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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도봉]전주 이씨 영해군파 묘역(全州 李氏 寧海君派 墓域)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2. 2. 29. 10:00

    전주 이씨 영해군파 묘역(全州 李氏 寧海君派 墓域)  

     

    영해군 묘는 여러차례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그런데 기록을 남기지 않아서 이번에 다시 다녀온 후 기록으로 남긴다.

    이곳은 이상하게 내가 찾아갈 때마다 날씨가 고르지 못하여 제대로 된 사진이 별로 없다.

    서울에 가깝고 도봉산 등산로 주변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인데 의외로 왕자 묘 보다는 전주이씨 묘로 더 알려져

    있는게 의아했다. 영해군 묘 뿐만 아니라 주위에는 전주이씨들 묘가 여러기 있어서 다 돌아보자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아무튼 빗속에서 사진을 찍느라 고생 좀 한 곳이다.

    영해군(寧海君)
    1435년(세종 17)∼1477년(성종 8). 조선 전기의 왕족. 본관은 전주(全州). 처음 이름은 이장(李璋), 후일 이당(李瑭)으로 바꾸었다. 세종의 아홉째 서자로 어머니는 신빈김씨(愼嬪金氏)이다.
    1442년(세종 24) 영해군으로 피봉(被封)되고 성격은 화목한 것을 좋아하여 다투는 일이 없었다 한다. 시호는 안도(安悼)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네비게이션주소 
     관리자(연락처)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06호
       전주 이씨 영해군파 묘역(全州 李氏 寧海君派 墓域)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81-1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529(느티나무집옆에 주차, 우측산)
       전주이씨 영해군파(寧海君派) 종중


     

     

     

     

     

     

     

     

     

     

    전주 이씨 영해군파 묘역(全州 李氏 寧海君派 墓域)
    조선 15세기의 종친 영춘군(永春君) 이인(李仁, 1465∼1507)의 묘역과 신도비이다. 그는 세종의 아홉 번째 지자(支字)인 영해군(寧海君) 이당(李瑭)의 아들이다. 세조 11년(1465) 출생으로 자(字)는 자정(子靜)이며, 어머니는 좌찬성에 추증된 신윤동(申允童)의 따님이다. 어려서 외할머니 이씨의 손에 자랐으며 행동거지에 법도가 있었다고 한다. 열살 때 정의대부(正義大夫)의 군(君)에 봉해졌고, 그 뒤 사옹원 제조를 지냈으며 숭헌대부(崇憲大夫)에 올랐다.
    연산군 12년(1506) 큰아들 완천부정(完川副正) 이기(李祺)의 사건에 연좌되어 부자·형제가 모두 유배당했는데, 그는 남해(南海)에 정배되었다. 수개월 뒤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풀려나 복직되었고 정국원종공신(靖國原從功臣)에 올랐다. 중종 2년(1507) 4월 27일 사망하였으며, 그해 8월 임신 일에 도봉산 남쪽에 장사지냈다. 시호는 목성(穆成)이다.
    어려서부터 효성과 우애를 타고났는데, 11살 때 어머니 신씨를 잃었고 3년이 채 못되어 다시 부친상을 당하였다. 또 매사에 부지런하고 신중했으며 특히 상례(喪禮)를 잘하여 종친으로부터 칭찬을 들었다고 한다. 평상시 생활이 담박하고, 이름난 꽃을 뜰에 심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부인 유씨는 영의정에 추증된 유양(柳壤)의 따님으로 슬하에 4남 3녀를 두었다.
    비는 1509년 9월 건립된 것으로 상하 2단의 받침돌 위에 대좌(臺座)를 얹고 그 위에 백일석으로 만든 비신(碑身)과 이수( 首)를 얹은 형태이다. 대좌에는 연꽃잎 무늬와 안상(眼象)을 새겼고, 이수에는 여의주를 다투는 쌍룡을 비(非) 대칭적으로 새긴 점이 특이하다. 16세기초를 대표하는 석비로서 임당정공신도비(林塘鄭公神道碑,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1호) 등 17세기 석비의 선례가 된다. 비문은 큰아들 이기의 부탁으로 첨지중추부사 남곤(南袞, 1471∼1527)이 지었고 글씨는 승정원 주서(注書) 김희수(金希壽, 1475∼1527)가 썼다. "穆成公神道碑銘"이란 머리전서[頭篆]도 김희수가 쓴 것으로 여겨진다.

    <서울시서울문화재 사이트에서 인용>

     

     

     

     

     

     

     

     

     

     

     

     

     

     

     

     

     

     

     

     

     

    ▼ 영해군의 아들 영춘군 이인의 묘 전경... 비가 내려 빗방울이 카메라에 튀었다..

    ▼ 영해군파 묘역 안내판.. 아들 영춘군 묘 앞에 세워져 있다.

    ▼ 영춘군 이인 묘

    ▼ 영춘군 이인 신도비

     

    ▼ 영춘군 이인 묘표

    ▼ 영춘군 이인 묘 석물

     

    ▼ 영춘군 이인 묘 입수처...

    ▼ 영춘군 이인 묘 후경... 빗방울이 튀었는데 마쳐 닦지 못하고 촬영했다..

     

     

    ▼ 영해군 묘

    ▼ 영해군 묘와 앞쪽의 장인 신윤동 묘

    ▼ 영해군 묘

    ▼ 영해군 묘표

    ▼ 영해군 묘 장명등

     ▼ 영해군 묘 석물

     

    ▼ 영해군 묘 후경

     

     

    ▼ 영해군 묘 측면

     

    ▼ 영해군의 부인 신씨 묘

    ▼ 영해군의 부인 신씨 묘표

    ▼ 영해군의 부인 신씨 묘 석물

     

     

    ▼ 영해군의 장인인 신윤동 묘

    ▼ 영해군의 장인인 신윤동 묘 석물

     

    ▼ 영해군의 장인인 신윤동 묘 후경

     

    ▼ 영해군 묘가 있는 무수골에서 바라본 도봉산과 영해군 묘역 

    ▼ 영해군 묘가 있는 무수골에서 북한산 둘레길(엄밀히 말하면 도봉산둘레길) 방학동길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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