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기념표석](종로18)김수영 생가 터
    여행등산/기념표석답사 2014. 11. 10. 09:00

     

    표 석 명

    김수영 생가 터

    임시관리번호

    종로18

    설치연도

    2004

    표석문안

    이곳은 시인 김수영(1921- 1968)이 태어난 곳이다.
    그는 처음 연극을 하다가 1945년 잡지 <<예술부락>>에 시 <묘정(廟廷)의 노래>를 발표하며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그의 작품으로는 시집 <달나라의 장난(1959년)> ․시 <거대한 뿌리(1964년)> 등이 있다.

    표석위치(주소)

    서울 종로구 종로2가 56-17

    찾아가는 길

    1호선 종각역 12번 출구-->150m 직진-->종로2가교차로 건너서-->파고다어학원 앞(횡단보도 앞)<탑골공원 건너편 횡단보도 앞>

    관계되는 내용

    김수영(金洙暎)

     

    1921. 11. 27 ~ 1968. 6. 16  초기에는 모더니스트로서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했으나, 4·19혁명을 기점으로 현실비판의식과 저항정신을 바탕으로 한 참여시를 썼다. 본관은 김해.
    서울 관철동에서 아버지 태욱(泰旭)과 어머니 안형순(安亨順) 사이의 8남매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효제보통학교 6학년 때 뇌막염을 앓아 학교를 그만둔 뒤, 1936년 선린상고에 들어가 1941년 졸업했다.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상대[東京商大] 전문부에 입학, 미즈시나[水品春樹]에게 연극을 배웠다. 1943년 겨울 징집을 피해 귀국하여, 1944년 가족과 함께 만주 지린 성[吉林省]으로 이주했다. 해방 후 돌아와 연희전문학교 영문과 4학년에 편입했으나 곧 그만두었다. 6·25전쟁 당시 미처 피난하지 못해 인민군에 징집되었다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었다. 미8군 통역, 모교인 선린상고 영어교사와 평화신문사 문화부 차장 등을 맡으며 여러 직장을 돌아다녔다. 1956년부터는 집에서 닭을 기르며 시창작과 번역에만 전념했다. 그의 나이 47세 때인 1968년 6월 15일, 집 앞 거리에서 버스에 치여 그 다음날 숨졌다. 서울 도봉동에 있는 누이 김수명의 집 뒷동산에 잠들어 있다. 1969년 5월 1주기를 맞아 문우와 친지들이 그의 마지막 시〈풀〉을 새긴 시비를 세웠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에서 인용> 

     

    ▼ 김수영 생가 터 표석

    김수영 시인은 도봉산을 등산하면서 초입에 있는 그의 시 '풀' 시비를 보면서 새삼 기억을 되살렸었다. 그런데 그의 시 '풀'이 그의 마지막 시라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표석을 답사하다보니 몰랐던 것을 많이 알게되고 그 깊이가 깊어짐을 새삼 느낀다. 오랜만에 참 좋은 이슈를 정해 실행하는 것 같아 스스로에게 만족한다.

    ▼ 김수영 생가 터 표석

    ▼ 김수영 생가 터 표석은 탑골공원 바로 앞 건널목을 건너면 나온다.

    ▼ 김수영 생가 터 표석... 건너편에 탑골공원 삼일문이 보인다.

    ▼ 도봉산 초입에 있는 김수영 시비...<인터넷에서 옮겨옴>

    ▼ 김수영 생가 터 표석 위치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