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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초선생님 간산기]청주한씨 시조 한란과 특이한 장법의 이인영 음택
    풍수이야기/풍수간산기 2011. 9. 29. 13:30

    『인자수지(人子須知)』에서 "대개 지리(地理)의 용혈설(龍穴設)은 천지(天地)가 만든 자연의 묘리(妙理)라 하여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첫째가, 용의 조종(祖宗)과 세력(勢力)을 살피는 것이고, 둘째가 혈(穴)의 생성여부를 혈증

    (穴證) 등으로 살피는 꼼꼼한 목력심사(目力深思)가 요구된다" 고 하였다.
    『복씨(卜氏)』가 말하기를 "생성(生成)하는 용이 있으면 반드시 생성하는 혈도 있는 것이며, 무릇 용혈(龍穴)이

    융결(融結)되었으면 용호(龍虎), 명당(明堂), 수세(水勢), 안대(案對), 나성(羅星), 수구(水口) 등이 자연 합법(合法)

    을 이루게 되는데, 그것이 무슨 연유일꼬? 용혈을 비유하면 대개 용(龍)은 어미요, 나라의 임금이며, 혈(穴)은

    자식이요, 신하(臣下)와 같고, 사격(砂格)과 물은 천하(天下)의 백성(百姓)과 같다. 임금(용)이 어질고 신하(혈)가

    현명하면 만방(萬邦)이 귀화(歸化)하고, 사이(四夷)가 복종하며, 구름이 용을 좇고(雲從龍), 바람이 범을 따르는

    (風從虎)격으로, 각각 그 유(類)로써 응한다. 만일 용이 진(眞)이 아니면 혈(穴)과 사수(砂水) 등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길지가 아니다. 고(故)로 산천을 자세히 알고자 하면 먼저 용을 살피는 것이 급선무(急先務)다 " 고

    하였다.
    또한『지가서(地家書)』에「용이 진(眞)이면 혈도 진(眞)이요, 용이 가룡(假龍)이면 혈도 진혈(眞穴)을 기대하기란

    어렵다」한 것은 진룡(眞龍)에서 진혈(眞穴)이 생성된다는 뜻을 내포한 것이다.


    그런데도 요즈음의 풍수인들을 보면 혈의 근본인 조종(祖宗)과 용세, 후룡은 뒷전으로 취급하고, 오로지 입수

    (入首)와 도두(到頭), 당판(堂坂)과 혈에 목숨을 걸 듯한 행태(行態)가 주류를 이룬다.
    산에 오르면 무엇보다 혈의 근본인 조종을 살피고, 용세가 좌선룡으로 들어오는지, 또는 우선룡으로 밀고 들어

    오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다. 즉, 용이 밀고 들어오는 방향의 세가 더 강하다고 보는 것은 삼척동자

    (三尺童子)도 아는 사실인데도 현장에서 그것을 망각하는 풍객(風客)들이 비일비재한 현실이다.
    즉, 좌측에서 밀고 들어오는 좌선룡(左旋龍)이라면 자연히 백호방이 강하고, 청룡방의 세가 약한 경우가 많으며,

    우선룡이면 청룡방이 강하고, 백호방이 빈약하다는 것은 많은 산을 섭렵한 풍객이라면 경험칙으로 판단할 수 있다.
    또한 명당수도 거의 용세가 진행하는 방향에서 발출(發出)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좌선룡이라면 우선수(右旋水)가

    되고, 우선룡이면 좌선수(左旋水)로 출수(出水)되어 용수배합(龍水配合) 등, 격에 맞는 국세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용세의 근원(根源)을 안목(眼目)만으로는 구별이 쉽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25,000/1, 또는 5,000/1 지형도

    에다 1차 실사작업으로 용맥도를 그려 넣고, 지형도의 용맥도를 유추하여 위성도에 삽입한 다음, 산을 오르는 것이

    용세를 판단하는 현명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청주한씨 시조 한란묘소 및 이인영 용맥도

    산을 오르는 등산인에게 왜 산이 좋으냐고 물어보면, 사람은 때론 거짓말도 하지만 산은 거짓이 없는, 본바탕을

    그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란 말을 자주 듣는다. 그것은 산의 속성(屬性)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풍수에서 말하는 산(용)도 거짓됨이 없다. 용의 역량에 따라 결과물(혈)을 그대로 배출해내기 때문이다.
    즉, 사람은 어미가 어리석고 반푼이라도 그 자식이 입지에 오르거나, 출세하면, 얼마든지 반열에 오르거나,

    존경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용혈사수향(龍穴砂水向) 중에서 첫 번째 순서인 산(龍)이 근본을 잃거나, 가룡(假龍)이라면 절대로 진혈(眞穴)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은 지가서의 내용말고도 증적(證迹) 등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명한 사실이다.
    만약 진룡이 아닌데도, 좋은 혈이 생성되었다면 이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허화(虛花)에 불가한 생기를 모으지 못하는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또한 용이 생왕룡(生旺龍)일지라도 혈을 맺지 못했다면 역시 득지(得地)했다고 보지 않는 것도 매양 마찬가지이다.

    『양공(楊公)』이 삼불장법(三不葬法)에서 말하기를 "용은 있으나 혈이 없으면 장사(葬事)지내지 못한다." 라 한 것은

    산이 근본을 잃었거나, 가룡이면 혈을 맺지 못한다는 뜻이다.
    가룡도 진룡과 마찬가지로 수려(秀麗)한 성신(星辰)과 함께, 개장천심(開帳穿心)과 지각(枝脚), 요도(橈棹) 등은 구비

    하였으나 보내고 맞이하는 영송사(迎送砂)가 없거나, 또 후룡이 너무 빈약(貧弱)하거나, 추악(醜惡)하고, 옹종(擁腫)하며,

    준급(峻急)하거나, 완만(緩慢)하여 지지부진하거나, 혈장을 충사(衝射)하듯 들어오는 직룡 등이다.
    그 중, 제일 많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가룡이 주룡(主龍)의 몸통을 비집고 나온 횡룡(橫龍)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터의 절반을 차지하는데, 귀성(鬼星), 또는 낙산(樂山)이 없어, 앙와(仰瓦)와 공망(空亡) 등을 이루는 치명적인 흠결(欠缺)을

    지닌 용이다.
    이러한 용을 보면 앙와의 요처(凹處, 계곡)를 통해 바람이 들락거리면서 혈장의 생기를 소산(消散)시키고, 뒤가 공허(空虛)

    하여 횡결맥(橫結脈)으로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무기룡(無氣龍)에 해당한다.
    그 다음 일반적인 용으로는 박환탈살(剝換脫殺)이 안된 암반덩어리를 이루거나, 늘어지고, 지루하게 평탄하며, 깎여나가고,

    파쇄되고, 급경사를 이루거나, 여의고, 뾰족하며, 고한(孤寒)한 것 등등의 추졸(醜拙)한 용인데, 비록 도두(到頭)가 선명하고,

    당판이 기세 있게 치올라 혈(穴)을 품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혈을 생성할 수 없는 허화(虛花)나 가혈(假穴)에 불과하다.

     

    두사충이 소점한 것으로 알려진 이인영 음택

    이곳 음택의 주인인 이인형(李寅馨)은 청주지역의 유생(儒生)으로, 경주이씨 30세 참판공이다. 자(字)는 문원(聞遠)이고,

    호는 취은(醉隱)이다.
    묘소 앞의 비석이 배위 부좌( 左)로 표기되어 지금까지 배위(配位)인 정부인(貞夫人) 순흥안씨(順興安氏, 진사 汝止의 딸)와

    합장묘(合葬墓)로 알고 있었고, 특이하게 두 개의 봉분을 용미로 연결시켜 놓아, 뒤쪽의 묘소가 과연 누구의 묘소일까, 하는

    궁금증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맴돌았는데, 이번 간산에서 묘소 우측에 세워진 비석의 비문을 판독한 결과 부부가 상하장

    (上下葬)의 용미(龍尾)로 연결되어, 뒤쪽의 묘소가 배위란 사실을 비로소 알게된 것이다.

    이곳 묘소는 임진왜란 때, 원군(援軍)한 명나라 이여송의 지리 참모인 두사충(杜師忠)이 소점(所占)한 것으로 전하지만

    무덤의 형기적(形氣的) 소점 방식이나, 두사충이 용사(用事)한 것으로 알려진 다른 곳의 묘소와 비교하면, 형식이나,

    모양 등에서 상당부분 일탈되고 있다는 점으로 보아 두사충을 가탁(假託)했거나, 또는 훗날 후손들이 다시 손을

    보면서 상당부분 변형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곳 묘역을 올라 당판을 바라보면서 대부분의 간객(看客)들이 의아하다는 모습을 짓거나, 머리를 갸우뚱거리는 것은

    상하(上下)의 두 기의 묘소가 다른 곳과는 너무 대조적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즉, 대부분의 묘소는 뒤에서 들어오는 후룡(後龍)이나, 입수룡(入首龍), 입수도두(入首倒頭) 등을 등지고 조성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 묘소는 직룡으로 떨어지는 입수룡이 일군 천조지설(天造地設)의 도두(到頭)를 일탈하여 2m

    정도 우측(백호방)으로 자리를 이동시켜 맥선을 잇듯이 연결하여 보토(補土)하고 사성(莎城)아래에 상하장의 봉분

    두 기가 연결되듯이 조성되었다.
    특이한 점은 사성 꼭지점에서 용미(龍尾)를 길게 연결하여 배위의 봉분에 닿도록 하고, 앞쪽의 부군 묘소와 배위의

    묘소를 다시 용미로 이어 놓았다.
    물론 묘를 조성한 후손들의 입장에서 보면 터에 합당한 법수(法數)를 동원하여 어련히 썼을까 많은 형기적(形氣的)

    으로 잣대를 들이미는 후학들의 경우에는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운 난해한 장법(葬法)인 것만은 확실하다.

     

     인위적인 도두에서 용미를 길게 연결시킨 묘소

    이러한 여러 정황과 현장 사항을 감안한 필자의 상상력을 짜내어 나름대로의 장법과 관련한 소견을

    피력해보고자 한다.

    첫째, 우선룡(右旋龍)으로 밀고 들어오는 척봉(脊峰, 玄武峰)에서 낙맥(落脈)한 후룡(後龍)이 도두(到頭)까지

    들어오는 동안 거의 변화가 전무(全無)한 직룡(直龍)이 되어, 무기룡(無氣龍)에 가깝다 보니, 천조지설의 도두에서

    우측으로 맥선(脈線)을 잇듯이 보토(補土)하여 인위적인 변화로 용맥의 생동감을 불어넣고, 동시에 래룡(來龍)을

    영접(迎接)하는 래팔(來八)의 지각(支脚)이 일품인 전방(前方)의 전순(氈脣)이 일군 본신안산(本身案山)에 정대

    (正對)한 형기적(形氣的) 장법의 하나로 추리된다.

     

     내맥을 래팔로 받는 본신 안산의 영사가 특출나다

    둘째, 천조지설의 도두아래에서 본신 안산을 향해 자좌오향(子坐午向)내지 임좌병향(壬坐丙向)으로 향(向)을

    정하게 되면, 나경법의 일종인 내입수(內入首, 透地六十龍)의 향선(向線)이 임자순(壬子旬)의 퇴기맥(退氣脈)인

    차착공망(差錯空亡)으로 사용이 불가(不可)한 분금상(分金上)을 통과하므로, 인위적인 도두를 조성하여 병자순

    (丙子旬)의 왕기맥(旺氣脈)을 수용하고자 한 이법적(理法的) 장법으로 볼 수 있다.

     

    셋째, 도두에서 우선(右旋)으로 회전하는 당판(堂坂)을 일구다 보니(관성의 법칙 상 우측이 背가 되고 좌측이

    面이 됨), 천연(天然)의 도두(到頭)에서 보면 좌측보다 우측이 넉넉한 입지를 이루게 되어 당판의 중심부에 봉분을

    조성하기 위한 인위적 조정으로 볼 수 있다.

    넷째, 수법(水法), 또는 의수입향(依水立向)의 88향법 등으로 향을 정한 장법으로 간주할 수 있다.
    즉, 현재의 봉분 앞에서 보면 청룡자락에서 발출한 골육수(骨肉水)가 향전(向前)을 통과하여 백호 끝자락인

    정미방(丁未方)으로 출수(出水)되는 자왕향(自旺向)이다.(비문을 해석해보면 이곳의 묘를 다른 장소로 移葬하기

    위해 破墓를 하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내리쳐, 이장작업을 포기했다는 내용 등으로 보아, 다른 장소를

    포기하고, 당판 내에서 조정하여 천장(穿帳)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섯째, 양균송이 완성시킨 도장법(倒杖法)의 하나인 철장법(綴杖法)을 응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도장법에서

    말하는 철(綴)이란 실로 옷을 꿰맨다는 뜻으로, 인위적으로 맥선(脈線)을 연결시켜 객토(客土)하고 맥을 꿰매듯

    점철(粘綴)한다는 법수이다.
    즉, 이곳도 맥을 일으키는 조종(祖宗)에 비해 낙맥(落脈)하는 내맥(來脈)이 빈약하고, 변화가 없는 무기룡(無氣龍)의

    살맥(殺脈)이 되다 보니 도두 끝에서 맥선(脈線)을 우측으로 연결시켜 육지(肉地, 흙)로 보토(補土)하고, 월현

    (月弦, 사성)을 조성하여 당판의 우측을 이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직룡으로 떨어지는 내맥을 제어(制御)시켜, 강유(剛柔)가 서로 구제하듯 상제(相濟)되어 살기(殺氣)를

    순화(醇化)하여, 화기(化氣)가 자생(自生)된다는 장법의 일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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