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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양주]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楊州檜巖寺址無學大師塔) 외
    답사는 즐거워/문화재답사 2019. 3. 22. 09:00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楊州檜巖寺址無學大師塔)


    양주 회암사지에 무학대사탑이 있다는 것은 그지역에 근무할 당시에는 몰랐고 추후에 문화유산답사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회암사지부도탑이라고 하는 탑 하나만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이곳을 여러번 방문했는데 제가 게으른 탓인지 당연히 글을 올렸을거로 생각해서인지 블로그에 포스팅이 안되어 있다.

    이번에 새로 사진을 찍고 글을 올리려니 방대한 양이라 시간도 많이 걸리고 올릴 내용은 많고 해서 조금 소홀한 면이 있더라도 일단 자료로 올리는 것이니 독자들은 양해를 해주길 바란다.

    이곳은 무학대사탑과 백호 사이에 회암사가 들어서 있다. 아마도 순조28년에 새로 지어서 3대사 탑을 보호하는 의미가 있는듯 보인다. 그런데 백호자락 견부쪽에 조금 꺼진듯 바람길이 보이는데 이를 비보하고자 그곳에 선각왕사비를 세웠다. 공교롭게도 그곳에 있던 선각왕사비는 산불로 인해 산산조각이 나 버리고 현재는 모형을 세워놓은 상태다. 바람길은 항상 화재를 조심해야 한다. 선각왕사비가 그 비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무지하게 그 비석을 비각을 세워 비바람을 막는다고 하였으니 끝내 화재로 인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이렇듯 조금만 알아도 그런 일을 하지 않을텐데 너무 모른다. 문화재 위원들은 교양과목으로 무조건 풍수지리 공부를 해야 한다. 문화재 위원, 역사학자, 문화해설사 등은 풍수지리 이론을 모르는 것을 스스로 학문의 깊이가 얕다고 판단하고 정진해야 한다.

    이곳 회암사지를 방문할 때마다 선각왕사비 언덕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 없어진다.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楊州檜巖寺址無學大師塔)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회암사 터에 있는 조선 초기의 승탑.

    보물 제388호. 높이 2.7m. 고려 말, 조선 초에 활동하였던 무학대사 자초(自超, 1327∼1405)의 묘탑(墓塔)이다. 회암사 터의 북쪽 능선 위에 있는데, 뒤쪽에는 스승인 나옹(懶翁) 혜근(惠勤, 1320∼1376)의 승탑과 함께 나옹의 스승인 지공(指空, ?∼1363)의 승탑도 있고, 왼쪽 능선 아래에는 현재의 회암사가 있다.

    승탑은 8장의 길고 큰 돌을 2단으로 쌓아 만든 높고 널찍한 단면 8각의 석단(石壇) 위에서 있다. 석단의 각 모서리에는 꼭대기부분을 보주(寶珠) 모양으로 장식한 네모난 돌기둥이 세워져 있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길고 넓은 돌을 끼워 넣었다. 길고 넓은 돌 위에는 보주 모양의 기둥을 연결하여 난간을 둘렀는데, 이것은 승탑을 보호하는 장치이자 장엄으로 보인다.

    바닥돌은 단면이 8각인 하나의 돌로, 각 면에는 굵은 선으로 구름 무늬를 돋을새김하였는데, 특히 각 모서리의 구름무늬는 유난히 크게 조각되었다. 받침돌은 아래받침돌, 가운데받침돌, 윗받침돌로 구성되었다. 아래받침돌은 2장의 꽃잎이 아래로 향해 있는 복련(覆蓮)의 연꽃무늬 16개가 귀꽃과 함께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는 연화대(蓮花臺)이다. 가운데받침돌은 마치 단면 8각의 북을 옆으로 엎어 놓은 듯한 모습으로, 가운데부분이 약간 부른 각 면에는 네 모서리가 안쪽으로 접힌 네모꼴의 안상(眼象)이 조각되었는데, 안상 가운데에는 각각 모양이 다른 꽃 무늬가 돋을새김되어 있다. 윗받침돌은 밑면에 3단의 각진 받침이 새겨져 있고, 그 위에는 꽃잎이 위로 솟은 앙련(仰蓮)의 연꽃 무늬 16개가 돋을새김되어 있다. 앙련의 모습과 연꽃잎 안의 장식은 아래받침돌의 복련과 같지만 귀꽃은 없다. 앙련 위에는 단면 8각의 높직한 받침이 있는데, 옆면에는 각 면마다 네모꼴 구획을 마련하고서 덩굴풀무늬[唐草文]를 돋을새김해놓았다. 다만, 무늬가 굵은 선으로 조각되어 섬세함과 유려함은 떨어진다.

    단면이 둥근 몸돌은 굄이 없이 윗면이 평평하게 처리된 윗받침돌 위에 올려져 있다. 옆면에는 구름무늬와 함께 구름 속을 날고 있는 용무늬가 가득 조각되어 있다. 특히 용의 머리와 몸통, 비늘 등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생동감을 주며, 구름무늬 역시 뒤엉킨 몸통 사이에 빈틈없이 조각되어 역동감을 한층 더하고 있다.

    단면 8각의 지붕돌은 밑면에 서까래가 뻗어 있고, 대들보 위에 올리는 짧은 기둥인 두공(枓栱) 모양이 새겨져 있지만 퇴화된 양식이다. 추녀는 평박(平薄)한 편으로, 각 모서리는 약간 치켜 올라갔고, 전각(轉角)에는 약간의 반전(反轉)이 있어 둔중함이 조금 감소되었다. 비교적 급경사를 이루는 낙수면에는 각 모서리마다 전각까지 우동(隅棟)을 굵게 표현하였는데, 전각을 만나기 전에 특이하게 용 머리를 하나씩 돋을새김해 두었다. 머리장식인 상륜부(相輪部)는 지붕돌 꼭대기부분에 구멍을 뚫고서 보주만을 올린 간소화된 모습으로, 아랫부분에는 2단의 둥근 받침이 새겨져 있다.

    이 승탑은 조선 초기의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승탑으로,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는 무학대사비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1407년(태종 7)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보물 제388호

    문화재명칭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楊州檜巖寺址無學大師塔)

    소재지

    경기도 양주시 회암사길 281(회암동) 회암사지

    관리자(연락처)

    문화재청

     

    ▼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楊州檜巖寺址無學大師塔)... 뒤쪽에서 들어가기 때문에 무학대사탑, 그 앞에 석등, 맨 앞에 무학대사비가 있다.

    ▼ 양주 회암사지 전망대를 지나면 새로 만들어진 회암사 일주문이 나온다.

    ▼ 회암사 경내...


    무학대사비(無學大師碑)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회암사지에 있는 무학대사의 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1호. 이 비는 무학대사(1327∼1405)의 탑비로서 1410년(태종 10) 왕명에 따라 변계량(卞季良)의 글과 공부(孔俯)의 글씨로 세워졌으나 1821년(순조 21) 인위적인 파괴로 말미암아 뒤에 다시 세워졌다.

    비문에는 대사의 일생이 적혀 있는데, 특히 그가 고려 공민왕 때 연경(燕京)에 가서 지공대사(指空大師)를 찾아 법을 구하고, 이어서 법천사(法天寺)에 가 있는 나옹선사(懶翁禪師)를 만나보고 제자가 된 일, 태조의 부름을 받아 왕사가 되어 한양 천도에 큰 역할을 한 일, 회암사에 두 스승의 묘탑을 세운 일 등이 잘 나타나 있다.

    무학대사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명승으로 속성은 박(朴), 이름은 자초(自超)이다. 18세에 출가하여 소지선사(小止禪師)에게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고 용문산(龍門山)혜명국사(慧明國師)에게서 불법을 배운 후 묘향산(妙香山)에 수도하였다. 연경에 다녀 온 후 회암사에서 머물다가 금강산(金剛山) 금장암(金藏庵)에서 입적하였다. 비는 4각 하대석(下臺石) 위에 비신을 놓고 장방형의 비개석(碑蓋石)을 올려놓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경기도 시도유형문화재 제51호

    문화재명칭

    무학대사비(無學大師碑)

    소재지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산8-1

    관리자(연락처)

    회암사

     

    ▼ 무학대사비(無學大師碑)

    ▼ 무학대사비 안내문

    ▼ 무학대사 상... 회암사지 박물관에 전시된 무학대사 상...

    ▼ 무학대사비

    ▼ 원래 있던 비석은 광주이씨 후손에 의해 부숴지고 남은 비좌와 지붕돌... 

    회암사지 북쪽 천보산 아래에는 지공, 나옹, 무학개사의 승탑과 승탑비가 있는데, 이 유물은 광주의 토호 이응준은 풍수사 조대진의 이야기 “세 화상의 부도와 부도비를 없애버린 후 그곳에 묘역으로 삼고 법당 터에다 묘지를 세우면 크게 길한다.”라는 말에 그대로 실행한 후 7년 뒤(순조 28년)인 1828년에 세상에 알려졌다. 이응준과 조대진은 외딴 섬으로 유배를 보냈고, 경기지방 승려들의 의견을 모야 회암사 터에서 북쪽으로 800여m 떨어진 천보산 중턱에 절을 짓고 세 분의 승탑과 승탑비를 원래대로 세웠다는 무학대사의 음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복원하는 과정에서 흩어진 유물을 모두 수습하지 못하고 지공선사와 무학대사의 몸돌을 복원하지 못하였다.   <신문고뉴스 정진해 위원 기사에서 발췌>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 석등(楊州檜巖寺址無學大師塔─雙獅子石燈)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회암사지에 있는 조선 전기의 석등.

    보물 제389호. 높이 2.5m. 회암사지 동쪽 능선 위에 지공(指空)·나옹(懶翁)·무학(無學)의 부도가 남북으로 나란히 있고, 그 남쪽 끝에 이 석등이 있다.

    상하 평면은 방형이고 지대석(地臺石)과 하대석은 한데 붙여서 만들었는데, 하대석에는 각 모퉁이와 그 중간에 여의두문(如意頭文)같이 퇴화된 복련(覆蓮)이 조각되고 위에는 받침 1단이 있다.

    이 위의 간석(竿石)은 쌍사자로 대신하여 신라 이래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나, 가슴과 배가 서로 붙어서 입체감이 없으며 엉덩이가 밑에 닿아서 하지의 표현이 매우 부자연스럽다. 앞다리의 표현도 짧아서 빈약해보이며 키가 작아서 육중한 상층부를 지탱하기 어려워보인다.

    상대석에는 하대석과 같이 8엽 앙화(仰花)가 조각되었다. 화사부(火舍部)에는 ○형의 2개의 석재를 좌우에 간격을 두고 놓아서 그 간격으로 생긴 전후공간이 화창(火窓)의 구실을 하고 있다. 네 모퉁이에는 원형의 우주(隅柱: 모서리기둥)를 표시하는 등 이례적인 형식이다.

    옥개석(屋蓋石)은 두껍고 처마밑이 반원을 그리면서 들렸고 낙수면(落水面)의 우동(隅棟: 옥개석의 귀마루)은 뚜렷하게 표현되었다. 옥정(屋頂)에는 복발형(覆鉢形) 석재(石材)와 보주(寶珠)가 있다.

    이 석등은 충주 청룡사지(靑龍寺址) 보각국사탑(普覺國師塔) 앞의 석등과 매우 유사한 양식이어서 건립 연대는 14세기 말인 조선 전기로 추정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보물 제389호

    문화재명칭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 석등(楊州檜巖寺址無學大師塔─雙獅子石燈)

    소재지

    경기도 양주시 회암사길 281(회암동) 회암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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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

     

    ▼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 석등(楊州檜巖寺址無學大師塔─雙獅子石燈) 안내문

    ▼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 석등

    ▼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과 앞쪽 쌍사자 석등

    ▼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楊州檜巖寺址無學大師塔) 안내문

    ▼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楊州檜巖寺址無學大師塔)과 석등

    ▼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楊州檜巖寺址無學大師塔) 측 후경

    ▼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楊州檜巖寺址無學大師塔)과 석등

    ▼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楊州檜巖寺址無學大師塔) 후경... 능선 상에 조성된 조선왕릉이나 묘역, 부도탑 등 주변에 소나무가 조성된 곳에서는 가운데로 쏠림 현상이 일어나 흔히 말하는 절을 하는 형상이 된다. 


    양주 회암사 지공선사부도비(楊洲 檜巖寺指空禪師浮屠碑)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양주 회암사지에 있는 부도비이다.  2004년 11월 29일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135호로 지정되었다.

    지공선사의 부도 앞에 있는 이 부도비는 지공선사의 유래를 기록한 비이다. 원래의 부도비는 이색이 찬하고 한수가 글씨를 써서 1378년(우왕 4년)에 건립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부도비의 건립연대는 '숭정기원후사무자오월 일립'으로 기록되어 있어, 1828년(순조 28년)에 중건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부도비 옆에는 비의 귀부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데, 이것이 원래 지공선사 부도비의 귀부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도비 형태는 옥개석·비신·비좌·지대석의 구조이다.

    <위키백과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35호

    문화재명칭

    양주 회암사 지공선사부도비(楊洲 檜巖寺指空禪師浮屠碑)

    소재지

    경기도 양주시 회암사길 281(회암동) 회암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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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암사

     

    ▼ 양주 회암사 지공선사부도비(楊洲 檜巖寺指空禪師浮屠碑) 안내문

    ▼ 양주 회암사지 박물관에 전시된 지공선사 상

    ▼ 양주 회암사지 박물관에 전시된 지공선사의 수행루트...


    ▼ 양주 회암사 지공선사부도비... 옆에 원래의 부도비의 귀부와 지붕돌만 남아있다. 


    ▼ 양주 회암사 지공선사부도비

    ▼ 지공선사 원래 부도비 귀부와 지붕돌로 추정되는 석물... 


    지공선사부도 및 석등(指空禪師浮屠─石燈)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부도와 석등. 높이 3.5m.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9호.

    나옹(懶翁)·무학(無學) 화상의 부도에 이어 천보산(天寶山) 회암사 동쪽 능선 맨 뒤쪽에 서 있는 이 부도는 충렬왕 말년에 고려에 들어와 머물렀던 인도 마갈제국(摩竭提國) 고승 지공(指空)의 사리탑으로, 팔각당형(八角堂形)을 기본구조로 하여 기단부(基壇部)·탑신부(塔身部)·상륜부(相輪部)가 모두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다.

    약간 두꺼운 지대석(地臺石) 위에 팔각형 상·하대석과 고복형(鼓腹形)의 중대석으로 이루어진 기단부는, 상대석만이 앙련석(仰蓮石) 모양을 하여 약간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을 뿐, 표면에는 아무런 장식도 하지 않아 매우 단순 소박한 형태를 하고 있다.

    팔각모양의 옥개석(屋蓋石)에 둥근꼴의 몸체를 하고 있는 이 부도의 탑신부 역시 기단부에서 보는 바와 같이 표면에는 일체의 장식이 없어 단조로움은 한층 더해 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팔각 옥개석은 낙수면(落水面)의 경사가 급하고 추녀끝 선이 두꺼워 다소 둔중해 보이긴 하지만, 지붕마루에 마련된 여덟 개의 융기선과 낙수면이 만들어 내고 있는 현저한 곡선으로 말미암아 경쾌함 또한 엿보인다.

    지붕 위 기둥모양의 상륜부는 앙련으로 대신하고 있는 복발(覆鉢)과 서로 연결되어 조각한 꼭대기의 보륜(寶輪)과 보주(寶珠)로 이루어져 있다.

    부도 앞쪽에 떨어져 자리하고 있는 석등은 사각형을 기본구조로 하여 하대석으로부터 굵직한 간석(竿石)·상대석·화사석[火舍石: 석등의 점등하는 부분]과 옥개석에 이르기까지 모두 네모꼴을 이루어 둔중해 보일 뿐만 아니라 딱딱한 느낌을 준다.

    이 석등의 특징은 기단부 갑석(甲石) 위아래 부분의 모서리를 모죽임하여 처리한 점과 2매의 판석을 세워 화사석을 만듦으로써 화창(火窓)이 앞뒤쪽으로만 두 개 뚫려 있는 점이라 하겠다.

    낙수면이 거의 직선을 이루어 지공선사부도와 대조를 보이고 있는 옥개석은 부도의 옥개석과 마찬가지로 네 곳의 내림마루에만 융기선을 마련했을 뿐이며, 꼭대기에는 연꽃봉오리 모양의 보주를 장식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경기도 시도유형문화재 제49호

    문화재명칭

    지공선사부도 및 석등(指空禪師浮屠─石燈)

    소재지

    경기도 양주시 회암사길 281(회암동) 회암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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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공선사부도 및 석등(指空禪師浮屠─石燈)

    ▼ 지공선사부도 및 석등

    ▼ 지공선사부도 및 석등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懶翁禪師浮屠─石燈)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승탑 및 석등. 승탑높이 3.5m,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0호. 천보산 기슭 동쪽의 지공선사승탑(指空禪師僧塔) 바로 윗쪽에 있다.

    이 승탑은 공민왕 때 왕사(王師)로 서역 인도의 지공선사를 따라 국법의 정맥(正脈)을 받아왔으며, 1376년 우왕의 명을 받들어 밀양 영원사(瑩原寺)로 가던 도중 여주 신륵사(神勒寺)에서 입적했던 나옹선사의 묘탑(墓塔)이다.

    승탑의 구조는 8각을 기본으로 하는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으로, 상·하대의 기단부(基壇部)와 탑신부(塔身部), 상륜부(相輪部)로 이루어져 있다.

    8각의 하대에 상대(上臺)는 배가 불러있는 고복형(鼓腹形)의 중석(中石)과 역시 8각을 이루고 있는 앙련(仰蓮)형태의 갑석(甲石)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탑신부는 공모양[球形]의 몸체에 8각 지붕을 하고 있다.

    비교적 단순한 형태의 옥개석은 각 모서리에 도드라진 융기선이 있을 뿐 별도의 장식은 보이지 않으며, 낙수면(落水面)의 경사는 완만한 편이다. 옥개석 위의 상륜은 거의 완벽한 형태로 두터운 상륜 받침에 복발(覆鉢) 없이 3개의 보륜(寶輪)과 보주(寶珠)를 함께 만들었다.

    전형적인 통일신라 팔각원당형 승탑 양식을 따르고는 있지만, 다소 경직되고 평면적인 면을 보여 주고 있어 고려시대 말기의 승탑 양식을 가늠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승탑 앞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석등 역시 승탑과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4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4각형 지대석(地臺石) 위에 4각의 하대석(下臺石)과 단조로운 4각 간석(竿石), 그리고 역시 4각형을 한 상대석(上臺石)으로 이루어진 기단에 2개의 화창(火窓)을 낸 화사석(火舍石: 석등의 점등하는 부분) 또한 4각형을 기초로 하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화사석이 하나의 돌로 되어 있지 않고 두 개의 직육면체로서 옥개석(屋蓋石)을 받들게 하고 있는 점이다. 4각 옥개석 위의 상륜은 석등과는 달리 단순하게 처리하였으나 맨 꼭대기에는 석등과 동일한 모양의 보주(寶珠)로 장식하였다.

    전반적으로 네모반듯하게 만들어 경직된 가운데 지붕의 추녀와 낙수면에 완만한 곡선을 두어, 직선과 곡선이 이루어 내고 있는 조화를 보여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경기도 시도유형문화재 제50호

    문화재명칭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懶翁禪師浮屠─石燈)

    소재지

    경기도 양주시 회암사길 281(회암동) 회암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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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암사

     

    ▼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懶翁禪師浮屠─石燈)

    ▼ 회암사지 박물관에 전시된 나옹선사 상

    ▼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

    ▼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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