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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탐사)제주도 풍수문화답사(1)답사는 즐거워/풍수문화답사 2020. 1. 13. 12:30
제주도를 한번씩 가기가 쉬운게 아닌데 근자에는 별 어려움 없이 가끔씩 가게된다.
이번에 몇몇 분들이 의기투합해서 제주도 답사를 추진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다녀오게 되었다.
자주 가는 곳보다 뭔가 생각을 하게 하고 기운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일정을 잡았다.
특별히 답사지를 소개하기 보다는 사진으로 답사 일정을 따라가며 소개하니 이해 바란다.
1.항파두리항몽유적지
제주도 기념물 제28호. 현재 15리에 이르는 토성(土城)과 삼별초(三別抄) 군사들이 궁술훈련 때 과녁으로 사용했던 ‘살맞은 돌’, 성의 건물 문지였던 ‘돌쩌귀’, 김통정(金通精) 장군이 성 위에서 뛰어내린 발자국이 파여서 샘이 솟는다는 ‘장수물’, 삼별초 군대가 급수로 이용한 ‘옹성물’·‘구시물’, 옥터 등이 남아 있다.
이 유적지는 1977년 호국정신을 함양하고 총화단결을 다짐하는 뜻에서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석성(石城)인 내성(內城)이 위치했던 9천여 평의 경내에 ‘항몽순의비(抗蒙殉義碑)’를 세우는 등 성역화되었다.
진도에서 대몽항쟁을 전개하던 삼별초 군대가 제주에 들어온 것은 1270년(원종 11) 11월 3일 이문경(李文京) 부대의 제주 명월포(明月浦) 상륙이었다. 이문경 부대는 이미 제주도에 거점을 마련하고 있던 관군(官軍)과 송담천(松淡川)에서 전투를 벌여 승리함으로써 제주도 내의 교두보를 확보하였다.
이어 1271년(원종 12) 5월 김통정은 진도의 용장성이 무너지자, 남은 삼별초 군대를 거느리고 제주도로 들어와 이문경 부대와 합세하여 대몽항쟁을 위한 본격적인 방어 시설을 구축해 나갔다.
이 항몽유적지는 1273년(원종 14) 4월 고려의 김방경(金方慶)과 원장(元將) 흔도(忻都)가 이끄는 여몽연합군(麗蒙聯合軍)에 의해 삼별초가 토벌되기까지 대몽항쟁의 거점이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항몽유적 안내도
▼항몽순의비 원경
▼항몽기념관
2.생각하는정원
수백여점의 분재가 오름과 물을 모티브로 한 자연정원에 자리하고 있다. 2007년 분재예술원 개원 15주년을 맞이하여 새롭게 태어나고, 세계적인 정원으로 나아가고자 <생각하는 정원>으로 정원의 이름을 정식으로 바꾸었다.
생각하는 정원의 역사는 1963년 성범영 원장이 제주에 첫발을 디디고 돌투성이 불모의 땅을 일구기 시작하는 것으로부터이다. 황량한 불모지에 꽃피운 한 농부의 혼불이라는 점에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실제 세계명사들이 가장 많이 다녀간 명소이다. 중국 장쩌민 국가주석의 방문과 후진타오 주석, 북한 김용순 노동당 비서, 일본 나까소네 총리대신 등 외교사절과 국내외명사들의 방문은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이다.
현재 이곳에는 400여점의 분재가 전시되어 있으며, 제주 화산석으로 쌓은 돌담과 돌탑, 정원 내에 시원하게 쏟아지는 제주 최대의 인공폭포, 또 하나의 폭포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는 커다란 잉어들이 한가로이 노니는 연못 등의 공원 시설이 잘 가꾸어져 있다.
<대한민국구석구석에서 인용>
▼생각하는정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 앞쪽으로 무곡성이 받혀주고 있어 재물과 연관이 높게 보인다.
▼생각하는정원 전경
▼생각하는정원 내에 있는 멋진 수석
▼생각하는정원에는 유명인사가 많이 찾았는데... 강택민 중국 주석 서명...
3.서귀포 김정희 유배지
사적 제487호(2007.10.10 지정), 추사 김정희(1786~1856)선생이 조선 헌종 6년(1840) 10월 1일부터 헌종 14년(1848) 12월 6일까지 9년간 유배생활을 하였던 곳이다. 1948년 제주도 4·3사건 때 불타버리고 빈 터만 남았다가 1984년 강도순 증손의 고증에 따라 다시 지은 것이다.
북학의 대가이며 학예에 출중한 당대의 선구자였던 추사 김정희 선생이 이곳에 다년간 머무름으로써 제주 인문의 일대 혁신의 계기가 되었다. 선생은 금석문과 서화에 능통 하였으며, 특히, 서체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추사체는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여기서 그린 "세한도(국보 제 180호)"는 선생의 서화의 경지를 유감 없이 발휘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구석구석에서 인용>
▼추사김선생적노유허비
▼추사관 내에 세워진 동상
▼추사유배지는 담장에 탱자나무를 두른 위리안치(圍籬安置)
▼추사와 초의선사는 차로 맺어진 우정이 많이 알려져 있다.
4.대정향교(大靜鄕校)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4호(1971.08.26 지정), 1408년(태종 8)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대정현(大靜縣) 성내(城內)에 창건하였다. 1652년(효종 3)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그뒤 1835년(헌종 1)까지 세 차례 대성전을 중수하고 1772년(영조 48) 명륜당을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각 5칸의 대성전·명륜당, 동재(東齋)·서재(西齋)·신삼문(神三門)·정문·대성문(大成門)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는 1971년 8월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으며, 1948년 4월부터는 문명학원(文明學院)을 병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소장 전적은 ≪대정향교절목 大靜鄕校節目≫ 등 18종 37권이 있으며, 유교 경전의 집주류(集註類)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현재 제주도 향교재단에서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대한민국구석구석에서 인용>
▼대정향교(大靜鄕校) 안내문
▼대정향교(大靜鄕校)는 제주도에서는 드물게 배산임수의 남향터에 자리잡고 있다.
▼대정향교(大靜鄕校) 건물들은 내삼문이나 대성전이나 모두 낮게 만들어져 있는데 바람과 연관이 있는듯 보인다.
5.알뜨르비행장과 격납고
1941년 12월, 미국 하와이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1942년 태평양 상의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패배를 기점으로 미국 중심의 연합군에 의해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전장이 점차 일본 본토로 접근해 오면서 본토 사수의 전략거점으로 제주도의 위치는 중요해졌고, 이에 따른 비행장 기능의 확충이 필요했다.
통신설비는 비행장 운영의 필수적 요소로서 공사 실시부대는 진해경비시설부 제201부대, 주둔부대는 일본 해군 제주도 해군항공대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이교동으로 알뜨르 비행장[해군 비행장] 북서측면에 위치해 있다.
현재는 주변 지역의 경작으로 흙이 많이 허물어져 기둥과 입구가 훤히 드러나 보인다. 마을 안에 위치해 있어 주민들이 상여집으로 사용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파손된 곳이 있으나 전체적인 형태는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전파 송·수신을 위해 세웠던 것으로 보이는 기둥 5개가 남아있고, 통신시설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양쪽으로 나 있다. 해방 후에는 대한민국 국군이 한 때 탄약고로 이용하여 탄약고 터로도 불리었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서 인용>
▼알뜨르비행장 안내판
▼이곳은 4.3유적지가 있다. 뒤로 알뜨르비행장 격납고가 보인다.
▼아마도 4.3유적지 조형물로 보이는데 자세히 확인하지 못했다.
6.용머리해안
천연기념물 제526호(2011.01.13 지정)
산방산 앞자락에 있는 바닷가로 산방산 휴게소에서 10여분 걸어내려가면 수려한 해안절경의 용머리 해안과 마주치게 된다. 이 곳은 수천만년 동안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사암층 중 하나이다. 해안 절벽을 모진 파도가 때려서 만들어 놓은 해안 절경이다. 작은 방처럼 움푹 들어간 굴방이나 드넓은 암벽의 침식 지대가 펼쳐져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얼마 전부터 제주의 새롭게 소개되는 관광코스 중의 하나이다.
용머리라는 이름은 언덕의 모양이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닮았다하여 붙여졌다. 전설에 의하면 용머리가 왕이 날 휼륭한 형세임을 안 진시황이 호종단을 보내어 용의 꼬리부분과 잔등 부분을 칼로 끊어 버렸는데 이때 피가 흘러내리고 산방산은 괴로운 울음을 며칠째 계속했다고 한다.
용머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하멜기념비가 서 있다. 용머리를 관광하는데는 한시간 정도 소요된다. 용머리는 CF와 영화의 촬영 장소로 이용되었다. 길이 30~50m의 절벽이 마치 물결 치듯 굽어져 있다. 연인들의 산책코스로도 좋으며 차를 세워두고 한바퀴 돌아보는데 30분 정도 소요된다.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바닷가 바로 옆으로 길이 나 있다. 해녀들이 직접 잡아왔다는 해삼을 좌판에 내놓고 판다.
해안도로를 따라 대정쪽으로 옮기면 송악산이다. 높이는 겨우 104m이지만 바다와 직벽을 이루고 있는 명소이다. 초원에는 조랑말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고, 바다에는 형제섬이 그림같이 떠 있다. 절벽아래에는 일제때 일본인들이 연합군의 공격을 피해 팠다는 굴이 보인다.
<대한민국구석구석에서 인용>
▼용머리해안 원경...
▼용머리해안에는 하멜상선기념관이 있다.
▼용머리해안은 바다로 깊숙히 들어온 형태인데 이런 곳에는 기운이 충만해 있다.
▼용머리해안에서 바라본 산방산...
▼용머리해안에는 사시사철 유채꽃이 피어있다.
7.산방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184번지에 위치한 한국불교태고종 제주교구 소속 사찰. 현재 산방산에는 10여 곳의 사찰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 사찰이 바로 산방사이다. 산방사는 1928년 4월 혜일 승려의 법맥을 이어받아 류정호 보살이 개산하여 오늘날까지도 불법을 통해 많은 중생들을 깨달음에 이르게 하고 있다. 산방사 6대 주지인 수만 승려가 1996년 대웅전과 요사채·조왕단·종각 등을 대대적으로 중수하기에 이르렀고, 이를 통해 새롭게 단장하였다. 이와 더불어 같은 해에 남북 통일과 국태 민안을 발원하는 높이 9.6m의 해수관세음보살을 조성하였는데, 이는 제주도 내 최대의 석불이라 할 수 있다.
산방사는 현재 깨침과 나눔의 열린 도량을 지향하고 있는데 특히 제주 관광의 명소 중 하나인 산방산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주민은 물론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한국 불교를 널리 알리는 가람으로 도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음백과에서 인용>
▼산방사 해수관음상...
▼산방사 아래에 있는 보문사 약사불... 오히려 산방사보다 훨씬 더 커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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