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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양주]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楊州檜巖寺址禪覺王師碑)
    답사는 즐거워/문화재답사 2019. 3. 23. 09:00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楊州檜巖寺址禪覺王師碑)


    회암사지 선각왕사비는 현 회암사 뒤쪽 능선에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원래의 비는 그곳에 있었는데 1997년 산불로 인해 비각이 불에 타면서 비도 훼손돼 지금은 불교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현재의 자리에는 모형을 세워 놓았다. 원래 비의 귀부는 현 위치에 그대로 존치하고 있다.

    선각왕사비의 내용이나 문화재적인 가치는 아래 설명문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나는 이 비가 능선상에 세워진 이유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산의 형태를 따져서 요함이 있는 자리 즉 산세가 공허한 자리에는 전통적으로 비보염승이라 하여 적절한 비보방책을 강구하여 왔다. 이곳 무학대사탑이 있는 곳은 북서쪽 백호방이 허하고 바람길에 있다보니 이곳을 비보염승 하기 위해 이곳에 비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비보를 위해 비석을 세운 곳은 바람길이기 때문에 늘 화재에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바람길에 비석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목재로 된 비각을 세웠다. 이는 무지의 소치이다. 바람길은 언제든 화재가 일어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비각이 오히려 비석을 훼손시킬 우려가 높은 것이다. 비각으로 인해 지난 1997년 산불 때 비각이 무너지며 보물로 지정된 선각왕사비가 훼손되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얼마전 뉴스에 보니 경기도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선각왕사비 비신이 불교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고 보도 되었다. 

    앞으로 문화재청 위원들이나 역사학자분들, 문화해설사분들은 교양과목으로라도 풍수지리학을 터득해야 한다고 본다. 또 한가지는 풍수지리학자를 문화재관리위원으로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고 본다. 이런 참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비보염승으로 세워진 비석에 비각을 씌운 곳은 모두 철거해야 할 것이다.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楊州檜巖寺址禪覺王師碑)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회암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탑비.

    보물 제387호. 높이 3.06m, 너비 1.6m. 1377년(우왕 3) 고려 말 승려인 나옹(懶翁) 화상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이 비는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비의 형식은 당비(唐碑)의 형식을 닮은 복고풍의 것으로 개석이 없다. 그런데 1997년 보호각이 불에 타면서 비신이 파손되어 보존 처리가 이루어졌고, 경기도박물관을 거쳐 현재 불교중앙박물관에서 비신을 보관하고 있다. 비가 있었던 원래의 자리에는 비 받침돌인 귀부가 남아 있으며, 원형을 본 따서 만든 비가 세워져 있다.

    이수(螭首)를 별도로 만들지 않고 비신 상부에 쌍룡을 깊게 조각하고 그 중앙에 제액을 만들어 ‘禪覺王師之碑(선각왕사지비)’ 6자를 새겼다. 자경은 2∼2.4㎝, 전액의 자경은 11.2㎝이다. 비문은 이색(李穡)이 짓고, 권중화(權仲和)가 예서로 쓰고 전액도 하였다.

    비문에 따르면 왕사의 휘는 혜근(惠勤), 호는 나옹, 초명은 원혜(元惠)이고, 영해부(寧海府) 사람이며, 선각은 시호이다. 1320년(충숙왕 7)에 태어나 1344년에 회암사에 입문하였다. 1348년에는 원나라에 가서 지공(指空)에게 법의·불자(拂子: 번뇌를 물리치는 표지물)·범서를 받았다. 또 원나라의 순제(順帝)가 대사를 연도(燕都)의 광제사(廣濟寺)에 주거하게 하고, 금란가사와 폐백을 하사하였다.

    나옹이 1358년(공민왕 7)에 귀국하자 왕이 그에게 가사와 불자를 하사하고 신광사(神光寺)에 주거할 것을 청하였으나, 굳이 사양하고 구월산·금강산 등에서 은거하였다. 그러다가 회암사에 들어와 절을 크게 중수하고 1377년 신륵사에서 57세로 입적할 때까지 불법을 행하였다. 후미에는 대사의 업적을 기리는 명문을 새겼다.

    이 비의 글씨는 예서인데, 예서는 고구려의 광개토왕릉비와 중원고구려비 이후 고려 말에 이 비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당시 중국에서도 예서가 쓰이지 않을 때였으므로 우리나라의 예서 연구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동국금석평(東國金石評)』에서 나옹비는, “팔분서(八分書: 예서 이분쯤과 전서 팔분쯤을 섞어 만든 한자의 글씨체)인데 태정(太整)하나 신채(神彩: 훌륭한 풍채)가 없다.”고 평하였다. 그러나 결구도 엄정하고 필력도 주경하며 예법을 깊이 터득한 것으로서, 중국의 「희평석경(熹平石經)」을 방불케 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보물 제387호

    문화재명칭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楊州檜巖寺址禪覺王師碑)

    소재지

    비신: 서울특별시 종로구 우정국로 55(견지동) 불교중앙박물관, 귀부: 경기도 양주시 회암사길 281(회암동) 회암사지

    관리자(연락처)

    회암사

     

    ▼ 양주 회암사지 위쪽으로 회암사가 들어서 있다. 회암사 일주문

    ▼ 양주 회암사 입구

    ▼ 양주 회암사 입구 공덕비 비문들....

    ▼ 양주 회암사 대웅전...

    ▼ 양주 회암사 조사전...

    ▼ 양주 천보산 아래 회암사 전경

    ▼ 양주 회암사 삼성각...

    ▼ 양주 천보산...

    ▼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楊州檜巖寺址禪覺王師碑) 안내문

    ▼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楊州檜巖寺址禪覺王師碑) 구 귀부...

    ▼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楊州檜巖寺址禪覺王師碑) 모조비 안내문

    ▼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楊州檜巖寺址禪覺王師碑) 모조비...

    ▼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楊州檜巖寺址禪覺王師碑) 모조비...

    ▼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楊州檜巖寺址禪覺王師碑) 모조비... 원래의 비가 이렇게 생겼는지 하얀 바탕에 글을 새겨서인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 원래 있던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楊州檜巖寺址禪覺王師碑) <문화재청에서 인용>

    ▼ 화재로 파괴된 선각왕사비(왼쪽). 복원 후 모습[출처] [조유전의 문화재 다시 보기] 

    ▼ 보존처리 이후의 선각왕사비<불교인드라망에서 인용>, 불교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선각왕사비<불교신문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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