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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 조경(趙絅) 묘, 척화신으로 영구불서가 된 청백리..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1. 3. 7. 00:33
조 경(趙 絅 , 1586~1669))
본관 한양(漢陽) , 자 일장(日章) , 호 용주(龍洲) , 시호 문간(文簡)
조익남(趙翼男)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유개(柳塏)의 딸이다
선생(先生)은 어렸을 때부터 문사(文詞)가 대단히 명성이 있었다.
1612년(광해군 4)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당시에 이이첨(李爾瞻)이 한창 용사(用事)하고 있었는데, 선생과 더불어 사사로이 교분을 맺고자 하여
선생을 찾아와서는 도타운 뜻을 보이었다.
그 때(1616년 광해 8년) 마침 조정에서 과거를 베풀었는데, 이이첨(李爾瞻)이 사람을 보내어 붓 하나를
싸 보내면서 말하기를, “애오라지 과거시험장에서 쓰기 바란다.” 하였다. 선생이 붓을 꺼내어 보니 대롱만
있고 털은 없었으며, 혁제(赫蹄)에 세서(細書)로 쓴 시표(試表)가 들어있었다. 이에 선생은 크게 놀라서
곧바로 짐꾼을 사서 살림살이를 싸들고 영남(嶺南) 거창(居昌)으로 돌아간 다음 은거, 다시는 과거시험에
응시하지 않았다. -《택남잡록(澤南雜錄)》에서 나왔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형조좌랑 목천현감 등을 지내고1626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장원급제한 후 정언 교리 등을 역임 사가독서(賜暇讀書) 하였으여 이조정랑을 지내고 1636년 사간(司諫)때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척화(斥和)를 주장하였고 응교 집의 등을 지냈다
1643년 통신부사(通信副使)로 일본을 다녀왔으며 형조참의 이조참의 전주부윤 대제학 형조판서 이조판서
예조판서 를 역임 1650년 청(淸)나라 사문사가 와서 척화신(斥和臣)의 처벌과 주문(奏文)의 부실 함을
추궁하자 공이 그 책임을 독담하고 영의정 이경석(李景奭)과 함께 백마산성에 위리 다음해에 영구불서의
조건으로 풀려나 포천에 낙향하였다
1669년 졸후 영의정에 추서되고 숙종때 청백리에 록선되었다 (포천의 용연서원 , 흥해의 곡강서원 ,
춘천의 문암서원에 배향) <<용주유고(龍洲遺稿>><< 동사록(東사錄>> <<용주일기(龍洲日記)>>
조선시대 문형(文衡)에 청백리(淸白吏)를 겸한 8인 중에 한분이다
조경의 신도비각
조경의 사당... 영모제
조경의 묘 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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