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광주]충헌공 김익훈 묘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1. 11. 11. 22:57
충헌공 김익훈 묘
김장생선생의 손자인 김익훈선생 묘는 예전부터 그 위치를 알고 한번 가야겠다고 여러번 계획했지만 번번히 차량
접근이 어렵다고하여 미루고 있었는데 마침 자투리시간을 내서 찾아뵈었다. 개인적으로 조상님에 해당되어 꼭 찾아
뵈어야했는데 너무 늦어 죄송함을 갖고 찾아뵈었다.
외길로 차를 몰고가는데 혹시나 반대편에서 차가 마주칠까봐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차량은 마주치지 않았다.
현장에 도착하니 입구에 신도비가 2개가 보이고 바로 왼편에 묘역이 보였다. 가로질러 가려고 했더니 여기도 예의
개라는 녀석들이 얼마나 사납게 짖어대는지 먼길을 돌아서 묘역에 올랐다. 아무도 없는 평일 오후시간이라 조용하게
답사를 했는데... 아뿔싸.. 카메라가 작동을 하다안하다 한다. 사진을 다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집에와서 확인해보니
여러장이 날아갔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다녀온 김익훈선생묘는 기억에 오래 남을것 같다.
김익훈(金益勳)
1619년(광해군 11)∼1689년(숙종 15).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무숙(懋叔), 호는 광남(光南). 할아버지는 산림(山林) 장생(長生), 아버지는 참판 반(槃), 어머니는 첨추(僉樞) 김진려(金進礪)의 딸이다.
음보로 등용되어 의금부도사·남원부사·사복시첨정 등을 역임하고, 1667년(현종 8) 사도시정이 되었다. 조카인 만기(萬基)의 딸이 숙종비로서, 숙종이 즉위한 뒤 어영대장 등 군권(軍權)의 요직을 지내면서 권력을 누렸다.
1680년(숙종 6) 김석주(金錫胄)의 주도로 경신대출척을 일으켜 조정에서 남인들을 숙청하는 데 적극 참여하였으며, 그 공으로 보사공신(保社功臣) 2등 광남군(光南君)에 봉해졌다. 이후 숙종의 깊은 신임에 힘입어 광주부윤·좌윤·형조참판·어영대장 등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이 시기에는 특히 김석주 등과 함께 훈척의 세력으로서, 송시열(宋時烈) 등과의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병권을 장악하고 정국을 주도하였다.
1689년 어영대장 재직중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다시 정권을 잡자 공신호를 빼앗기고 강계에 유배되었으며, 무고한 사람들을 많이 죽였다는 죄명으로 고문을 받고 투옥되었다가 죽었다.
일찍부터 성품과 행실이 방자하며 부정축재를 많이 한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특히 1682년 남인 허새(許璽)의 모역사건 당시의 떳떳하지 못한 행동은 서인 내부 소장파의 반감을 부채질하여, 훈척과 서인 노장과의 협력에 소장세력이 크게 대립하고, 결국 노론과 소론이 분기하는 한 계기가 되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헌(忠獻)이다.<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네비게이션주소 관리자(연락처) 미지정 충헌공 김익훈 묘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무수리 산4-3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무수리 109-5(민가앞주차장) 광산김씨
▼ 김익훈선생 신도비..
▼ 김익훈선생 묘역... 맨 윗쪽 보이지 않는곳에 있다..
▼ 김익훈선생 묘 전경
▼ 김익훈선생 묘역 석물
▼ 김익훈선생 묘비...
▼ 김익훈선생 묘 입수... 인작으로 높게 만들어져 있다..
▼ 김익훈선생 묘역에서 바라본 백호... 일부 다른 묘에서는 안산에 해당..
▼ 김익훈선생의 증손자 김성택 묘
▼ 김익훈선생 묘역에서 바라본 무수리 마을... 아주 좁은 터에 움푹 들어가 있다.
▼ 김익훈선생 후손들 묘소..
▼ 김익훈선생 고손자이며 김성택선생의 아들(후에 김경택에게 양자 입양됨) 김상익선생 묘
'답사는 즐거워 > 묘지답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기 광주]태종女 숙안옹주(淑安翁主) 양도공(良悼公) 황유(黃裕) 묘 (0) 2011.11.14 [경기 남양주]중종후궁 경빈박씨, 복성군 묘 (1) 2011.11.12 [경기 하남]세양공 박강 묘역 및 석물 (0) 2011.11.10 [경기 하남]박치선생 묘 (0) 2011.11.09 [경기 하남]밀성군 묘 및 신도비 (0) 2011.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