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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춘곡 정탁 묘, 고려시대의 묘제란 이런 것...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1. 3. 14. 21:30
조선 개국(開國) 일등공신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인 정탁(鄭擢, 1363~1423)의 묘이다. 본관은 청주(淸州),
자(字)는 축은(築隱), 호는 춘곡(春谷) 이다. 정탁은 1382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춘추관 수찬(春秋館修撰), 사헌규정(司憲糾正), 좌정언, 호조좌랑, 병조좌랑을 거쳐
광흥창사(廣興倉使) 등을 역임 하였다. 병조좌랑때 척불(斥佛)한 죄로 극형을 받게 된
김초(金貂)를 정몽주(鄭夢周)와 함께 구해 냈다. 1392년 이성계를 도와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되고 사헌지평(司憲持平), 교주강릉도안렴부사(交州江陵道按廉副使)를 거쳐
대장군으로 성균관 대사성이 되었다.
1396년 중추원 우승지로 있을 때 전년부터 조선과 명나라의 현안문제로 대두된표전문제(表箋問題)의 찬표인(撰表人)으로 명나라에 가서 해명하고 돌아와 좌승지(左承旨)를
거쳐 1398년 중추원부사가 되었다. 1398년 청성군(淸城君)에 봉하여 졌다.
제1차 왕자의 난때 방원(芳遠)을 도와 정사공신(定社功臣) 2등이 되었다. 이어 첨서중추원사
(簽書中樞院事), 춘추관대학사(春秋館大學士), 정당문학(政堂文學)을 거쳐 지의정부사(知議
政府事), 삼사우사(三司右使)를 지냈다. 1411년 의정부참찬사(議政府參贊事)가 되고 이듬해
정조사로 명나라에 다녀와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에 진봉 되었다. 그 다음 1421년 진하사
(進賀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우의정(右議政)에 올랐다.
묘역은 전형적인 고려 시대 양식을 따랐으며 봉분 전면 양쪽을 길게 늘여 호석을 쌓았다.봉분 가운데 상석과 상석의 우측 아래에 비석을 세웠으며 양쪽으로 문인석을 각각 세웠다.
정탁 묘 안내판정탁 묘... 묘역이 넓어 정면에서는 한 화면에 담기 힘들다..
정탁 묘역 우측..
정탁 묘역 좌측
정탁 묘 정면...
정탁 묘비..
정탁 묘 청룡쪽 문인석
정탁 묘 백호쪽 문인석...
정탁 묘역.. 묘역 앞쪽을 내미는 형태는 황희정승 묘에서도 보듯 고려 양식이다..
정탁 묘 후경.. 앞쪽 안산이 준수하다..
많은 답사객이 운집해있다...
정탁 묘 동영상
<풍수판단-현장토론>
ㅇ 대유혈(大乳穴)로 중출맥에 놓임.
ㅇ 선익이 없으면 설기하는데 선익이 붙어서 전순이 생겨남
ㅇ 주위 나성원국으로 꼭 콤파스로 돌려 놓는듯 함.
ㅇ 자좌오향(子坐午向)에 정파로 정왕향, 차고소수
ㅇ 남자가 다리를 벌린듯한 형태로 정확히 정혈처에 점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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