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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남양주]영의정 이유원 묘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2. 3. 1. 10:00

    영의정 이유원 묘

     

    묘지답사를 하면서 지자체별로 답사계획을 잡다보니 위치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으면 찾기가 힘들어진다. 

    이곳도 남양주시의 맨 끝쪽에 위치해 있어서 마음만 있었지 찾기가 쉽지 않은 곳 중의 한 곳이다.

    좀 여유를 갖고 이곳에서 독립운동가의 채취도 느껴보고 집안 내력도 연구하고 해야 하는데 다녀온 뒤로 

    지금까지 그럴만한 여유를 못가진채 그냥 사진 위주로 글을 올린다. 이곳은 대한민국초대부통령 이시영의 

    형제들과 독립운동가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기회있을 때 다시한번 기록을 더듬어볼 생각이다.

     

    <야초의 좋은터 길라잡이 포멧 변경 알림>

    지난 1년간 거의 매일 한 건 이상씩 묘지답사기를 올린 것 같다. 묘지답사기의 원칙은 정확한 주소와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네비게이션 주소를 올리는 것으로 하였다. 네비게이션 주소를 찾기위해 나름 노력도하고 

    글도 올리기 위해 별도로 찾아서 직접 운전해서 가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적어놓고 올리곤 하였다.

    그런데 다녀온 뒤 바로 글을 올리면 별 무리가 없는데 몇달이 지난 뒤에 올리려니 기록들이 유실되거나 

    기억이 가물가물 하여 네비주소가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발생한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주소록에 네비게이션 주소를 생략한다. 주소와 네비게이션 주소가 불일치 하는 경우

    에만 특별히 적어 올리도록 할 예정이다. 혹여 답사시에 네비게이션 주소가 필요하신 분들은 댓글이나 

    메일 등으로 연락주시면 성실히 답변드릴 예정이다.

    이유원(李裕元)
    1814년(순조 14)∼1888년(고종 25).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춘(京春), 호는 귤산(橘山)‧묵농(默農). 이조판서 이계조(李啓朝)의 아들이다.
    1841년(헌종 7) 정시문과에 급제, 예문관검열‧규장각대교를 거쳐 1845년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와 의주부윤‧함경도관찰사를 지냈다. 고종초에 좌의정에까지 올랐으나 흥선대원군과 반목하여 1865년(고종 2)에 수원유수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그해말 다시 영중추부사로 전임되어 《대전회통》 편찬의 총재관이 되었다.
    1873년 흥선대원군이 실각하자 곧 영의정이 되었고, 영중추부사로 서임되었다. 흥선대원군과 반목, 대립하였고, 세자책봉문제의 이면에서 일본과 결탁, 청나라 정부에 작용하였으며, 1875년 주청사(奏請使)의 정사로 청나라에 가서 이홍장(李鴻章)을 방문, 회견하고 세자책봉을 공작하였다.
    1879년 영의정으로 있으면서 청나라 북양대신 이홍장으로부터 영국‧프랑스‧독일‧미국과 통상수호하여 일본을 견제, 러시아를 방지하라는 요지의 서한을 받았다.
    1880년 치사하여 봉조하가 되었으나 1881년 그의 개화를 반대하는 유생 신섭(申㰔)의 강력한 상소로 거제도에 유배되었다가 곧 풀려났다.
    1882년 전권대신으로서 일본변리공사 하나부사(花房義質)와 제물포조약에 조인하였다. 학문에도 능하여 《임하필기(林下筆記)》‧《가오고략(嘉梧藁略)》‧《귤산문고》를 남겼으며, 예서에 능하였다.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미지정
       영의정 이유원 묘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송천리 산96-4
       경주이씨


     

     

     

     

     

     

     

    이석규(李錫奎)
    1758년(영조 34)∼1839년(헌종 5).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영석(永錫), 자는 치성(穉成), 호는 동강(東江). 진위(振威) 출신. 이항복(李恒福)의 7대손으로, 이경관(李敬寬)의 아들이다.
    1783년(정조 7)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참봉을 거쳐 고양군수로 재임중인 1807년(순조 7)알성문과에 급제하였다.
    1818년 성균관대사성, 1820년 대사간을 거쳐 1821년 충청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 충청도관찰사로 재임중 단양군의 전세(田稅)‧대동미(大同米)‧군포(軍布) 등을 돈으로 대납할 것을 청하여 허락받았다.
    1825년 형조판서에 임명된 이래 이조‧공조‧예조 등의 판서, 의정부 좌‧우참찬, 좌부빈객, 한성부판윤, 판의금부사 등의 관직을 역임하다가 1833년 파직당하였다. 품계가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에 이르렀고,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이계조(李啓朝)
    1793년(정조 17)∼1856년(철종 7).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덕수(德叟), 호는 동천(桐泉).
    이항복(李恒福)의 7대손이며, 이조판서를 지낸 이석규(李錫奎)의 아들이다. 서울에서 살았다. 일찍이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831년(순조 31)에 판관으로서 식년문과에 갑과 제2인으로 급제, 이조참의‧경상감사‧대사성‧공조판서를 역임하고,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글씨에도 뛰어나 작품으로 〈경릉비 景陵碑〉가 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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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 영의정 이유원 묘 전경..

    ▼ 영의정 이유원 묘 윗쪽에는 조부 이석규 묘가 있다.

     

    ▼ 영의정 이유원 조부 이석규 묘비

     

    ▼ 영의정 이유원 묘역

    ▼ 영의정 이유원 묘 전경

    ▼ 영의정 이유원 묘

    ▼ 영의정 이유원 묘표

    ▼ 영의정 이유원 묘비.. 문양이 특이하다.

    ▼ 영의정 이유원 묘 석물

     

     

    ▼ 영의정 이유원 묘 후경

     

    ▼ 영의정 이유원 묘역 아랫쪽에는 신도비처럼 생긴 비석이 있다.

    ▼ 영의정 이유원 조부 이석규 묘비...

    ▼ 영의정 이유원 수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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