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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 강화]양명학 강화학파의 비조, 정제두선생 묘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1. 7. 5. 10:00

     

    정제두(鄭齊斗)

     

    1649년(인조 27)∼1736년(영조 12). 조선 후기의 유학자·양명학자.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사앙(士仰), 호는 하곡(霞谷).
    1668년(현종 9) 별시문과 초시에 급제했으나 정국의 혼란을 통탄, 벼슬을 포기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1680년(숙종 6)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천거로 사포서별제(司圃署別提)가 되나 사퇴하였고, 1684년 공조좌랑(工曹佐郞)을 잠시 지낸 뒤 다시 사직하였다.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 중신(重臣)의 천거로 30여 차례나 요직에 임명되었으나, 숙종 때 주부(主簿) ·호조참의 ·회양부사(淮陽府使) ·한성부윤, 경종 때 대사헌 ·이조참판, 영조 때 우찬성(右贊成) ·원자보양관(元子輔養官) 등을 잠시 지냈을 뿐, 거의 다 거절하고 주로 학문연구에 전념하였다.

    처음에는 주자학(朱子學)을 공부하였으나, 뒤에 지식과 행동의 통일을 주장하는 양명학(陽明學)을 연구 발전시켜 최초로 사상적 체계를 세웠다. 문집으로 《하곡문집(霞谷文集)》과 저서로 《존언(存言)》 《성학설(聖學說)》 《논어해(論語解)》 《맹자설(孟子說)》 《중용해(中庸解)》 《천원설(天元說)》 《경학집요(經學集要)》 《경학서성(經學書成)》 등이 있다. <인터넷에서 발췌>

     

    ▼ 정제두선생 묘

     

    ▼ 정제두선생 묘 - 네비로 찍고가면 쉽게 묘소를 찾을 수 있다. 하일고개의 경사면에 묘소가

    위치해 있어서 비가 오는 당일에 보니 물이 급하게 내려간다.

     

    ▼ 정제두선생 묘 안내판

     

    ▼ 정제두선생 묘 정면

     

    ▼ 정제두선생 묘비

     

    ▼ 정제두선생 묘 청룡쪽 석물

     

    ▼ 정제두선생 묘 청룡쪽 문인석.. 문인석의 모습이 다른 지방과는 다르다..

     우리나라 사람 같지가 않다. 코는 또 누가 저리 베어갔는고....

     

    ▼ 정제두선생 묘 백호쪽 석물

     

    ▼ 정제두선생 묘 백호쪽 문인석

     

    ▼ 정제두선생 묘 후경.. 우측 지각으로 부모묘가 있고 좌측 지각으로도 무명씨묘가 있다.

     

    ▼ 정제두선생 부모묘.. 앞쪽이 부모, 뒷쪽이 정제두선생 묘

     

    ▼ 정제두선생 부친 정상징 묘

     

    ▼ 정상징 묘 후경

     

    ▼ 정상징 묘비

     

    ▼ 정제두선생 묘는 합곡혈에 위치해 있다. 이런 곳은 바람을 조심해야 하는데.. 겸혈(鉗穴)일까?

     

    ▼ 하우고개 정상에 세워진 정제두선생 숭모비

     

     

     정제두선생 묘 동영상

     

     

     

     정제두선생 묘 입구에서 묘역을 바라본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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