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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남원윤씨 묘역(예조판서 윤돈, 윤극신, 윤엽)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20. 6. 8. 16:04
남원윤씨 묘역(예조판서 윤돈, 윤극신, 윤엽)
언제 다녀왔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임시저장으로 해놓아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한창 묘지답사를 진행할 때 판교 일대를 다녀온 것으로 기억한다. 다음에서 블로그 임시저장을 없앤다는 말이 있어 자료가 없어지기 전에 서둘러 글을 올리니 조금 미흡하더라도 이해 부탁드립니다.
금토동 남원윤씨 묘역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에 있는 남원윤씨의 묘역.
조선시대 이 지역에 세거하였던 남원윤씨의 선영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 윤극신(尹克新)과 그의 아들 윤돈(尹暾)과 윤엽(尹曄), 윤돈의 아들 윤형철 등의 묘소가 안장되어 있다. 이외에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 활동을 했던 윤재옥의 묘가 있다.
남원윤씨 묘역은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산44[달래내로221번길 16] 일원 능안골에 위치한다. 윤재옥의 묘는 인접한 주택가 내에 정동향하여 있다.
조선시대에 조성된 윤극신, 윤돈, 윤엽, 윤형철의 묘는 모두 북동향이며, 원형의 쌍분(雙墳) 형태이다. 묘역의 석물은 대부분 원래의 모습을 잘 갖추고 있어 시대에 따른 석물의 변천 과정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묘표는 형태상 비좌와 비신 월두형(月頭形) 및 비좌, 비신, 8작 지붕 모양의 지붕돌[옥개석]의 두 가지 형태로 단순하다. 봉분 중앙에 원래의 묘표가 위치하나, 이와 별도로 봉분 좌측에 일률적으로 근래에 마련한 묘표를 세워 놓았다. 비신의 비문은 문장에 능하였던 직계 후손들과 후학이 직접 짓고 써서 세워 놓았다.
<디지털성남문화대전에서 인용>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금토동 남원윤씨 묘역(金土洞南原尹氏墓域)
소재지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산44[달래내로221번길 16] 일원
관리자(연락처)
남원윤씨
예조판서 윤돈(尹暾)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여승(汝昇), 호는 죽창(竹窓). 윤시영(尹時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천군수(林川郡守) 윤징(尹澄)이다. 아버지는 윤극신(尹克新)이며, 어머니는 동몽교관 남견손(南堅孫)의 딸이다. 이황(李滉)·기대승(奇大升)의 문인이다.
1579년(선조 12) 생원·진사 두 시험에 모두 합격했으며, 1585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정자·수찬·교리 등을 차례로 지냈다.
1591년 이조정랑으로서 건저문제(建儲問題: 세자 책봉 문제)로 유배된 정철(鄭澈)에 연루된 백유함(白惟咸)·유공신(柳拱辰) 등을 학관(學官)에 천거했다가 선조의 노여움을 사서 추고를 받고 삭직되었다.
이듬 해 복관되었고, 이 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하였다. 1593년 명나라 장수 총병(總兵) 낙상지(駱尙志)·유격(遊擊) 오유충(吳惟忠)이 나오자 부교리로서 접반관(接伴官)으로 활약했고, 이듬 해 사인을 거쳐 응교로 시강관이 되었다.
이어 직제학·동부승지·도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598년 병조참의를 거쳐 대사간이 되어, 척신(戚臣)의 직을 파할 것과 종계변무(宗系辨誣: 명나라 『태조실록』과 『대명회전』에 이성계의 가계가 고려의 권신 이인임의 후손으로 잘못 기록된 것을 시정하도록 요청한 일)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 뒤 형조참의·예조참판을 거쳐 강원도관찰사로 나갔으나 임무를 다하지 못한다는 질책을 받았다.
1600년 다시 도승지·예조참판을 거쳐 부제학이 되었을 때, 이미 고인이 된 성혼(成渾)에 대해 왕을 호종하지 않았고 간신들과 한 당이었다고 탄핵해 추삭(追削: 죽은 뒤에 생전의 벼슬을 빼았음)하게 하였다.
1602년 대사간이 되었으나 체직을 원해 이조참판으로 옮겼다. 이후 대사성·도승지·병조참판을 거쳐, 1604년 공조판서에 올라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 뒤 충청도관찰사·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하고, 1608년(광해군 즉위년) 선조가 죽자 산릉도감제조(山陵都監提調)를 거쳐 예조판서가 되었다. 그러나 장마로 산릉이 무너지자 그 책임으로 파직되었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금토동 남원윤씨 묘역(金土洞南原尹氏墓域)에서 제일 어른은 윤극신 선생인데 차남 예조판서 윤돈(尹暾)이 이름을 날려 윤돈을 먼저 올린다. 묘역 최상단에 부친 윤극신, 하단 중에서 제일 위가 형님 윤엽, 그 다음이 윤돈 차남인 윤형철, 세번째가 윤돈 묘다. 그 아래로 장남 윤형준 묘가 있다.
▼ 예조판서 윤돈(尹暾) 묘비
▼ 예조판서 윤돈(尹暾) 묘비 후면
▼ 예조판서 윤돈(尹暾) 묘 백호 석물
▼ 예조판서 윤돈(尹暾) 묘 청룡 석물
▼ 예조판서 윤돈(尹暾) 묘 후경
▼ 금토동 남원윤씨 묘역(金土洞南原尹氏墓域) 제일 상단에 있는 윤돈의 부친 윤극신(尹克新) 묘
▼ 윤돈의 부친 윤극신(尹克新) 묘
▼ 윤돈의 부친 윤극신(尹克新) 묘비
▼ 윤돈의 부친 윤극신(尹克新) 묘 석물
▼ 윤돈의 부친 윤극신(尹克新) 묘 후경
▼ 윤돈의 부친 윤극신(尹克新) 묘 아래로 윤엽, 윤돈 등 후손들 묘가 염주처럼 들어서 있다.
▼ 윤돈의 부친 윤극신(尹克新) 묘 입수도두
▼ 윤돈의 부친 윤극신(尹克新) 묘 후경... 청룡과 조안산
▼ 윤돈의 부친 윤극신(尹克新) 묘 백호방
▼ 윤돈의 부친 윤극신(尹克新) 묘 후경... 조산이 막아주어 물이 앞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방지하였다.
▼ 윤돈의 형 윤엽(尹曄) 묘
▼ 윤돈의 형 윤엽(尹曄) 묘비
▼ 윤돈의 형 윤엽(尹曄) 묘비
▼ 윤돈의 형 윤엽(尹曄) 묘
▼ 윤돈의 형 윤엽(尹曄) 묘
▼ 윤돈의 장남 윤형준(尹衡俊) 묘
▼ 윤돈의 장남 윤형준(尹衡俊) 묘비
▼ 윤돈의 장남 윤형준(尹衡俊) 묘비 후면
▼ 윤돈의 장남 윤형준(尹衡俊) 묘에서 바라본 묘역 입구
▼ 윤돈의 장남 윤형준(尹衡俊) 묘 후경
▼ 윤돈의 차남 윤형철(尹衡哲) 묘
▼ 윤돈의 차남 윤형철(尹衡哲) 묘
▼ 윤돈의 차남 윤형철(尹衡哲) 묘비
▼ 윤돈의 차남 윤형철(尹衡哲) 묘비 후면
▼ 윤돈의 차남 윤형철(尹衡哲) 묘 석물
▼ 윤돈의 차남 윤형철(尹衡哲) 묘 후경... 바로 앞에 묘가 부친 윤돈 묘... 임란 후에는 역장을 기피했는데 아마도 묘자리가 부족해서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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