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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성남]금토동 안동권씨(安東權氏) 묘(권괄,권우,권굉)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20. 6. 13. 10:00

    금토동 안말 안동권씨(安東權氏) 세거지(世居地)

     

    자료를 보니 2012년에 다녀온 곳인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자료를 뒤져보니 성남시 디지털문화대전에 자세히 나와있어 그 자료를 옮기고 사진은 예전 사진을 그대로 올린다. 자료를 보다보니 권괄, 권우 묘역은 같은 곳이고, 권굉 묘는 앞쪽에 있는 다른 능선으로 보인다.

     

    금토동 안말 안동권씨(安東權氏) 세거지(世居地)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안말[내둔토리(內屯土里)]은 조선 초의 대학자 권근(權近)의 손자이고 권제(權踶)[1387~1445]의 아들인 안양공(安襄公) 권반(權攀)[1419~1472]이 무진정(無盡亭)을 짓고 유람하던 곳이었다. 권반이 세조 12년(1466) 예조참판 겸 경기도관찰사를 겸직할 때 장자인 충훈부 도사 권괄(權佸)이 죽자 장지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세조가 그 사정을 듣고 광주 월천(月川) 청계산 아래를 하사하였다. 그로 인해 이곳이 권씨의 세거지가 되었다.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안말은 이곳에 안동권씨의 장지를 정한 이래 권씨의 세거지가 되었다. 
    권반의 손자로 금토동에 최초로 정착한 권우(權愚)는 원주목사를 지내고, 아들이 3형제인데, 권굉(權硡)은 화성군이요, 권확(權確)은 판서이고, 권금(權䃢)은 승지였다. 권굉의 장남 권긍(權兢)[1527~1617]은 충좌위 대호군, 3남 권징(權徵)[1538~1598]은 관직은 공조판서, 시호는 충정이었으며, 후손이 대대로 현달하였다.
    <디지털성남문화대전에서 발췌>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금토동 안동권씨(安東權氏) 묘(권괄,권우,권굉)

    소재지

    경기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산 57-4

    관리자(연락처)

    안동권씨 안양공 종중

     

    권괄(權佸) 묘

     

    권괄(權佸)[생몰년 미상]의 본관은 안동이며 안양공(安襄公) 권반(權攀)의 아들이다. 음보(蔭補)로 충훈도사(忠勳都事)나 승정원(承政院)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권괄(權佸)의 묘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의 청계산 자락 안동권씨 묘역에 동남향하여 있다. 금토동에서 고등동 방향으로 용인서울고속도로 금토TG 좌측 부근이며, 묘 상단에 권우(權愚) 묘가 있다.
    원형 합장분의 봉분 형태를 갖추고 있다. 묘역의 석물로는 봉분 중앙에 묘표, 혼유석, 상석과 상석 좌우에 복두(幞頭)의 문인석 한 쌍을 갖추고 있다.
    권괄(權佸)의 묘표는 봉분 중앙에 동남향하여 있는데 비좌와 비신 월두형(月頭形)이다. 비신은 흑적색으로 탈색이 심한 편이다. 비문은 앞면에만 있으며, 전면에 세로 두 줄로 ‘□□大夫行忠勳府都事權佸之墓 □□□高靈朴氏之墓(□□대부행충훈부도사권괄지묘 □□□고령박씨지묘)’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의 규모는 총 높이 152㎝로 비좌는 높이 30㎝, 너비 84㎝, 두께 54㎝, 비신은 높이 122㎝, 너비 45㎝, 두께 13㎝이다.
    현재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산57-4에 위치하고 있으며, 안동권씨 안양공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디지털성남문화대전에서 인용> 

    ▼ 권괄(權佸) 묘 전경

    ▼ 권괄(權佸) 묘 

    ▼ 권괄(權佸) 묘표

    ▼ 권괄(權佸) 묘 문인석

    ▼ 권괄(權佸) 묘 후경

     

    권우(權愚) 묘

     

    권우(權愚)는 1461년(세조 7)에 출생하여 문신으로 활약한 조선 전기의 인물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희안(希顔)으로, 안양공(安襄公) 권반(權攀)의 장손이며, 도사(都事) 권활의 아들이다. 배위는 증정부인 연일 정씨(贈貞夫人延日鄭氏)로 별제 정순(鄭淳)의 딸이고 병조판서 정연(鄭淵)의 증손녀이다. 음보(蔭補)로 벼슬에 나가 통정대부(通政大夫)로서 원주목사에 이르렀으며, 뒤에 아들과 손자 등이 귀하게 됨에 따라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으로 추증되고 영가군(永嘉君)에 봉해졌다.
    묘소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의 권징 묘역과 남북으로 200m 가량 인접하여 청계산 자락의 선영 상부에 동남향(東南向)하고 있다.
    원형의 단독분은 용미와 활개를 갖추고 있으며, 봉분 높이 140㎝, 직경 460㎝이다. 봉분 중앙에는 묘표와 혼유석·상석·계체석 및 상석 좌우에 문인석 등의 석물을 갖추고 있다. 문인석은 안두(按頭) 로 통통한 모습이고, 크기는 좌가 182㎝에 얼굴부분 54㎝, 우는 156㎝에 얼굴부분 52㎝이다.
    묘표는 비좌와 비신 월두형으로 비좌는 백색 화강암제로 마모가 심한 편이다. 비신은 백색 대리석제이나 흑적색으로 변색되었고, 전면에 종2열의 대자(大字)로 ‘通訓大夫原州牧使權愚之墓 淑人延日鄭氏附葬(통훈대부 원주목사 권우지묘 숙인 연일정씨 부장) ’의 비문이 있다. 크기는 비좌 높이 38㎝·너비 85㎝·두께 48㎝, 비신 높이 129㎝·너비 47㎝·두께 15.5㎝이며 總高 167㎝이다.
    현재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산57-4에 위치하고 있으며, 안동권씨 안양공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디지털성남문화대전에서 인용> 


    ▼ 권우(權愚) 묘 전경

    ▼ 권우(權愚) 묘 전경

    ▼ 권우(權愚) 묘표

    ▼ 권우(權愚) 묘  문인석

    ▼ 권우(權愚) 묘 후경

     

    권굉(權硡) 

     

    권굉(權硡)[1508년~1568]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보(聖甫). 원주목사 영가군(永嘉君) 권우(權愚)의 장남이며 안양공(安襄公) 권반(權攀)의 증손자이다. 부인은 청주한씨로 군수 한승우의 딸이며, 후배는 여산송씨로 통례 송승은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조광조(趙光祖)의 문하에서 배웠고, 성수침(成守琛), 이문건(李文楗) 등과 더불어 도학에 전념하였다. 그는 경전 및 『소학(小學)』 등을 필사하여 조석으로 자제들을 가르쳤는데, 당시 사람들이 권굉의 학행이 높아 출사를 권하였으나 스승인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이 기묘사화(1519년)를 당하자 일체 과거시험에 나가지 않았다. 뒤에 그 학덕을 높이 여겨 영의정 상진(尙震)이 글을 보내 출사할 것을 권해도 듣지 않았다.
    권굉의 묘는 경기도 성남시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산57-1에 위치하고 있으며, 안동권씨 안양공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1568년(선조 1)에 사망 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아들 권징이 공조판서가 되자 다시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정(忠定), 화성군(花城君)에 봉해졌다.
    <디지털성남문화대전에서 인용> 

    ▼ 권굉(權硡) 묘 전경

    ▼ 권굉(權硡) 묘 전경

    ▼ 권굉(權硡) 묘표

    ▼ 권굉(權硡) 묘 석물

    ▼ 금토동 안동권씨 묘역 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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