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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여주]제간공 권규·경안궁주묘역(齊簡公 權跬·慶安宮主墓域)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20. 9. 6. 23:55

    제간공 권규·경안궁주묘역(齊簡公 權跬·慶安宮主墓域)

     

    아주 오래 전에 묘지답사를 했는데 그동안 임시저장 형태로 보관해 오다가 이제야 꺼내서 올린다. 지금의 묘역이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대략적으로 확인해본 결과 예전과 유사한듯 하여 그냥 올린다.

    제간공 권규는 권근의 3남으로 배위는 태종의 3녀 경안궁주(당시에 공주를 궁주로 호칭)였는데 공주가 23세의 나이로 먼저 요절했고,  권규 자신도 29세로 요절했다. 그래도 일찍 결혼한 덕에 2남1녀의 자손이 있었는데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 자식들도 크게 되지는 못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풍파에 많이 시달린듯 보인다.  권규묘 백호쪽에 장남 권담 묘가 있고 그 아래에는 손자 권은 묘가 있다.  답사기는 답사 후 바로 올려야 느낌이 살아있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합니다.

    다음 블로그가 개악 되면서 글쓰기가 너무 힘들다. 가장 힘든게 뒤로가기(백스페이스)가 없어서 한번 지워지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되어 회복이 되지 않는다. 몇 번 실수하고 다시 그림을 찾아 넣느라 너무 힘들었다. 다음은 무슨 뜻으로 블로그를 이처럼 개악(改惡)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제간공 권규(齊簡公 權跬)

     

    본관은 안동(安東). 할아버지는 검교정승(檢校政丞) 권희(權僖)이며, 아버지는 찬성(贊成) 권근(權近)이다.
    1403년(태종 3) 태종의 3녀 경안공주(慶安公主)와 결혼하여 길천군(吉川君)에 봉해졌다. 1407년 호분위상호군(虎賁衛上護軍)을 거쳐 이듬해 겸우군도총제(兼右軍都摠制)가 되었다. 1413년 명나라 성조(成祖)의 동정을 탐문하기 위하여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여칭(呂稱)과 함께 명나라에 가서 성조로부터 구마(廐馬) 3필, 견단(絹段) 각각 8필씩을 하사받고 돌아왔다.
    1416년 길창군(吉昌君)으로 다시 봉작되고, 1418년에 의용위절제사(義勇衛節制使)가 되었다. 1421년 29세에 죽자 3일 동안 조회를 중지하였다. 품성이 온후하고 매우 겸손하였다. 시호는 제간(齊簡)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경안공주(慶安公主)

     

    경안공주(慶安公主, 1393년 ~ 1415년 5월 30일(음력 4월 22일))는 조선의 공주로, 제3대 태종(太宗, 1367~1422, 재위: 1400~1418)과 원경왕후 민씨(元敬王后 閔氏, 1365~1420)의 3녀이며, 세종(世宗, 1397~1450, 재위: 1418~1450)과 양녕대군(讓寧大君, 1394~1462)의 누나이다.
    경안공주는 1403년(태종 3) 음력 12월 18일(양력 1404년 1월 30일) 길창군(吉昌君) 권규(權跬, 1393~1421)와 혼인하여 2남 1녀를 두었다는 실록 기록이 있지만 딸에 대한 기록이 더 이상 없는 것으로 보아 딸은 일찍 죽은 듯 하다. 1415년(태종 15) 5월 30일(음력 4월 22일) 23세의 나이로 죽었다. 태종은 경안공주의 병을 치료하는데 있어 의관 양홍달(楊弘達)의 과실이 있었다 하여 그 신분을 폐하여 서인으로 만들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경안공주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궁주(宮主)는 임금의 세째 딸인데, 나면서부터 정숙하고 예뻤으며, 총명과 지혜도 보통 사람과 달라서, 임금과 중전[兩宮]의 사랑을 한데 모았었다. 길천군(吉川君) 권규(權跬)에게 시집가니, 부덕(婦德)이 있어서 시부모를 섬기는데 예절을 극진히 하였고, 가정을 다스림에 법도가 있었다. 죽으니 나이가 23세로서,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았다. 임금이 애도(哀悼)하여 3일 동안 조회를 정지[輟朝]하였다. 집안이 가난하여 대·소염(大小斂)에 소용되는 물건이 부족하므로, 명하여 상의원(尙衣院)의 의대(衣襨)로 부의(賻儀)를 주게 하고, 장사는 종친(宗親)의 상등례(上等禮)를 쓰게 하였다. 권규가 불사(佛事)를 행하지 못하게 청하여, 한결같이 《예경(禮經)》의 제도에 따랐다. 궁주와 충녕 대군(忠寧大君)은 천성과 기품이 서로 닮아서, 궁중에서 그 어짊[賢]을 함께 일컬었다. 궁주는 매양 충녕의 덕기(德器)가 날로 이루어짐을 감탄하였으니,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태종실록》 29권, 1415년(태종 15) 4월 22일
    <위키백과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경기도기념물 제214호

    문화재명칭

    제간공 권규·경안궁주묘역(齊簡公 權跬·慶安宮主墓域)

    소재지

    경기 여주시 점동면 덕평리 산 9-1

    관리자(연락처)

    안동권씨

     

    제간공 권규·경안궁주묘역(齊簡公 權跬·慶安宮主墓域)

     

    제간공 권규·경안궁주묘역(齊簡公 權圭·慶安宮主墓域)은 경기도 여주시 점동면 덕평리에 있는 묘역이다. 2007년 9월 7일 경기도의 기념물 제214호 '제간공 권규묘역'으로 지정되었다가, 2017년 12월 26일 '제간공 권규·경안공주묘역'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 묘는 조선초기의 문신으로 1404년(태종 4) 태종의 3녀 경안공주(慶安公主)와 결혼하고 호분사 상호군 겸 우군도총제를 지낸 권규(시호:제간(齊簡))와 경안공주의 상하합장묘이다.
    조선초기의 대표적인 왕실 관련 부마와 공주의 합장묘로 조성 당시의 원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역사적, 묘제적으로 그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위키백과에서 인용>

     

     

    ▼ 제간공 권규(齊簡公 權跬) 신도비... 

     

    ▼ 제간공 권규·경안궁주묘역(齊簡公 權跬·慶安宮主墓域)... 정식 명칭은 경안궁주로 사용하고 해설을 할 때나 일반적인 호칭은 경안공주로 한다. 묘역이니까 경안궁주로 한다.

     

    ▼ 제간공 권규·경안궁주묘역(齊簡公 權跬·慶安宮主墓域) 안내문

     

    ▼ 제간공 권규·경안궁주묘역(齊簡公 權跬·慶安宮主墓域)... 상하장으로 되어 있는데 앞쪽이 경안공주, 뒤쪽이 제간공 권규 묘이다.

     

    ▼ 경안궁주묘(齊簡公 權跬·慶安宮主墓) 전경

     

    ▼ 경안궁주묘(齊簡公 權跬·慶安宮主墓) 석물

     

    ▼ 경안궁주묘(齊簡公 權跬·慶安宮主墓) 후경... 2007년도에 도굴을 당했다.

     

    ▼ 제간공 권규 묘(齊簡公 權跬 墓) 전경

     

    ▼ 제간공 권규(齊簡公 權跬) 묘표

     

    ▼ 제간공 권규 묘(齊簡公 權跬 墓) 입수처

     

    ▼ 제간공 권규 묘(齊簡公 權跬 墓) 입수처를 곡장형태로 만들었다.

     

    ▼ 제간공 권규 묘(齊簡公 權跬 墓) 측후경

     

    ▼ 제간공 권규 묘(齊簡公 權跬 墓) 후경... 

     

     

     

    ▼ 제간공 권규·경안궁주(齊簡公 權跬·慶安宮主)의 장남 권담(權聃) 묘비 전,후면

     

    ▼ 제간공 권규·경안궁주(齊簡公 權跬·慶安宮主)의 장남 권담(權聃) 묘 전경

     

    ▼ 제간공 권규 장남 권담(權聃) 묘표

     

    ▼ 제간공 권규 장남 권담(權聃) 묘 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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