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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성남]청주한씨 청연공파 묘역(한지원,한술,한회)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2. 4. 9. 10:00

    청주한씨 청연공파 묘역(한지원,한술,한회)

     

    율동공원 윗쪽 주차장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묘가 여러기 보인다. 이곳이 청주한씨 청연공파 묘역이다. 이곳은 과거에 이곳에서 근무하면서 매일 지나쳤지만 한번도 관심을 둔적이 없던 묘역이다. 그냥 사대부의 묘이겠거니 했는데 어느날 확인해보니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있었다.
    율동공원내에 있는 한계희 묘는 익히 알고 자주 찾았지만 이곳을 찾는 것은 처음이다. 막상 묘역에 올라보니 온화한 기운이 묘역 전체에 감돈다. 한참 답사를 하는데 동네 노인 한분이 올라오셨다. 아마도 수상한 놈들이라 판단하고 오신것 같다.
    후손분이셨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궁금했던 몇가지도 알 수 있었다. 이곳은 땅값이 엄청 올라 후손들이 조상님을 잘 지켜낼 수 있을지 걱정도 된다. 그나마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니 조금은 안심이 될 수 있다 하겠다.

     

    한지원(韓智源)

     

    1514년(중종 9)∼1561년(명종 16).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사달(士達), 호는 청련(靑蓮). 아버지는 도정 한석(韓碩)이며, 어머니는 윤지준(尹之峻)의 딸이다.
    진사시를 거쳐 1544년(중종 3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정자‧수찬 등을 지냈다.
    1548년(명종 3) 이조좌랑이 되고, 춘추관기주관을 겸임하여 《중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그뒤 지평‧교리‧헌납 등을 지냈다.
    1553년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으나 윤원형(尹元衡) 등 권신에 아부하여 탐학을 일삼았다는 탄핵을 받고 삭직되었다가 1555년 복관되었다.
    1557년 성천부사가 된 뒤 박천군수‧인천부사 등의 외직을 역임하였다. 문장에 뛰어나 당대의 문학사(文學士)라 일컬어졌다.

    한술(韓述)

     

    1541년(중종 36)∼1616년(광해군 8).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선(子善), 호는 도곡(陶谷). 교리 한지원(韓知源)의 아들이다.
    어려서 문장에 힘썼으며, 고시(古詩)로 이름이 높았다.
    1570년(선조 3) 진사시에 1등으로 합격하고, 1580년에 알성문과에 2등으로 급제하였으며, 1596년에는 중시에 급제하기도 하였다.
    1592년 예조정랑이 되었다가 삼척부사로 나갔으나 곧 다시 예조정랑이 되었다.
    1597년 임진왜란 초기에 서천군수로 있을 때 도망갔다 하여 의금부로부터 탄핵을 받았으나 명나라 제독의 접대에 차출되었음이 밝혀져 혐의를 벗었다.
    1599년 해주목사가 되었으나 간관으로부터 재주가 용렬하고 치적이 없다는 탄핵을 받았다. 같은해 문과의 시관(試官)이 되었으나 사관으로부터 그의 사람됨이 비루하고 천한 행동으로 사류에게 버림을 받았으므로 시관이 될 수 없다는 사평(史評)을 듣기도 하였다.
    이듬해 정주목사를 거쳐 영흥부사가 되었으나, 70세 이상의 부모를 둔 수령은 300리 밖에 임명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파직되었다.
    1605년 중추부사가 되었으며, 이듬해 사은사로 명나라에 갔을 때에 예물로 가져간 만화방석(滿花方席)이 습기에 젖어 변색되게 하였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등 여러가지 물의를 빚어서 파직되었다.
    1610년(광해군 2) 동지중추부사로서 경연특진관에 선발되었으나 사간원으로부터 평소에 명망이 낮다 하여 제외시킬 것을 요청받아 제외되었다. 사람됨이 용렬하고 비루하다는 사관의 평을 여러 차례 들었다.

    한회(韓懷)

     

    1550년(명종 5)∼1621년(광해군 1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민망(民望), 호는 태항(苔巷). 교리 한지원(韓智源)의 아들이다.
    1582년(선조 15) 진사‧생원의 양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 정자(正字)를 거쳐 1586년 광흥창봉사(廣興倉奉事)가 되었다.
    1594년 진주사(陳奏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여러번 외직에 전보되었으며, 공조참의를 거쳐 동부승지에까지 올랐다.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에 책록되고,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효성이 남달리 지극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성남시 향토유적 제9호

    문화재명칭

    청주한씨 청연공파 묘역

    소재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 산9-1

    관리자(연락처)

     청주한씨 청연공파 종중

     

    성남시 분당구 율동은 문정공 한계희(韓繼禧 1423~1482)가 묻힌 이후로 청주한씨가 400여년 이상 세거하여 오고 있는 곳이다. 
    율동 산 9-1에 위치한 성남시 향토유적 청주한씨 청연공파(靑蓮公派)묘역은 당대 유림들로부터 최고의 문사로서 추앙받고 호당(湖堂)에 뽑힌 청연공 한지원(韓智源, 1514~1561)을 필두로 그의 아들 한 술(韓述 1541~1616)과 한 회(韓懷, 1550~1621), 그의 손자 한명욱(1567~1652), 증손 한 전(韓甸, 1609~1691), 5대손 한 숙(韓肅, 1691~1708) 등을 포함한 6대에 걸친 묘역으로 16세기부터 17세기까지 조성되었다. 
    묘들은 부분적인 차이는 있으나 조선시대 전형적인 묘제 양식을 보여주고 특히, 문인석의 모습들이 조성 시기별로 다양하게 확인되고 있으며, 묘비들의 경우,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독특한 서체로 쓰여 있어 사료적 가치와 예술적 가치를 함께 지닌 문화유적이다. 
    <성남시 문화관광사이트에서 인용>

     

    ▼ 율동공원에 있는 청주한씨 묘역 및 용맥도

     

     

    ▼ 청주한씨 청연공파 묘역 안내판.

     

    ▼ 청주한씨 청연공파 파조 한지원 묘 전경

     

    ▼ 한지원 묘 전경

     

    ▼ 한지원 묘는 묘역에서 보이는 맨 윗쪽에 있다. 그 윗쪽으로 비켜나서 다른 후손들 묘가 이어있다.

     

    ▼ 한지원 묘표

     

    ▼ 한지원 묘 석물

     

     

    ▼ 한지원의 아들 한술 묘 .. 한지원 묘 윗쪽으로 올라가면 용맥이 분기하는데 한지원 용맥의 반대쪽 용맥의 지각에 묘가 있다.

     

    ▼ 한술 묘표

     

    ▼ 한술 묘 석물

     

    ▼ 한술 묘 후경... 앞쪽으로 보이는 묘역이 부친 한지원 묘

     

     

    ▼ 한지원 아들 한회 묘

     

    ▼ 한회 묘는 분기된 용맥의 우측 아랫쪽에 있다. 즉 한지원 묘의 백호줄기에 묘가 있다.

     

    ▼ 한회 묘 전경

     

    ▼ 한회 묘 석물

     

    ▼ 한회 묘표 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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