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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원주]벽계수(碧溪守) 이종숙(李終叔) 묘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20. 8. 30. 13:11
벽계수(碧溪守) 이종숙(李終叔) 묘
벽계수 이종숙 묘는 오래전에 답사해서 임시저장 형태로 저장해 놓은 곳인데 이번에 다음 블로그 정책이 아마도 임시저장을 없애는 것 같아 자료가 없어질지 몰라 꺼내서 올린다. 그러다보니 오래되서 내용도 희미하고 감흥도 별로 없지만 다른 곳에서 자료를 찾아 짜깁기로 올리니 너른 이해 바란다.
벽계수는 황진이와 연관성 때문에 알려진 인물이지만 정작 황진이의 정인은 소세양으로 알려져 있고, 마음속 사숙은 서경덕으로 전해진다. 시조 한 수에 나온 인물이란 것 때문에 벽계수가 관심을 받지만 저는 별로 내키지 않아 답사를 해놓고도 글을 올리지 않았었다. 그래도 벽계수가 이종숙인 것만은 확실하니 사실에 근거해서 올린다.벽계수(碧溪守) 이종숙(李終叔)
벽계수(碧溪守, 1508년 ~ ?)는 조선의 왕족이다. 세종의 서자 영해군의 손자로, 길안도정(吉安都正) 의(義)의 5남이다. 이름은 이종숙(李終叔)이다.
벽계수는 거문고에 능하고 호방하여 풍류를 즐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황진이를 만났을 때는 정 4품 수(守)의 관직에 있을 때로 추정하나, 1519년 기묘사화 때 가문이 풍비박산하여 불우하게 보내다가 1545년(인종 1년) 경에 신원된 것으로 보인다.
이종숙의 묘는 당초 경기도 시흥군 동면 봉천리 삼성산에 위치해 있었으나 85년 토지수용관계로 전주이씨 영해군파 종친회에서 현재 위치인 문막읍 동화리 산30번지로 이장했고 정부인 해평 윤씨와 합장돼 있다. 해주 윤씨 윤희평의 딸과 혼인하여 3남 1녀를 두었다
<위키백과에서 발췌>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벽계수(碧溪守) 이종숙(李終叔) 묘
소재지
강원 원주시 문막읍 동화리 산 90
관리자(연락처)
전주이씨 영해군파
황진이와 벽계수 이야기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말라
일도창해하면 다시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 하니 쉬어간들 엇더리’
너무나 유명한 황진이의 시조다. 이 시조에서 ‘명월’은 황진이임이 명확하나 ‘벽계수’가 누구라는 것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몇몇 문헌에서 벽계수로 지칭된 사람은 있었으나 정확히 고증된 자료는 없다. 이런 가운데 벽계수는 세종대왕의 아들인 영해군 당의 제2남 길안도정 의의 다섯째 아들인 벽계도정 종숙이라는 사실을 원주 박문성(평원문화연구소장)씨가 확인했다.
1873년(고종 10년) 서유영이 쓴 ‘금계필담’에 보면 종실이며, 거문고를 즐겼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유추해서 전주 이씨 27세(영해군파 3세) 조선 제4대 임금 세종의 증손인 벽계도정 이종숙임을 밝혀냈다.
금계필담(錦溪筆談) 내용을 옮겨본다.
종실(宗室) 벽계수가 황진이를 만나기를 원하였으나 ‘풍류명사(風流名士)'가 아니면 어렵다기에 손곡(蓀谷) 이달(李達)에게 방법을 물었다.
“그대가 황진이를 만나려면 내 말대로 해야 하는데 따를 수 있겠소?”라고 물으니
“당연히 그대의 말을 따르리다”라고 답했다.
“그대가 소동(小童)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가지고 뒤를 따르게 하여 황진이의 집 근처 루(樓)에 올라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타고 있으면 황진이가 나와서 그대 곁에 앉을 것이오. 그때 본체만체하고 일어나 재빨리 말을 타고 가면 황진이가 따라올 것이오.
취적교(吹笛橋)를 지날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일은 성공일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오” 했다.
벽계수가 그 말을 따라서 작은 나귀를 타고 소동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들게 하여 루에 올라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한 곡 탄 후 일어나 나귀를 타고 가니 황진이가 과연 뒤를 쫒았다.
취적교에 이르렀을 때 황진이가 동자에게 그가 벽계수임을 묻고
청산리 벽계수(靑山裏 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一到蒼海)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시조를 읊으니, 벽계수가 그냥 갈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리다 나귀에서 떨어졌다.
황진이가 웃으며
“이 사람은 명사가 아니라 단지 풍류랑일 뿐이다”라며 가버렸다.
벽계수는 매우 부끄럽고 한스러워했다고 한다.▼ 벽계수(碧溪守) 이종숙(李終叔) 묘 입구... 세종대왕의 증손이다.
▼ 벽계수(碧溪守) 이종숙(李終叔) 묘... 이렇게 축대를 쌓아 묘를 조성하면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결론적으로 합곡형이 자리가 되려면 바람으로부터 안전해야 가능해진다.
▼ 벽계수(碧溪守) 이종숙(李終叔) 묘 전경
▼ 벽계수(碧溪守) 이종숙(李終叔) 묘... 상석에 묘비명을 새겼는데 후에 묘비를 별도로 세웠다.
▼ 벽계수(碧溪守) 이종숙(李終叔) 묘 상석...
▼ 벽계수(碧溪守) 이종숙(李終叔) 묘비...
▼ 벽계수(碧溪守) 이종숙(李終叔) 묘비 후면... 묘비 내용이 이상하게 기록했다. 원래 증조,조부,고,공,배,자손... 이런식으로 써야하는데 배위(配位), 자식이 먼저 나오고 공(公)의 내용이 나중에 나와서 헷갈리게 되어 있다.
▼ 벽계수(碧溪守) 이종숙(李終叔) 묘 석물... 근자에 세우는 석물은 대부분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라 모양이나 조각기법이 거의 비슷하다.
▼ 벽계수(碧溪守) 이종숙(李終叔) 묘 백호방 석물
▼ 벽계수(碧溪守) 이종숙(李終叔) 묘 입수도두
▼ 벽계수(碧溪守) 이종숙(李終叔) 묘 입수룡...
▼ 벽계수(碧溪守) 이종숙(李終叔) 묘 후경... 이 부근의 묘들은 대부분 앞쪽에 보이는 건등산을 조산으로 삼고 묘를 썼다. 군계일학처럼 준수한 산 하나가 이 지역의 인물을 예견한다.
▼ 장남인 문성령(文城令) 이조(李恌) 묘
▼ 장남인 문성령(文城令) 이조(李恌) 묘
▼ 장남인 문성령(文城令) 이조(李恌) 묘비
▼ 장남인 문성령(文城令) 이조(李恌) 묘비 후면...
▼ 문성령(文城令) 이조(李恌) 묘 석물
▼ 문성령(文城令) 이조(李恌) 묘 측경
▼ 문성령(文城令) 이조(李恌) 묘 입수도두... 너무 가파르다.
▼ 문성령(文城令) 이조(李恌)의 장남 선무랑(宣務郞) 원경(元慶) 묘
▼ 문성령(文城令) 이조(李恌)의 장남 선무랑(宣務郞) 원경(元慶) 묘표
▼ 문성령(文城令) 이조(李恌)의 장남 선무랑(宣務郞) 원경(元慶) 묘비
▼ 문성령(文城令) 이조(李恌)의 장남 선무랑(宣務郞) 원경(元慶) 묘비 후면
▼ 문성령(文城令) 이조(李恌)의 장남 선무랑(宣務郞) 원경(元慶) 묘 석물
▼ 문성령(文城令) 이조(李恌)의 장남 선무랑(宣務郞) 원경(元慶) 묘 입수도두... 뒤쪽으로 벽계수 묘가 보인다.
▼ 문성령(文城令) 이조(李恌)의 장남 선무랑(宣務郞) 원경(元慶) 묘 후경
▼ 묘역에는 문중 납골묘가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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