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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광주]태종女 숙안옹주(淑安翁主) 양도공(良悼公) 황유(黃裕) 묘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1. 11. 14. 10:00
태종女 숙안옹주(淑安翁主) 양도공(良悼公) 황유(黃裕) 묘
퇴촌에는 조영무 묘가 유명하여 그 묘를 위시해서 신익희선생 생가 등 신익희선생 조상묘를 주로 답사했는데
후배가 공주 묘와 왕가 묘를 보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공주묘를 찾게 되었다. 공주 묘에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일반 묘와는 뭔가 다르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그 후배는 여자 보기를 돌로 보는가?ㅎㅎ
아무튼 짬을 내서 광주에 있는 김익훈선생 묘와 숙안옹주 묘를 답사했다. 숙안옹주묘는 주소만 있으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묘역에 도착하면 바로 앞에 묘가 보이기 때문이다. 묘역에 가서도 묘가 보이지 않으면 헤매거나
못찾고 되돌아 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경우는 묘지답사인들에게는 아주 환영받는 곳 중 하나다.
너무 쉽게 접근할 수 있어서...
황금들판이 멋진 논을 바라보면서 묘지에 오르는데 가을 햇살이 따갑다. 짬을 내서 가는 곳이라 신발도
구두를 신고 손에 카메라 한대만 들려있을 뿐 답사의 행색은 아닌데 이럴때 동네 사람들을 만나면 뭐하는
사람인가 싶어 뒤를 계속 쳐다 보신다. 그래서 뒤통수가 좀 땡기는 기분이 든다. 아무튼 답사하는 날은
날씨가 좋아 기분 좋게 답사할 수 있었다.
숙안옹주(淑安翁主)
숙안옹주(淑安翁主)[?~1464(세조 10)]. 조선의 제3대 임금인 태종의 딸로 옹주.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어머니 명빈김씨(明嬪金氏)는 돈녕부(敦寧府)판사(判事)김구덕(金九德)의 딸이다. 부마는 회덕 황씨(懷德黃氏)로 회천군(懷川君)황유(黃裕)이다. 외사촌은 문종(文宗)의 첫 번째 세자빈이다가 폐위된 휘빈김씨(徽嬪金氏)이다.
숙안옹주(淑安翁主)는 태종과 명빈김씨(明嬪金氏) 사이에서 태어나, 황자후(黃子厚)의 아들 황유(黃裕)와 결혼하였다. 황유는 12세의 나이로 부마가 되어 회천군에 봉해졌다.(『세종실록』 14년 5월 9일)
숙안옹주의 묘소는 부마 황유와 함께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도수리 산75번지에 있다. 숙안옹주는 4남을 두었는데, 1남은 황정(黃汀)이고, 2남은 황호(黃浩)이며, 3남은 황제(黃濟), 4남은 황징(黃澂)이다.(『문종실록』 즉위년 6월 25일)
<위키실록사전에서 발췌>
회덕 황씨(懷德 黃氏)
시조 황윤보(黃允寶)는 고려 때 지문성부사(知文成府事)와 형부상서(刑部尙書)를 지냈고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회천군(懷川君)에 봉해졌다. 황윤보의 묘소는 대전광역시 동구 마산동에 있다.
4세손 황자후(黃子厚, 1363년 ~ 1440년)가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중추원사(中樞院使)에 이르렀고, 황자후의 아들 황유(黃裕)는 조선 태종의 서녀 숙안옹주(淑安翁主)의 부마로 회천위(懷川尉)에 올랐다.
황유(黃裕)의 현손 황삼성(黃三省)은 1552년(명종 6)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헌납‧홍문관교리 등 청직(淸官)을 역임하고, 1563년(명종 18) 사헌부장령으로 승진하였다. 황삼성의 손자 황덕부(黃德簿)는 홍문관 전한에 이르렀다.
4세손 황길신(黃吉臣)이 고려조에 합문지후(閤門祗侯)를 지냈다. 황길신의 8세손 황종해(黃宗海)는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고, 광해군 때 폐모론이 일어나자 과거를 단념한 후 연산(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의 김장생(金長生)을 찾아가서 예학을 강의 받았다. 목서흠(睦叙欽)·목장흠 등의 천거로 참봉(參奉) 등 벼슬에 천거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오직 학문 연구에만 진력하였으며 저서로 ‘후천집(朽淺集)’을 남겼다.
장악원주부(掌樂院注簿) 황영남(黃穎男)의 아들 황덕윤(黃德潤)은 1618년(광해군 10) 사마양시(司馬兩試)에 합격하고, 황덕윤의 아들 황세정(黃世楨)은 송준길의 수제자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황종해의 종증손(從曾孫)인 황찬(黃燦)은 1702년(숙종 28) 문과에 급제하고 목사(牧使)를 역임하였다.
회덕 황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5명, 무과 급제자 4명을 배출하였다.
문과로는 황덕부(黃德符) 황삼성(黃三省) 황찬(黃燦) 황하흠(黃夏欽) 황해(黃諧)이며, 무과로는 황신생(黃申生) 황원립(黃元立) 황응남(黃應男) 황의룡(黃義龍)이다.
2015년 기준 전국인구는 8,385명이다.
<위키백과에서 인용>
양도공(良悼公) 황유(黃裕)
조선초기 문신. 황유(黃裕)의 본관은 회덕이다. 회덕 황씨(懷德黃氏)는 고려말 조선 초에 대전 지역에서 유수한 세력으로 행세한 씨족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성씨조(姓氏條)에 의하면 당시 회덕지방의 성씨는 4개의 토성(土姓)이 있었는데, 황(黃), 임(任), 방(房)의 사성(四姓)이 그것이다. 회덕 황씨의 중시조(中始祖)는 황윤보(黃允寶)이다. 그는 고려말 형부전서(刑部典書)를 역임한 인물인데, 이 때부터 이들 회덕 황씨가 지금의 대전지역에서 유력한 씨족으로 행세하게 되었다.
황유는 곧 중시조 황윤보의 현손(玄孫)이며, 고려때 중추원사(中樞院使)를 지낸 자후(自厚)의 아들이다. 황자후는 조선 태종 때에 음보(蔭補)로 출사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1412년(태종13년)에는 형조좌참의(刑曹坐參議)에 올랐고(이 때 그는 호패법의 시행을 건의하여 이를 관철하였다), 다시 호조참의(戶曹參議)를 거쳤으며, 세종조에는 충청도 도관찰사(忠淸道 都觀察使), 한성부윤(漢城府尹), 중추원사(中樞院使)등의 내외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황유는 이러한 빛나는 가문의 후광을 받아 왕실과 혼인하였으니, 곧 태종의 11녀 숙안옹주(淑安翁主)의 부군으로 태종의 부마(附馬)가 된 것이다. 황유는 이로써 처음에 회천위(懷川尉 : 회천은 회덕의 옛 이름이다)에 봉해졌으며, 만년에는 봉군(封君)되었다.
황유는 숙안옹주와의 사이에 세 아들을 두었다. 그는 죽은 후에 광주(廣州) 퇴촌(退村)의 어머니(郡夫入 韓氏)묘 아래에 장사되었고, 숙안옹주는 양주(楊州)에 장사되었는데, 황유의 묘는 실전(失傳)되었다가 후일 후손 생원(生員) 황규현(黃圭顯)에 의해 찾아졌고, 훗날 옹주묘가 개발로 인해 황유의 묘 아래로 이장되었다. 황유의 묘는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도수리에 위치하고 있다. 시호는 양도(良悼)이다.
<대전시립박물관 대전의인물란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숙안옹주(淑安翁主) 양도공(良悼公) 황유(黃裕) 묘
소재지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도수리 산75번지(재실:도수리 536-2)
관리자(연락처)
회덕황씨양도공파종중
▼ 숙안옹주(淑安翁主) 양도공(良悼公) 황유(黃裕) 묘 전경..
▼ 아래쪽이 숙안옹주(淑安翁主) 묘, 위쪽이 양도공(良悼公) 황유(黃裕) 묘..
▼ 묘표에는 이태종대왕녀(李太宗大王女) 숙안공주지묘(淑安公主之墓) 다디(아마도 단기)4282(1949)년3월
9일(四二八二年 三月九日) 이라고 쓰여있다.
▼ 숙안옹주 묘 후경.. 묘 앞쪽이 관쇄 되어 있어서 좋아 보인다.
▼ 숙안옹주(淑安翁主) 부군 양도공(良悼公) 황유(黃裕) 묘 전경
▼ 황유 묘표... 정헌대부회천위시양도공황유지묘(正憲大夫懷川尉 諡 良悼公黃裕之墓) 쓰여있다.
▼ 양도공(良悼公) 황유(黃裕) 묘 후경.... 앞쪽 조안산이 약간 높아서... 이 정도가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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