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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밀양]밀양 영남루(密陽 嶺南樓)
    답사는 즐거워/문화재답사 2014. 8. 11. 10:00

    밀양 영남루(密陽 嶺南樓)

     

    답사를 할 때 한동안은 세세하게 계획을 만들어서 진행하곤 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나도 게으름을 피우고 귀찮아져서 계획없이 움직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번에도 무계획으로 출발해서 현장에서 일정을 정하는

    수순을 밟았다. 아마도 스마트폰이라는 무기가 생긴 뒤 부터라고 본다.

    스마트폰 하나면 그 안에 인터넷, 자료들이 무궁무진해서 특별히 중요한

    답사가 아니고는 미리 준비할 필요가 거의 없게 된다.

    만어사를 출발해 영남루로 가는 길은 대충 가는 길목이라고 생각했는데

    만어사 들어가는 입구로 다시나와 밀양으로 고속도로를 타고 들어갔다.

    요즘은 네비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니 네비가 가라는대로 갈 수 밖에...

     

    밀양 영남루(密陽 嶺南樓)  
     
    영남루(嶺南樓)는 보물 제147호로,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에 있는 누각으로 구 객사(舊客舍)의 부속건물이다.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1844년에 다시 지어진 조선시대 후기 건물의 특색을 잘 반영한다. 옛날에 귀한 손님을 맞이하여 잔치를 베풀던 곳으로,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한국의 3대 누각으로 꼽힌다.

    영남루는 동서 5간 남북4간의 팔작지붕으로 된 2층 누각이다. 동서 좌우에는 다시 각각 3간의 익루인 능파각과 침류각이 달려 있다. 문헌에 따르면 영남루는 옛적에 영남사의 절터인데 고려 공민왕 14년(AD 1365년)에 밀양부사 김주가 개창하여 절 이름을 따서 영남루라고 하였다고 전한다.

    영남루는 신라 법흥왕 때 절을 지었다가 고려 현종 때 절을 없애고 종각이 없던 금벼루만 두었던 것을 고려 예종 때 영남루를 지었으며, 1366년 공민왕 14년에 김주가 중수하였다고 전해오고 있다.

    그 뒤에 1460년 조선 세조 6년에 부사 강숙경이 누각의 규모를 키워 중건하였고 신숙주가 누기를 지었다. 1542년 중종 37년에 부사 박세후가 다시 중건하였다.

    1582년 선조 15년 병화(兵火)로 대루와 부속당우가 불타버렸는데, 1637년 인조 15년에 부사 심흥이 재건한 것을 부사 이지온이 단청을 하였다. 1842년 헌종 8년에 실화로 소실한 것을 2년 뒤인 1844년에 부사 이인재가 재건한 것이 현재의 건물이다.

    조선시대 후반기에 속하는 건물로서는 건축미와 규모면에서 대표적인 것으로 손꼽히고 있다. 부사 이인재가 중건할 때의 상량문은 추남 이장한이 지었으며, 준공한 뒤에 김홍근이 지은 상량문이 현판으로 걸려있다.

    <위키백과사전에서 인용>

     

     

     

     

     

     

     

     

     

     

     

     

     

     

     

     

     

     

     

     

     

     

    ▼ 영남루 전경

     

    ▼ 영남루 안내문

    ▼ 영남루 입구

    ▼ 영남루에서 바라본 밀양강

     

    ▼ 영남루 내부

    ▼ 영남제일루

    ▼ 영남루 내부는 두마리의 용이 받쳐주는 모습을 하고 있다.

    ▼ 영남루 천장

    ▼ 영남루 누각 아래...

    ▼ 영남루 능파각

    ▼ 영남루 마당에 보이는 석화...

     

     밀성대군단(密城大君壇)


    이 단비(壇碑)는 밀성대군(密城大君) 박언침(朴彦?)공의 제단으로 후손들이 1925년(乙丑)에 설단수립(設壇竪立)한 비석이다. 대군(大君)은 신라왕자(新羅王子)로서 노퇴채읍(老退采邑)하였으므로 묘소가 영남루(嶺南樓)의 북편에 있다고 하나 실전(失傳)하였는데, 1922년(임술) 여름의 폭우로 영남루 마당의 북편 터가 무너져 한 거광(巨壙)이 노출되니 본손 및 군인(郡人)들이 모여와서 보고, 모두 말하기를 이는 대군(大君)의 묘가 틀림없다 하였으므로, 곧장 봉축(封築)하고 신중(愼重)한 일인지라 단향(壇享)하기로 의논하고 제족(諸族)이 탄성공력(?誠共力)하여 설단(設壇)하였다

     

    ▼ 영남루  뒷마당에 있는 밀성대군단 전경

    ▼ 밀성대군단 측면

    ▼ 밀성대군단비

    ▼ 영남루 뒷편에 있는 천진궁 안내문

    ▼ 천진궁 내삼문 만덕문

    ▼ 천진궁 전경

    ▼ 천진궁 내부... 중앙에 단군상을 모셨다.

    ▼ 천진궁 좌측에 세워진 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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