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상 다니던 길도 계절이 바뀌면
새삼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서울에서 지척에 있다보니 오다가다 들르는 곳이 있습니다.
충청도 내포지방......
마음속으로야 늘상 새기고 또 새겼지만
막상 처음으로 그곳에 발길이 닿은 것은
작년 이맘 때 였습니다.
처음 찾은 이후론 계속해서 매 계절마다
저절로 아무런 뜻없이 찾아드는 곳- 내포지방
이번으로 벌써 다섯번째 찾는 곳입니다.
어제는 입시지옥에 찌든 아들녀석을 동반하여
하루쯤 머리를 식혀준다는 미명아래
어딘지 묻지말고 따라오라고 하고선 찾아간 곳...
내포지방을 한바퀴 돌아왔습니다.
수덕사...
다른 무엇으로 표현하기보다는 대웅전 하나만을 가지고도
수덕사는 빛나는 곳입니다.
말없이 7백여년을 목재로 버티고 서있는 건물...
부석사의 무량수전처럼 배흘림기둥으로 아름답게 서있는 그 자태...
맛배지붕의 간결한 맛과 웅비하는 면분할의 멋...
어제는 안에 까지 들어가 공포와 들보의 짜임새를 구경하고 보니
많은 이들의 찬사가 거짓이 아님을 새삼 알았습니다.
절간을 찾으면서도 항상 시간에 쫒겨 찾지 못하던 암자들...
어제는 맘 먹고 덕숭산 수덕사의 최고봉에 있는
정혜사를 찾았습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산을 오르는 내 모습이 가히 상상이 가는지......ㅎㅎㅎ
그래도 만공스님의 유적이 있다는 그 믿음 하나로 꾸역꾸역 산을 타고 올라보니
그곳이 별유천지라.....
유적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기에
여기서는 그져 물소리와 새소리... 흘러가는 바람소리를 나누고져 합니다.
가야산으로 발을 옮기니
그곳엔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묘가 세인들의 명당 타령과 함께 놓여있더군요.
명당이란 어떤 곳일까...?
무척 궁금하던 차에 특별히 찾아간 곳
과연 누가봐도 한눈에 알수 있는 명당인 것 같더군요.
분지 형태의 산세와 지세를 한곳에 모두어 놓은 곳
그곳이 예전 가야사의 석등자리였었다니
한사람의 권력욕이 얼마나 무서운지 새삼 깊게 새겨보고 왔소이다.
오다가다 저수지마다 철새들이 옹기종기 모여 물살을 가르고 노는 모습이
평화로운 겨울의 마지막을 그네들이 보여주는 것 같더이다....
겨울 여행은 눈이 없다면 별반 재미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굳이 겨울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나목사이로 훤히 들여다보이는 산천과, 무채색으로 투명한 산야가
나름대로 진실된 모습을 보여준다고 믿기 때문에 열심히 겨울을 찾는것 같습니다.
거기다 철새라도 만나면 험한 세상에 동반자를 만나듯
그렇게 즐거울수가 없습니다.
이름도 모르지만 평화롭게 유영하는 자태를 바라보며 그져 이 땅의 평화를 갈구해 봤습니다.
서산의 마애삼존불...
그 아름다운 백제의 미소
오늘도 관리인 아저씨를 꼬셔서? 설명을 부탁드리고
예의 전등불 아래 비치는 부처님의 미소를 한번 더 볼수 있음에 감사 드렸습니다..
내 앞의 여러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떠나버렸는데
난 내 뒤의 사람들에게 기다리라 부탁드리고 관리인 아저씨를 초청해
설명과 부처님 미소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미소를 보지 못하고 가시는 님들은 과연 마애삼존불을 뭐라고 칭할까....?
그져 돌에 새긴 그져 그렇고 그런 부처님이라 할건가....?
빛이 없으면 마애삼존불의 부처님 미소를 볼수가 없으니
그네들은 백제의 미소니 천하의 일품미소니 하는 말을 과연 알고 떠나는지......
차라리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볼수있도록 조명시설이라도 해두고
찾는 이들에게 그 미소를 보여주어 백제의 미소라도 알고 떠날 수 있도록 하는게
문화재의 이해를 돕는데 더 낫지 않을까.........
보원사지의 폐사지를 돌아보면
무한한 것은 돌이요 남는 것은 돌로 된 것 밖에 없다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거역할 수 없는 하나의 진리를 확인하는 길입니다.
답사를 하다보면 이런 폐사지를 자주 만나게 되는데
그곳에서 세월에 뭉개지고 전란에 깨어진 돌들을 보면서
또 거기에 인간의 이기심이 작용하여 깨트린 문화재를 보면서
지금 우리가 즐기고 느끼는 수많은 예술품들이
우리 후손에 얼마만큼이나 전해질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돌 아닌 것은 장담을 못하고 야외에 내팽개쳐진 것 아니고선
세월을 견딘다고 말할수 없으니 돌과 돌처럼 아둔한 것들만이
역사를 지탱해주는 꼴이 꼭 내 몰골을 보는 것 같더이다.
개심사.....
언제부터인가 누군가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절...
사실 나도 그 분 덕에 이 절을 알았지만
처음 찾은 이후로 이 절만큼은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 바람과는 달리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이 절을 찾는 관계로
이제는 서산군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지가 되고 말았지만......
언제 가도 편안한 곳!
말이 필요없는 곳...
그져 눈으로 즐기고 마음으로 깨닫는 곳!
나무 한그루, 돌부리 하나, 바람 한 줌, 절집의 운치......
두손 합장하고 말없이 기도하며 느끼면 되는 곳입니다.
처음 갔을때는 절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며
세속의 마음을 털어내려 애썼지만
몇번 가면서는 그져 한바퀴 돌아나오면 저절로 마음이 열리는 걸 느꼈습니다.
아들 녀석도 머리가 복잡할 터이지만 그 절간의 풍광이 마음에 드는지
연신 포근한 기둥을 쓰다듬고 요모조모 신기한 듯 카메라에 담더니
어떤 느낌이 드냐는 내 질문에 말없이 웃음으로 답을 하더이다.
삼화목장을 옆에끼고 저수지를 돌아가는 개심로....
그 한켠에 나그네의 마음을 쉬어가라고 쉼터가 만들어져 있는데
이곳에 잠시 차를 정차하여 저수지의 파아란 물과 푸른 풀이 우거진 동산을 바라보면
개심사에서 마음을 열고 미쳐다 버리지 못한 찌꺼기들을
세수하듯 털어내며 돌아올 수 있는 곳입니다.
내포지방을 여행하면서 난 나름대로의 코스를 정해놓고 될 수 있으면 그걸 이행합니다.
수덕사를 시작으로 해서 개심사를 마지막을 삼는 코스입니다.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은 필요치 않으리라 생각하면서도 굳이 말하라면
마음을 여는 순서라고나 할까요.....
겨우내 묵은 때를 씻고 바람을 타고 오시는 봄 마중하러 하루 잘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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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지하철 희생자를 추모합니다!
출처 : 불혹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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