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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우리공원묘지#17]영화감독 교하 노필(盧泌) 묘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2. 10. 31. 10:00

     

    영화감독 교하 노필(盧泌) 묘

     

    영화감독 노필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보니 먼저 다녀오신 분들의 글을 참고해서 올린다. 2009년도 출간한 <그와 나 사이를 걷다> - 망우리 비명으로 읽은 근현대 인물사 - 책자가 여러 사이트에 올려져 있어서 그 책을 참고로 하여 노필에 대한 경력을 기록했다.

    묘는 처음에 찾아가자면 좀 어렵지만 자세히 올려놨으니 쉽게 찾을거로 본다. 자리가 부족하다보니 좁은 공간에 묘를 써서 사진조차 제대로 찍을 수 없는 곳이다.

     

    노필(盧泌)

     

    노필은 1927년 서울 화동에서 부잣집 4대 독자로 태어나 경기중학을 졸업하고 연세대 국문과를 다니다, 23세 때 '안창남비행사'(1949)으로 영화계에 데뷰했다. 39세로 생의 막을 내릴 때까지 17년간 30여편을 만들었고 대표작은 '꿈이여 다시 한번', '꿈은 사라지고', '심야의 고백' '밤하늘의 부르스' 등이다. 비교적 양심적인 작품활동을 고집한 그는 주로 응악영화나 멜로물을 만들었는데 한때는 제작자에게 잘 팔리는 감독이었으나 흥행 위주의 작품을 거부하며 제작자로부터 외면당하기 시작했고, 더구나 그가 30대의 젊은 감독 김수용, 강대진, 김기덕 등 11인과 함께 순수예술영화활동을 기치로 내건 신우회(信友會)를 조직하자, 제작자는 더욱 노필을 멀리하게 되었다.  

    가난한 감독 노필. 그는 말이 없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자기 돈으로 조감독을 장가보낸 일도 있는 인정 깊은 사람이었다. 평소 '차분한' 음악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다. 트럼펫곡 'Broken Promise'을 내세운 '검은 상처의 부르스'(1964)와, 뒤이은 '애수의 밤'(1965)의 실패로 더 이상 제작자의 연출 의뢰가 들어오지 않자, 노필은 영화에의 열정을 불태울 곳이 없어 감독으로서는 외도 혹은 모험이라는 제작에 직접 손을 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모아 처음으로 제작에 손댄 영화 '밤하늘의 부르스'는 화려한 출연진과 코미디의 혼합 등으로 흥행성도 가미되어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필 감독은 석 달 후인 7월 29일 새벽 삼청공원에서 목을 매고 자살했다. ..

    <<그와 나 사이를 걷다>-망우리 비명으로 읽은 근현대 인물사에서 발췌>

     

    문화재지정 

    비지정

    문화재명칭

    영화감독 교하 노필(盧泌) 묘

    소재지

    서울시 중랑구 망우동 망우리공원묘지(묘지번호 No.204942)

    관리자(연락처)

    망우리묘지관리소


     

    ▼ 영화감독 교하 노필(盧泌) 묘 위치 (지도#17번) 

    17 노필(盧泌)  204942 1927~1966, 영화감독,<밤하늘의 블루스> 용마산 등산로와 만나는 사각정->뒷길내려가는 소로길->우측옆으로 가는길20m->소로길윗쪽(번호로 찾음)

     

    ▼ 영화감독 교하 노필(盧泌) 묘 위치

    ▼ 영화감독 교하 노필(盧泌) 묘비

    ▼ 영화감독 교하 노필(盧泌) 묘를 찾아가려면 사각정에서 출발한다..

    ▼ 사각정 뒤로 들어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윗쪽길로 간다.

    ▼ 삼거리에서 10여m 정도 가면 개나리 집단이 보이는데 그 윗쪽... 사진의 우측이다.

    ▼ 모르고 가면 지나치기 쉽다. 우측으로 난 작은 길을 들어다보면 묘비가 보인다.

    ▼ 영화감독 교하 노필(盧泌) 묘

    ▼ 영화감독 교하 노필(盧泌) 묘비

    ▼ 영화감독 교하 노필(盧泌) 묘지번호

    ▼ 영화감독 교하 노필(盧泌) 묘는 전순이 없어서 전경 사진을 찍을 수 없다.

    ▼ 영화감독 교하 노필(盧泌) 묘 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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