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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전 유성]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정려문과 문학비
    답사는 즐거워/문화재답사 2018. 3. 21. 10:00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정려문 


    대전 전민동에 김반선생 묘역이 있어서 답사를 했는데 그 옆에 김반의 손자인 서포 김만중 정려문이 있어서 들어가봤다. 안에는 정려문이 걸려있고 그 안쪽에 서포선생의 조각상이 모셔져 있다. 이 입상은 초상화를 근거로 조각했다고 한다.

    서포선생은 구운몽을 어머니를 위해 지었다고 한다. 그만큼 어머님 생각이 각별했는데 끝내 유배지에서 나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돌아가셨다. 묘도 이리저리 옮겨다니다가 장단에 모셨는데 지금은 이북이어서 찾아가지도못하고 있다. 

    일생을 힘들게 살다 가셨는데 집권 서인세력이었으면서도 주자를 비판하는 등 학문적으로 타협하지 않고 자기주장을 펼치다 유배지에서 돌아가셨다. 유배생활 덕분인지 많은 저서를 남겨서 국문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분이다.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조선의 대표적인 실학자 서포 김만중 선생의 터전이 대전 전민동이었다. 대전 전민동에는 김만중 선생의 조부 김반선생의 묘와 부친 김익겸선생의 묘를 비롯해 직계후손들의 묘가 광산김씨 문중에서 400여년간 관리되고 있다. 그리고 재실에는 서포 김만중 선생의 초상화를 조각한 입상이 모셔져 있으며, 그 옆에 서포선생의 시비가 세워져있다.

    김만중(金萬重 1637-1693)의 자字는 중숙(重叔), 호(號)는 서포(西浦)다. 그는 이이(李耳)의 고제(高弟)이며 예학(禮學)의 동국(東國) 제1재(第一才)라 인정받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증손(曾孫)이며, 병난시 (丙亂時) 강화(江華)에서 순절(殉節)한 김익겸(金益兼)의 유복자(遺腹子)다.

    저서로는 서포집(西浦集) 서포만필(西浦漫筆) 구운몽 (九雲夢)이 있다. 구운몽은 적소에서 어머니를 위해 지은 것이다. 특히 한글로 된 소설이어서 더욱 값진 것이다. 1803년 간행(刊行)되었다.

    특히 그의 평론집인 [서포만필]은 이단시되어 비난을 받았다. 그것은 그가 朱子를 과감히 비판했고 불교에 동조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는 집권파인 西人의 적통이었으나 그의 언동은 많은 비판을 받았고 급기야 숙종18년 남해 배소에서 졸했다.

    <2012.1.5(목) 김문창 기자 글 인용>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정려문

    소재지

    대전광역시 유성구 유성대로1665번길 21-8

    관리자(연락처)

    광산김씨 허주공파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정려문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정려문 우측으로 할아버지 김반선생 묘역이 보인다.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숭모비 측경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효행숭모비 전면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효행숭모비 우측면...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효행숭모비 후면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효행숭모비 좌측면...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입상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정려문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선생 문학비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선생 문학비 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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