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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저헌 이석형선생 묘 및 신도비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1. 10. 4. 10:00
저헌 이석형선생 묘
정몽주 선생의 증손녀 사위인 이석형 묘는 정몽주선생 묘와 나란한 횡맥에 쌍유혈로 되어있다. 연안이씨의
발복처로 널리 알려진 저헌선생 묘는 포은선생과 나란히 쌍유혈로 되어있지만 혹자들은 저헌선생의 묘가
입수처가 발달하여 생기가 넘쳐 더좋다고 한다. 이보다는 연안이씨가 영일정씨보다 훨씬 많은 인재를
배출했기 때문에 더좋은 음택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것 같다.
몇년전에 스승님과 함께 맥선을 따라 정밀조사를 한 결과 횡룡의 필수인 낙산, 귀성과 함께 후부한 척봉이
있어야 하는데 저헌 선생 묘에는 귀성이 없었다. 누구의 묘가 명당이냐를 따지기 전에 좀 더 깊은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석형(李石亨)
1415년(태종 15)∼1477년(성종 8).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백옥(伯玉), 호는 저헌(樗軒). 대호군 회림(懷林)의 아들이며, 김반(金泮)의 문인이다.
1441년(세종 23)에 사마시에 합격, 이어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사간원정언에 제수되었고, 이듬해에 집현전부교리에 임명되어 14년 동안 집현전학사로 재임하면서 집현전의 응교·직전(直殿)·직제학을 두루 역임하였다. 집현전응교로 재임한 1447년 문과중시에 합격하였으며, 왕명에 의하여 진관사(津寬寺)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로 학문에 진력하였다.
1455년(세조 1)에 첨지중추원사, 뒤에 전라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456년 6월, 이른바 사육신사건이 전해지자 사육신의 절의를 상징하는 시를 지어 익산 동헌에 남겨, 대간에 의하여 치죄하자는 여론이 있었으나 세조에 의하여 묵살되고 오히려 예조참의에 올랐다.
1457년 판공주목사에 임용되었다.
이듬해 첨지중추원사로 잠시 한직에 있었으며 세조의 총애를 받아 한성부윤이 되었다.
1460년 세조의 특명으로 황해도관찰사가 되어 왕의 서계(西界)지방 순행을 도운 뒤부터 세조로부터 서도주인(西道主人)이라 불리기까지 하였다.
이듬해에 사헌부대사헌을 거쳐 경기관찰사를 역임하고, 1462년 호조참판을 거쳐 판한성부사에 7년 동안 재임하였다.
1466년 팔도도체찰사를 겸하여 호패법을 철저히 고핵(考覈)하고 정리하였다.
1468년 세조가 죽자 승습사(承襲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1470년(성종 1)에는 판중추부사에 오르고 지성균관사를 겸하여 주문(主文)의 위치를 맡았다.
1471년에는 좌리공신(佐理功臣)4등에 책록되고,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에 봉하여졌다.
필법이 신묘하고 집현전학사로 있을 때 《치평요람》·《고려사》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세조 때에는 사서(四書)의 구결(口訣)을 정하는 데 참여하여 《논어》의 구결을 주관하였다.
만년에는 성균관 서쪽에 계일정(戒溢亭)을 짓고 시문에 전념하였다.
저서로는 《대학연의 大學衍義》와 《고려사》에서 권계(勸戒)할 것을 덧붙인 《대학연의집략 大學衍義輯略》 21권과 《저헌집 樗軒集》이 있고 편저로는 《역대병요 歷代兵要》·《치평요람(治平要覽)》 등이 있다. 시호는 문강(文康)이다.<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네비게이션주소 관리자(연락처) 경기도기념물 제171호 저헌 이석형선생 묘 및 신도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 산3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 산3 연안이씨
이석형의 묘
소재지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이며, 2000년 6월 12일에 신도비(神道碑)와 함께 경기도기념물 제171호로 지정되었다. 봉분은 단분 합장묘이다. 석물로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 문인석(文人石) 등이 배치되어 있다. 묘비와 문인석은 예전 것이며, 나머지는 최근에 설치된 것이다. 묘비는 사각형 받침돌 위에 머리 부분이 둥글게 된 비신(碑身)을 올린 형태이며 1703년(숙종 29) 무렵에 제작된 것이고, 문인석은 복두공복(幞頭公服)에 홀을 든 조선 전기 양식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저헌 이석형선생 묘 안내판
▼ 이석형선생 묘역... 우측 누런색 묘역이 이석형선생 묘역이다.
▼ 이석형선생 묘 측경
▼ 이석형선생 묘 전경...
▼ 이석형선생 묘.. 벌초를 한지 얼마 안되어 묘가 황금색으로 보였다...
▼ 이석형선생 묘비
▼ 이석형선생 묘 석물...
▼ 이석형선생 묘 입수처... 탱탱하다..
▼ 이석형선생 묘 측경... 이곳은 묘를 쓸만한 곳은 모조리 묘가 들어서 있다.. 청룡자락...
▼ 이석형선생 묘 입수처
▼ 이석형선생 묘 후경..
▼ 이석형선생 묘 조안산.. 비가 내려 뿌옇다..
▼ 여름에 비가 많이내려서인지 묘 한쪽이 크게 무너졌다...
▼ 이석형선생 묘역이 크게 훼손되었다.
▼ 연못에서 바라본 이석형선생 묘... 무너져 내린 흙으로 연못이 많이 매워졌다..
▼ 비가오는데도 포크레인 소리가 요란하다... 한창 보수 공사중이다...
▼ 이석형선생 묘역에 위치한 연안이씨 비각공원...
▼ 이석형선생 신도비각과 비각공원...
▼ 이석형선생 신도비각..
▼ 이석형선생 신도비...
▼ 연안이씨의 위상을 적어놓은 표석
이곳 저헌선생 묘를 쓰고 4대 손자부터 발복이 되어, 한문학의 대가이며 선조 때 대제학을 지낸 월사
이정구를 비롯, 그의 아들인 이명한이 인조 때 대제학을 지냈고, 손자 이일상이 효종 때 대제학을 지내는 등,
3대에 걸쳐 문형(文衡)을 배출하였다. 또 저헌의 5대손인 이귀는 인조반정의 공을 세워 연안이씨 가문을
명문의 위치에 올려놓은 인물이고, 그의 아들 이시백은 효종 때 영의정을 지냈다.
사도세자의 스승이기도 한 이후는 좌의정, 이천보는 영조 때 영의정, 이복원과 그의 아들 이만수가 영조 때대제학을 지내 2대 연속 대제학이 나왔고, 이복원의 큰아들 이시수는 영의정을 지내는 등 연안 이씨는
조선조에서 총 250명의 문과급제자가 배출되어, 정승 8명, 대제학 8명, 청백리 7명으로, 조선의 3대 명문
으로 위세를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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