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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왕릉:묘]영빈묘(숙종 후궁 영빈 김씨)
    답사는 즐거워/조선왕릉답사 2014. 7. 26. 10:00

    영빈묘(숙종 후궁 영빈 김씨)

     

    영빈묘는 지도상에도 나오는 곳이지만 기회가 없어서 갈 생각조차 안했는데

    이번에 광릉지역을 답사하면서 운좋게 함께 답사할 수 있었다.

    입구부터 조금은 특이한 묘로 보이는 몇가지가 눈에 띈다. 수복방과 같은

    건물 흔적이 보이고 강이 상당히 높아 왕릉 버금가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영조가 영빈김씨에 대해 어릴 때 어머니로 불렀다며, 장례를 성대히 치르라고

    지시를 했다 한다. 그래서인지 후손이 없는 묘인데도 지금까지 잘 관리되고 있다.

    기운이 짱짱하게 내려온다. 다만 조안산이 없어서 아마도 왕릉으로 쓰지

    않은것 같다. 

     

    영빈묘(寧嬪墓) 
     
    조선의 제19대 왕인 숙종(肅宗, 재위 1674~1720)의 후궁인 영빈(寧嬪) 김씨(金氏)의 묘이다.(사적 제367호) 영빈 김씨(1669~1735)는 성천부사(成川副使) 등을 지낸 김창국(金昌國)의 딸로 당시 서인(西人)의 영수였던 김수항(金壽恒)의 종손녀이다. 1686년(숙종 12)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추천으로 숙의(淑儀)로 간택되어 입궁하였으며, 그해 11월에 귀인(貴人)이 되었다. 하지만 숙종의 총애를 받지는 못해 1689년 음력 4월 22일에 왕의 기밀을 염탐하여 친정에 알리고 유언비어를 지어내 유포한다는 죄로 폐출되었다가, 1694년(숙종 20) 음력 4월 12일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서인이 집권하면서 폐출되었던 인현왕후와 함께 복위되었다. 

    영빈 김씨는 1735년(영조 11) 음력 1월 12일에 6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영조(英祖, 재위 1724~1776)는 영빈 김씨가 죽자 자신이 어렸을 때 늘 어머니라고 불렀다며 성대히 장례를 치르도록 특별히 명했으며, 자신의 서녀(庶女)인 화유옹주(和柔翁主)를 봉사손(奉祀孫)으로 삼았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에 위치한 영빈묘(寧嬪墓)는 1991년 10월 25일 사적 제367호로 지정되었다. 묘역의 전체 면적은 36,776㎡이며, 묘에는 곡장(曲墻)을 두르고 그 안에 봉분과 석물이 조성되어 있다. 봉분에는 사대석(莎臺石)이 둘러져 있으며, 봉분 앞의 묘표는 1737년(영조13)에 세워진 것으로 팔작지붕 모양의 옥개석이 얹어져 있다. 비문은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의현(李宜顯, 1669〜1745)이 짓고 썼다. 묘표 앞에는 혼유석(魂遊石)과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 장명등(長明燈)이 있으며, 묘의 양쪽에 문인석(文人石)과 망주석(望柱石)이 세워져 있다.

    <두산백과에서 인용>

     

     

     

     

     

     

     

     

     

     

     

     

     

     

     

     

     

     

     

    ▼ 영빈묘 입구... 비공개 알림판이 부착되어 있다. 

    ▼ 영빈묘 안내판

    ▼ 영빈묘 전경

    ▼ 영빈묘 앞에 주춧돌만 있는 수복방으로 보이는 집터

    ▼ 영빈묘 원경.. 강이 상당히 높다.

    ▼ 영빈묘 전경

    ▼ 영빈묘 근경

    ▼ 영빈묘 묘표

    ▼ 영빈묘 장명등

    ▼ 영빈묘 석물

    ▼ 영빈묘 상석, 혼유석

    ▼ 영빈묘 묘표, 혼유석, 상석, 장명등 배치

    ▼ 영빈묘 입수도두

    ▼ 영빈묘 후경

    ▼ 영빈묘 현무봉

    ▼ 영빈묘 현무봉 뒷쪽의 과협처

    ▼ 현무봉에서 바라본 영빈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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