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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 원주]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 세운 박권(朴權) 묘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9. 3. 3. 09:00


    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 세운 박권(朴權)


    원주묘지 중 일부 누락된 곳이 있어 양평 양동지역, 원주, 횡성을 묶어 후배와 함께 묘지답사를 다녀왔다. 최근에 원주지역에서 가장 이슈가 되었던 박권선생 묘를 찾아 달라고 후배가 요청해서 백방으로 알아보았으나 어느 한 곳도 주소나 위치를 알려주는 곳이 없어서 이번에 다녀온 묘지를 위치까지 정확히 해서 올린다. 

    나는 천성적으로 어떤 걸 알면서도 감춰두고 밝히지 않는 것을 못한다. 그러다 보니 남들도 그렇게 감추고 알려주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도 못하고 그 사람의 진심까지도 의심하게 된다. 아무튼 나는 내가 다녀온 곳은 반드시 주소와 그 위치까지도 정확히 올리고 있으니 독자들께서도 이런 마음을 헤아려 주시기 바란다.

    박권선생 묘는 찾기가 무척 까다롭다. 그런데 다행히 박씨종친회와 원주문화원이 합심하여 묘역까지 안내판이 자세히 설치되어 있으니 참고하고 다녀오면 좋을 듯 하다. 

    묘역은 언뜻 보기에 잘 짜여진 곳으로 보이지만 박권선생 묘는 혈장이 좁고 여기(餘氣)가 없는 곳에 위치하여 옹삭하다. 오히려 그 위쪽에 부친 묘가 있는데 후배 말이 그곳이 더 넉넉한 혈장을 확보하고 있다고 더 좋다고 한다. 풍수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후배지만 풍월을 읊는 수준이 대견하다. 나는 힘이 부쳐 후배 혼자 부친 묘역은 다녀왔다. 이곳은 처음 다녀오신 분들의 사진을 보면 산짐승들이 묘역을 파헤쳐 놓고 문인석도 무너져 내려있었는데 지금은 지역 문화원과 뜻있는 분들의 노고 덕분에 묘역이 말끔히 정돈된 상태다. 이 기회에 감사를 표한다. 다만 아직도 산짐승들이 많이 있어서인지 묘지 둘레로 철조망을 쳐놓아서 사진에 썩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향후 백두산 정계비 모형을 만들어 전시한다니 기대가 매우 크다. 



    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 세운 박권(朴權)


    1658(효종 9)∼1715(숙종 4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형성(衡聖), 호는 귀암(歸庵). 박희남(朴希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정(朴筳)이고, 아버지는 목사(牧使) 박시경(朴時璟)이며, 어머니는 부사 김인량(金寅亮)의 딸이다.

    1686년(숙종 12)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이 되었다. 윤하제(尹夏濟)·조사기(趙嗣基) 등의 잘못을 소로 통박했다가 도리어 평산(平山)에 유배되었다. 1692년(숙종 18)에 풀려나 고향에서 은거하다가 1694년 갑술옥사로 다시 서용되어 병조좌랑이 되었다. 이어 정언(正言)이 되어 장희재(張希載)를 정법(正法)대로 처리할 것과 영의정 남구만(南九萬)을 공격한 유생들의 정거(停擧: 과거 응시 자격을 박탈하는 것)를 완화해줄 것을 상소했다가 다시 체직되었다. 곧 다시 서용되어 부수찬·교리를 거쳐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삼사의 여러 직을 역임하였다.

    이어 1697년 외직으로 나갔다가 이듬해 파직당하였다. 이어 예조참의가 되어 과장(科場)의 폐습을 일소해보려고 상소했다가 구설에 휘말려 인천부사로 좌천되었다. 그 뒤 황해·영남의 감사를 거쳐 이조참의 때 교리 박필명(朴弼明)의 탄핵을 받고 은거하였다. 대사간 등의 여러 벼슬을 제수받았으나 모두 나가지 않다가 경기감사·강화유수(江華留守) 등에 나갔다가 곧 돌아왔다.

    1711년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이듬해 한성우윤이 되었다. 이 때 청나라 사신 목극등(穆克登)의 접반사로 백두산에 올라가 지형을 답사한 뒤 조·청 두 나라의 국경을 확정하고 그 증거로서 정계비(定界碑)를 세우고 돌아왔다. 그 뒤 병조참판·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를 거쳐 호조와 공조를 제외한 4조의 판서를 역임하였다.

    사람됨이 굳세고 과감해 별로 친히 지내는 사람이 없이 사람들로부터 외경(畏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는 언제나 부름을 받았고 또 맡은 일도 잘 처리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 세운 박권(朴權) 묘

    소재지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동화리 산112-1(네비: 동화리 232-1)

    관리자(연락처)

    박씨대종회

     

    ▼ 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 세운 박권(朴權) 묘 위치... 벽계수 묘에서 가늠하면 된다.

    ▼ 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 세운 박권(朴權) 묘... 주차하는 곳은 소로길 이어서 겨울에는 괜찮지만 여름에는 질퍽거려 곤란하다. 아무튼 이곳부터 안내판을 따라 가면 쉽게 박권 묘에 도착할 수 있다.

    ▼ 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 세운 박권(朴權) 묘... 박권 부친 묘...

    ▼ 박권(朴權) 묘역으로 가는 길에는 박씨대종회청년회에서 친철하게도 안내판을 세워놓아 찾기 쉽다. 주차지역으로 표기한 부근.

    ▼ 주차지역에서 바라본 박권(朴權) 묘역

    ▼ 박권(朴權) 묘역으로 가는 길에는 이렇듯 안내판이 잘 되어 있다.

    ▼ 박권(朴權) 묘역 오르는 길.. 저 앞에 후배가 앞장서서 가고 나는 뒤에서 헐떡이며 사진 찍기 바빴다.ㅎ

    ▼ 박권(朴權) 묘역

    ▼ 박권(朴權) 묘비는 총탄을 맞았는지 전면 우측 상부가 깨져 있다. 


    ▼ 박권(朴權) 묘 전경... 산짐승 침입을 막으려고 철조망을 쳐놓았다.

    ▼ 박권(朴權) 묘 석물... 청룡쪽 문인석이 넘어져 있던 것을 최근에 세운듯 하다.

    ▼ 박권(朴權) 묘 백호쪽 석물...

    ▼ 박권(朴權) 묘 근접 촬영에는 철조망이 보여 보기에 좋지 않다.

    ▼ 박권(朴權) 묘는 묘 제절이 거의 없을 정도로 옹삭한 형태다.

    ▼ 박권(朴權) 묘 후경... 어떤 자료에 보니 앞쪽 조산이 건등산이라 하였지만 건등산과는 좌향이 맞지 않는다.

    ▼ 박권(朴權) 묘 도두와 후경...

    ▼ 박권(朴權) 묘로부터 약 200m 위쪽으로는 원주목사를 역임하신 박권의 부친 박시경의 묘가 있다. 박시경 묘비...

    ▼ 박시경(朴時璟) 묘 전경

    ▼ 박시경(朴時璟) 묘 근경... 산짐승이 파헤쳐 놓은 묘지를 말끔히 정리하였다.

    ▼ 박시경(朴時璟) 묘 석물... 철조망이 보기 좀 그렇다.


    ▼ 박시경(朴時璟) 묘 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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