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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광주]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 묘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9. 5. 13. 09:00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
남종면 삼성리 용마산 아래에 노물재, 안망지, 권진 묘가 있다고 해서 삼정마을로 불리던 곳인데 그동안은 있는 줄도 몰랐다가 얼마전 알고 찾아 나섰다. 노물재, 안망지 선생은 평지에 있어 쉽게 갈 수 있지만 권진 선생 묘는 가파른 능선을 올라야 겨우 닿을 수 있다.
나중에 내려올 때 보니 반대쪽 신도비 있는 쪽으로 오르면 완만하게 오를 수 있는 것을 괜스레 고생을 했다. 이곳은 아마도 당대의 어떤 풍수지사가 안내를 한듯 하다. 거의 천혈에 가까운 곳이고 멀리 사격이 겹겹이 보이는 것이 마치 시조 묘 처럼 보인다. 이런 곳은 후대에서 많은 후손들이 번창하고 인물도 나온다고 여겨지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조선조 초기 인물인데 지금도 묘역 아래에 문경사라는 사당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는 것으로 봐서 후손들이 번창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
조선전기 찬성, 이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독수와(獨樹窩). 아버지는 감찰규정(監察糾正) 권희정(權希正)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해 1377년(우왕 3) 21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해 촉망을 받았다. 당시 권세가인 염흥방(廉興邦)이 자기의 조카딸과 혼사를 맺고자 했으나, 권세가와 혼인하기를 거절해 염흥방의 미움을 사 여러 해 동안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였다.
그 뒤 연해안 지방에 왜구의 노략질이 심하자 의창현령이 되어 민심을 안정시키고 폐단을 제거해 선정을 펴니, 당시 시중(侍中)이었던 이성계(李成桂)가 발탁해 전주판관으로 삼았다.
1398년(태조 7) 성석린(成石璘)이 평안도로 나가 민심을 수습할 때 특별히 천거해 경력(經歷)으로 삼았으며, 정종이 즉위하자 문하부 직문하(直門下)를 거쳐 지합주사(知陜州事)가 되었다. 1400년 조박(趙璞)의 옥사에 연루되어 영해 축산도(丑山島)로 귀양갔다가 얼마 안되어 돌아왔다.
이듬해 태종이 등극하자 지형조사(知刑曹事)에 이어 우사간대부(右司諫大夫)를 지내고, 1406년(태종 6) 강원도관찰사에 부임해 선정을 폈다.
청렴함이 알려져 이듬해 대사헌에 발탁되었으며, 관의 기강을 확립하는 데 힘썼다. 그 뒤 경상도관찰사에 이어 1413년 충주목사를 지내고, 다시 내직으로 돌아와 1417년 형조·호조·이조 판서를 지냈다.
1426년(세종 8) 찬성(贊成)이 되었으며, 1430년에 이조판서를 거쳐 1431년 우의정에 올랐다. 그러나 형률을 잘못 적용해 백성 10여 명이 강도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었다는 대간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433년에는 겸판이조사(兼判吏曹事) 재직 때 사람을 잘못 천거했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세종 때 정인지(鄭麟趾) 등과 함께 목조(穆祖)부터 태종이 세자로 있을 때까지의 사적을 서술했으며, 의례상정소(儀禮詳定所)의 제조(提調)가 되어 악률(樂律)을 만드는 데도 참여하였다.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
소재지
경기 광주시 남종면 삼성리 산 42
관리자(연락처)
안동권씨
▼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 신도비
▼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 신도비
▼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 묘를 처음 찾는 사람들은 이곳으로 오르게 된다. 그런데 내려오면서 보니 그 옆 신도비 있는 곳으로 가면 더 쉽게 오를 수 있다.
▼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 묘 오르는 길은 너무 가파르다. 누군가 잡고 오르도록 로프를 걸어놨다.
▼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 묘역은 넓어서 한 화면에 안들어가서 파노라마로 찍었다.
▼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 묘 근경
▼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 묘... 이런 높은 곳에 묘를 쓴 것은 당대의 권세가들에게 풍수지사들이 추천을 했으리라...
▼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 묘 석물들은 최근에 한 것이다.
▼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 묘 장명등과 구 묘비
▼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 묘비
▼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 묘 석물
▼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 묘 입수도두
▼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 묘 후경
▼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 묘 후경... 사격을 보고 시조 묘 처럼 후손들이 널리 퍼지라고 쓴 듯 하다. 빈 몸으로 이곳에 오르는데 숨이 턱까지 찼는데... 당시에 이 묘 하나를 쓰기 위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생각해 본다.
▼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 묘 측경...
▼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 묘는 반대쪽으로 오르면 좀 더 편안하게 오를 수 있다.
▼ 묘를 답사하고 내려오면서 본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 신도비
▼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 묘 위성사진에 표기하였으니 뒤에 오르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 묘역에 있는 문경사... 처음에는 절인줄 알았는데 아마도 문경공의 사당인듯...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 묘를 오르려면 문경사에서 소로를 찾아 올라야 한다.
▼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 신도비 뒤로 완만하게 오르는 소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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