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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성남]안침(安琛) 묘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20. 6. 19. 09:00

    안침(安琛) 묘

     

    오랜 전에 답사한 묘들이 임시저장으로 해놓고 잊고 지냈었는데 지금 다음에서 임시저장을 없애려고 하다보니 오래된 자료들을 그냥 놔두기에는 부담되서 꺼내 글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막상 올리려니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자료도 오류가 보이고 해서 글은 가급적 생략하고 사진 위주로 올리니 이해 바란다.

     

    안침(安琛)

     

    오래 전에 답사를 한 묘역인데 못 보고 묘만 보고 왔다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자진(子珍). 호는 죽제(竹齊). 안종약(安宗約)의 증손이고, 증이조참판 안구(安玖)의 손자이며, 부윤 안지귀(安知歸)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형조참판 박이창(朴以昌)의 딸이고, 부인은 광주이씨 이수철(李守哲)의 딸이다. 예조참의를 지낸 안호(安瑚)가 형이다.
    1462년(세조 8)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였고, 1466년 왕이 강원도에 행차하여 시행한 고성별시문과(高城別試文科)에 2등으로 급제하였다. 정자(正字), 사록(司錄), 사헌부 감찰을 지냈으며, 1471년(성종 2) 신설된 예문관에 당대의 명사로 뽑혀 등용되었다. 부수찬(副修撰), 정언(正言), 이조정랑, 교리(校理), 응교(應敎), 장령(掌令) 등을 거쳐, 1481년 성균관사성이 되었다.
    한때 임사홍(任士洪)의 간사함을 폭로하여 임금의 노여움을 사서 파면되었으나 임사홍이 물러난 뒤에 다시 등용되어 군기시정(軍器寺正), 부제학, 동부승지, 우승지를 역임하였다. 1487년 양주목사로 나갔다가 1493년 이조참의를 거쳐, 지중추부사로서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인 1494년 대사성을 거쳐, 이조참판으로 부총관을 겸하였다.
    이어서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가 되어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고, 1498년(연산군 4)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이듬해 한성부우윤, 대사헌을 역임하였고, 1500년 경상도병마절도사로 나갔다가 1502년 호조참판 겸 예문관제학이 되었다. 1506년 평안도관찰사로 있다가 중종반정으로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1514년(중종 9) 특별히 공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바로 병사하였다.
    문장에 능하고, 필법은 송설체(松雪體)로서 해서에 뛰어났다. 글씨로는 성남시 분당구 율동에 있는 서평군 한계희(韓繼禧)의 신도비와 시흥시에 있는 월성군 이철견(李鐵堅)의 신도비,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에 있는 호안공 황치신(黃致身)의 신도비, 파주시 문산읍 내포리의 문안공 성임(成任)의 신도비, 파주 탄현면 금승리에 있는 익성공 황희(黃喜)의 신도비가 있다.
    안침 묘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 산 28번지에 있다.
    <디지탈성남문화대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안침(安琛) 묘

    소재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 산 28번지

    관리자(연락처)

    순흥안씨

     

    ▼ 공조판서 안침(安琛) 묘역 올라가는 길

     

    ▼ 공조판서 안침(安琛) 묘역

    ▼ 공조판서 안침(安琛) 신도비

    ▼ 공조판서 안침(安琛) 신도비

    ▼ 공조판서 안침(安琛) 묘

    ▼ 공조판서 안침(安琛) 묘표

    ▼ 공조판서 안침(安琛) 묘

    ▼ 안침(安琛) 배위 광주이씨 묘

    ▼ 안침(安琛) 묘 석물

    ▼ 안침(安琛) 묘

    ▼ 안침(安琛) 묘 후경

    ▼ 안침(安琛) 묘 후경

    ▼ 안침(安琛) 묘역 아래에 있는 전통찻집

     

    ▼ 안침의 형인 공조참판 안호(安瑚) 신도비

    ▼ 공조참판 안호(安瑚)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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