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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영월)단종 영월 장릉 (寧越 莊陵) 답사답사는 즐거워/조선왕릉답사 2017. 10. 28. 09:00
영월 장릉 (寧越 莊陵)
영월하면 단종 유배지 청령포(淸泠浦)와 장릉은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조선왕릉에서 장릉이라는 능호를 가진 릉은 3군데로 단종의 장릉(莊陵), 인조의 장릉(長陵), 인조의 아버지로 추존된 원종의 장릉(章陵) 이렇게 3곳이나 되다보니 한글로 표기할 때는 상당히 헷갈린다. 그래서인지 문화재청에서 이들 3곳의 장릉을 지역명칭을 함께 사용하도록 하여 아주 쉽게 바꿔줬다. 예전부터 내가 바라던 거였는데 내가 안보는 사이에 언제 바뀌어져 있다. 그래서 단종의 능호는 영월 장릉(寧越 莊陵), 인조의 부친 원종의 능호는 김포 장릉(金浦 章陵), 인조의 능호는 파주 장릉(坡州 長陵)으로 바뀌어서 아주 편리해졌다.
영월장릉은 초기에는 정자각에서 가파른 능선을 타고 올라가도록 되어 있었다. 장릉의 안산은 자체적으로 앞쪽이 약간 올라챈 기룡혈의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장릉 능침 진입을 앞쪽으로 열면서 그 안산을 모두 깎아서 지금은 거의 흔적이 안보인다. 때문에 장릉의 기운은 앞쪽으로 흘러나가는 과룡지로 바뀌어져 있다.
단종은 왕비와 한양에서 헤어진 후 한번도 만나지 못했고, 죽어서도 합장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체 600여년이 흘러왔는데 그 안타까운 사연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고자 사릉(단종비 정순왕후 능호)에서 소나무를 장릉 앞에 옮겨와 심어놓았다. 일명 정령송이다.
이곳 정자각 주변에는 다른 능에서는 볼수없는 여러 건물들과 시설들이 있는데 이는 모두 단종 복위운동으로 순절한 신하들과 관련있는 것들이다.
예전 이곳 정자각 앞쪽에는 소나무들이 빽빽했었는데 언제였는지 소나무가 모두 고사하여 지금 소나무는 다른데서 옮겨심은것으로 알고 있다. 다른 릉하고는 달리 이곳은 자연재해도 좀 비켜갔으면 좋으련만 하늘은 전혀 봐줄 의향이 없나보다.ㅎ 영월 장릉도 세월이 흐르면서 별의별 일을 다 겪는듯하여 조금은 안타깝다.
영월 장릉 (寧越 莊陵)
장릉(莊陵)은 조선 단종의 무덤이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 있다. 1970년 5월 26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96호로 지정되었다.
단종은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여 상왕이 되고, 사육신의 복위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지금의 강원도 영월 청령원에 유배되었다가, 1457년 10월 24일 17세에 사약을 받고 숨을 거두었다.
사망할 당시 고을 사람들은 후환이 두려워서 시신을 거두지 못했고 시신은 그대로 강물에 떠다녔는데, 호장 엄흥도가 을지산 현 위치에 암장하였다. 이에 따라 장릉은 추존왕의 왕릉을 제외하고, 한양으로부터 100리 이내에 모셔야 한다는 《경국대전》의 규정을 따르지 않은 유일한 왕릉이 되었다.
그 후 59년이 지난 중종 11년(1516년) 여러 사람의 증언으로 묘를 찾아내 지키게 했으며, 12월 15일 처음으로 치제(致祭)가 이루어졌다. 치제를 맡은 것은 우승지 신상(申鏛)으로, 김안국과 함께 파견되어 단종의 묘에 제사를 지내고 돌아온 신상은 당시 노산군(단종)의 묘는 영월군에서 서쪽 5리쯤 떨어진 길 옆에 있었는데, 봉분 높이가 겨우 두 자밖에 되지 않았고 주변에는 민간의 여러 무덤들도 가득했지만 영월 사람들은 그 무덤을 군왕의 묘라 부르며 어린아이들까지 다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선조 13년(1580년) 상석, 표석, 장명등, 망주석을 세웠으며, 숙종 24년(1698년)에 비로소 단종(端宗)이라는 묘호가 올려지고 신위가 종묘에 모셔지면서, 영월에 있던 무덤도 장릉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경내에는 정자각, 단종비각, 영천, 배식단, 재실, 홍살문 등이 있으며, 울창한 노송의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능의 양식은 왕명에 따라 간단하게 조성되었다. 봉분 앞에 상석(床石)과 4각옥형(四角屋形)의 장명등(長明燈)이 있으며, 망주석(望柱石) 2개, 문석(文石) 2개, 석수(石獸) 여러 개가 있다. 다른 능과 달리 단종에게 충절을 한 여러 신하들을 장릉에 배향하기 위해 장릉 밑에 충신단을 설치하였다..
<위키백과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사적 제196호
문화재명칭
영월 장릉 (寧越 莊陵)
소재지
강원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 (영흥리)
관리자(연락처)
문화재청, 영월군
▼영월 장릉 (寧越 莊陵) 홍살문...
▼영월 장릉 (寧越 莊陵) 정자각과 릉상...
▼영월 장릉 (寧越 莊陵) 정자각...
▼영월 장릉 (寧越 莊陵)은 릉상이 상당히 가파른 곳에 있다보니 제향공간과 능침공간이 완전 별개로 떨어져 있다.
▼영월 장릉 (寧越 莊陵) 정자각, 비각, 수복방...
▼영월 장릉 (寧越 莊陵)의 예감은 특이하다. 앞쪽에 수라간이 복원되어 있다.
▼제향공간 안에 있는 우물...
▼영월 장릉 (寧越 莊陵) 비각
▼영월 장릉 (寧越 莊陵) 비각 안내판과 단종능비...
▼영월 장릉 (寧越 莊陵) 배식단... 배식단은 장릉(莊陵)의 정단과 별단에 배식한 268위의 제단이다. 단종이 복위된 이후, 1791년(정조 15)에 처음으로 정위 32인과 별단의 제위 198인을 지정하였다. 이 배식자 숫자는 그 후 순조 연간 이래 추가되어 268위로 증가하였다. 제사의 시일은 한식 때이며, 그 축문은 정조가 직접 지었다.
▼영월 장릉 (寧越 莊陵) 장판옥... 신하들의 위패를 모셔놓은 곳이다. 배식단의 명단이라 볼 수 있다.
▼영월 장릉 (寧越 莊陵) 릉상 오르는 길...
▼영월 장릉 (寧越 莊陵) 오르는 길에 시멘트는 산자들의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것이다.
▼단종비인 정순왕후가 잠들어있는 사릉에서 모셔온 소나무... 정령송
▼영월 장릉 (寧越 莊陵) 전경... 해질녘이라 역광으로 사진이 너무 검다...
▼영월 장릉 (寧越 莊陵)
▼영월 장릉 (寧越 莊陵) 능상에서 바라본 정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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