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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하남]세양공 박강 묘역 및 석물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1. 11. 10. 10:00
세양공 박강 묘역 및 석물
박강선생 묘가 삼거리에 있었지만 박치선생 묘를 먼저 보고 오려고 그냥 지나쳤었는데 결굴 되돌아와 박강선생 묘를
먼저 보고 나서 뒤늦게 박치선생 묘로 갔더니 그제서야 묘가 보였다. 아마도 아버지부터 보라고 일부러 내려진 조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박강선생 묘는 제일 찾기 쉬운 묘소다. 삼거리에 위치해 있다. 박치 선생 묘 때문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인근에 큰 묘역이 있어 가봤는데 신도비도 보이고 했지만 예의 그 개들때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되돌아 나왔다. 박강선생 묘 앞에 작은 슈퍼가 있는데 거기서 삶은 계란과 사이다로 배를 채웠다. 예전 기차여행할 때 생각이
많이 났다..ㅎㅎ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이라 여유를 부릴 수 없어서 서둘러 답사를 마쳤다.
박강(朴薑)
미상∼1460년(세조 6).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좌의정 박은(朴訔)의 아들이다.
성질이 정교(精巧)하고 기능(技能)이 많아서 1444년(세종 26) 대호군(大護軍)을 거쳐 이듬해 군기감정(軍器監正)에 임명되어 항시 이 직무를 맡고 있었다.
1449년 공조참의와 이조참의를 거쳐 1450년(문종 즉위) 황해도도절제사가 되고, 이듬해 황해도도관찰사 겸 병마도절제사가 되었다.
1452년(단종 즉위) 중추원부사가 되고 1455년(세조 1)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단종의 왕위를 수선(受禪)하는 일에 협력, 그 공으로 좌익공신(佐翼功臣) 3등에 책정되고 금천군(錦川君)에 봉하여졌다.
1457년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1459년 황해도도순찰사가 되었다. 시호는 세양(世襄)이다.<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네비게이션주소 관리자(연락처) 하남시 향토유적 제11호 세양공 박강 묘역 및 석물 경기도 하남시 초이동 산5번지 경기도 하남시 초이동 337-3(슈퍼집에 주차) 반남박씨
박강(朴薑)은 조선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반남(潘南)이고 1406년(태종 6) 좌의정을 지냈던 박은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1444년(세종 26)에 대호군(大護軍)에 임명된 후 군기감정(軍器監正), 공조참의를 지냈고, 1450년(문종 즉위년)에는 황해도도절제사, 이듬해에는 황해도도관찰사 겸 병마도절제사가 되었다. 1452년(단종 즉위년)에는 강원도관찰사, 중추원부사가 되었고, 1455년(세조 1)에는 세조가 즉위하는데 협력한 공으로 추충좌익공신 동지중추원사 금천군(錦川君)에 봉해졌으며 청백리에도 선정되었다. 1457년(세조 3)에는 지중추원사가 되었고 1460년(세조 6) 왕을 호종하다 순직하였다. 시호는 세양(世襄)이다. 인종 때 증손녀인 인성왕후의 추은(推恩)으로 의정부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오위도총부도총관에 추증되었고 그의 부인인 통진현부인 순흥안씨는 정경부인(貞敬夫人)에 추증되었다. 현재 묘역에 조성되어 있는 석물들 중 박강 묘표, 순흥안씨 묘표 및 문인석 4기는 조선시대에 제작된 것으로서 당시 유행하던 석조미술의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하남시 문화관광 사이트에서 인용>▼ 박강선생 묘 전경..
▼ 박강선생 묘 안내문
▼ 박강선생 묘역은 아담하니 잘 가꿔져 있다.
▼ 박강선생 묘
▼ 박강선생 묘비
▼ 박강선생 묘 석물
▼ 박강선생 구 묘표..
▼ 박강선생 배위 순흥안씨 묘표... 원래의 묘표는 2008년 훼손되어 하남시역사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 박강선생 묘 입수...
▼ 박강선생 묘에서 바라본 전면...
▼ 박강선생 묘 후경... 향을 앞쪽 계곡으로 향했다. 물이 직거하는 곳으로 왜 향선을 정했을까?
시간이 없어서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다음 기회가 되면 자세히 수구를 확인해볼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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