕릉이라고 한듯...
▼ 이 묘비는 명주군왕지묘(溟州郡王之墓)라고 쓰여 있다.
▼ 명주군왕(溟州郡王) 묘비
▼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강릉김씨 시조 묘)은 매우 가파른 용맥상에 있는데... 맥이 쉽게 흘러내리지 못하게 하는듯 석물을 많게 설치하였다.
▼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강릉김씨 시조 묘) 장명등
▼ 석물들은 후대(조선시대)에 설치한 듯...
▼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강릉김씨 시조 묘)은 상하릉으로 되어 있다. 앞쪽이 왕, 뒤쪽이 왕비로 되어 있다. 원래 상하릉인 경우 뒤쪽이 왕이 되는데 이곳은 여러가지가 혼합된 장법이다.
▼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강릉김씨 시조 묘) 후경.. 가파른 곳에 혈을 맺다보니 부족함이 많다. 본신 청룡이 앞을 바짝 막아주어 바람은 많지 않고 그나마 햇빛은 양명하게 비추지만 좌선룡의 치올라오는 맥이 도두에서 좌선맥으로 살짝 돌고 있다. 우측은 낭떠러지이니 안쪽으로 붙여야 하는데 안쪽도 공간이 많지 않다. 명당이 좁고 가파른데 후손들이 돈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강릉김씨 시조 묘) 도두... 좌선맥으로 살짝 틀어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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