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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답사)정릉(貞陵), 의릉(懿陵) 답사답사는 즐거워/조선왕릉답사 2019. 3. 10. 09:00
정릉(貞陵), 의릉(懿陵) 답사
성북구에서 풍수지리 강의를 한 지 벌써 10 여 년이 흘렀는데 다른 조선왕릉은 거의 빠짐없이 다녔지만 성북구 소재 정릉과 의릉은 거의 찾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라기 보다는 조선왕릉 답사는 답사 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그곳에서 기운을 받는 이른바 power spot을 겸해서 하다 보니 이 두 곳은 자연스레 지나치게 되었다.
이번 봄을 맞아 성북구 소재 조선왕릉을 찾기로 하고 수강생들에게 두 번의 기회를 드리고 두 번 중 한 번은 참석하도록 하였다. 그 첫 번째 답사를 오늘 진행한 것이다.
정릉, 의릉은 이른바 안타깝다고 표현되는 왕릉이다. 그만큼 왕릉으로서의 입지나 보국, 형세 등이 미흡하다고 보여지는 곳이다. 오랜만에 미세 먼지도 사라진 서울 하늘에서 조선왕릉을 마음껏 활보하면서 사진에 담고 왔다. 예전에 조선왕릉에는 그래도 주말에는 사람들이 꾀나 들어왔는데 오늘 찾은 왕릉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덕분에 사진은 깔끔하게 잘 나왔다.
정릉(貞陵)
조선 태조의 제2비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康氏)의 능.
사적 제208호.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에 있다. 처음 능지를 정한 곳은 안암동이었으나 산역을 시작할 때 물이 솟아나와 지금의 정동에 자리를 정하게 되었다.
능이 성북구 정릉동으로 옮겨진 것은 1409년(태종 9)이며, 이것은 오로지 태조가 제8왕자 방석(芳碩)을 세자로 책봉한 데 대한 태종의 사감에서였다. 태종은 능을 옮긴 지 한달이 지나자 정자각(丁字閣)을 헐고 석물을 모두 묻어 없애고, 광교(廣橋)에 있던 흙다리가 무너지자 십이신상(十二神像) 등의 석물을 실어다 돌다리를 만들게 하였다.
능을 옮긴 뒤 수백 년간 정릉은 왕후의 능이라기보다 주인 없는 무덤에 불과하였다. 1669년(현종 10)송시열(宋時烈)의 계청(啓請)으로 비로소 종묘에 배향하고 능묘로 봉심(奉審)하기로 하였으며, 이경석(李景奭) 등의 계청으로 능을 수리하고, 재실을 중건하여 수호군을 정해주기에 이르렀다. 능 관리를 위하여 영(令) 1원과 참봉 1원을 두었다.
의릉(懿陵)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에 있는 조선 제20대 왕 경종과 그의 계비 선의왕후 어씨(宣懿王后 魚氏)의 능. 앞뒤로 비껴 능역을 조성하였고, 각각 단릉의 상설을 갖추고, 왕릉에만 굽은 담장을 둘러 쌍릉임을 나타낸 규모가 작고 간소한 후릉제도다.
사적 204호. 경종은 숙종의 제1자로 희빈장씨(禧嬪張氏)의 소생이다. 숙종의 승하 후 경희궁에서 즉위하였으나 병약하여 재위 4년 만에 승하하였다.
선의왕후는 함원부원군(咸原府院君)어유구(魚有龜)의 딸로 15세 때 세자빈이 되었다가 경종의 즉위와 더불어 왕비로 진봉(進封)되었는데, 26세로 소생없이 승하하였다.
일반적으로 쌍릉은 좌우로 조성하나 이 능은 앞뒤로 비껴 능역을 조성하였다. 왕릉과 왕비릉이 각각 단릉(單陵)의 상설을 모두 갖추고, 뒤에 있는 왕릉에만 곡장(曲墻 : 굽은 담장)을 둘러 쌍릉임을 나타낸 배치이다.
이러한 전후능설제도(前後陵設制度)는 영릉(寧陵 :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의 능)에서 처음 나타난 형식으로서 풍수지리적으로 생기왕성한 정혈(正穴)에 봉릉(奉陵)한 것이다.
석물은 병풍석이 없는 난간석(欄干石)ㆍ혼유석(魂遊石)ㆍ장명등(長明燈)ㆍ망주석(望柱石)ㆍ문무석(文武石)과 말ㆍ양ㆍ호랑이가 있다.
능석물의 배치와 양식은 명릉(明陵 : 숙종과 제1계비 인현왕후, 제2계비 인원왕후의 능)과 같이 규모가 작고 간소한 후릉제도(厚陵制度)를 택하였는데 이는 『속오례의(續五禮儀)』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의릉의 능역은 11만 4,658평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정릉(사적 제208호), 의릉(사적 제204호)
문화재명칭
정릉(貞陵), 의릉(懿陵)
소재지
서울 성북구 정릉동, 서울 성북구 석관동
관리자(연락처)
문화재청
▼ 정릉(貞陵)의 조선왕릉 세계유산 기념비...
▼ 정릉(貞陵) 금천교
▼ 정릉(貞陵) 홍살문과 정자각...
▼ 정릉(貞陵)은 수복방, 수라간 등 복원이 완료된 왕릉이다.
▼ 정릉(貞陵) 비각에 모셔진 고종 때 만든 비석... 대한 신덕고황후 정릉... 조선에서 대한으로, 왕후에서 황후로 바뀐 비석이다.
▼ 정릉(貞陵) 전경
▼ 정릉(貞陵) 장명등... 조선 초기 장명등 양식이다.
▼ 정릉(貞陵) 능상에서 바라본 정자각... 앞쪽안산이 혈장보다 낮고 혈장은 너무 가파라 멈춤이 없다.
▼ 정릉(貞陵) 후경
▼ 의릉(懿陵) 홍살문과
▼ 의릉(懿陵) 판위와 향로 어로...
▼ 의릉(懿陵) 비각
▼ 의릉(懿陵) 능비...
▼ 의릉(懿陵) 측경... 의릉은 조선왕릉 중에서 상하릉으로 조성된 특이한 형태다. 여주에 있는 효종 영릉과 의릉 단 두 개 뿐이다. 뒤쪽이 왕, 앞쪽이 왕비릉이다.
▼ 의릉(懿陵) 전경
▼ 의릉(懿陵) 문무인석은 사람 실물 크기이다. 서오릉의 숙종 명릉부터 사람 실물크기로 등장한다.
▼ 앞쪽에 위치한 선의왕후 릉에서 바라본 의릉
▼ 선의왕후릉 후경
▼ 의릉 향선과 봉화산의 정상적인 배치... 의릉의 향선을 봉화산으로 맞춰야 형세적으로 타당한데 이를 일부러 어기며 엉뚱한 곳으로 맞추었다.
▼ 의릉(懿陵)에서 왕릉해설사의 설명을 경청하는 회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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