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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장흥]장흥 보림사(長興 寶林寺)
    답사는 즐거워/문화재답사 2019. 7. 6. 22:41


    장흥 보림사(長興 寶林寺)


    장흥 보림사는 예전에 이곳이 고향인 친구가 하도 자랑을 많이 해서 한번 꼭 가보자고 여러번 다짐을 했는데 그때마다 길이 어긋나 장흥을 가면서도 들르지 못한 곳이다. 그래서 이번에 남도로 여행길을 잡으면서 보림사를 경유하는 코스로 잡아 결국 방문하게 되었다. 시간이 많이 주어지지 않아 부리나케 사진 위주로 돌다보니 그 깊은 문화재적 느낌은 고사하고 놓치는게 없도록 하기위해 동분서주하며 겨우겨우 시간을 맞췄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돌아보았다고 말하기는 어불성설이고 겨우 어디에 어떤 형태로 가람이 자리잡았나 하는 정도만 눈짐작으로 확인하고 돌아왔다. 패키지 상품으로 돌아오는 여행은 항상 부족함을 안고 다니는 여행이다. 그러려니 하면서도 그래도 아쉽다.

    동부도, 서부도가 절 밖에 있는데 동부도는 비교적 가까워 나혼자 욕먹을 각오하고 열심히 뛰어가서 사진을 담아왔지만 서부도는 결국 가지 못했다. 하나정도는 남겨놔야 다음에 또 올 명분이 생기니 만족하고 돌아섰다.

    보림사는 산세가 마치 연꽃이 빙두른듯 가람을 둘러싸고 있고 앞쪽으로는 탐진천이 환포하며 둥글게 감고 돌고 있어 연화부수형의 천하 명당터에 위치해 있다. 한번 더 와서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 곳이다.


     

    장흥 보림사(長興 寶林寺)


    신라 선문구산(禪門九山) 중에서 제일 먼저 개산(開山)한 가지산파(迦智山派)의 중심 사찰이었으며,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이 절은 가지산파의 법맥을 이어받은 체징(體澄)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신라 헌안왕의 권유로 체징은 이 산에 들어와 터를 잡고, 860년에 대찰을 창건하여 가지산파의 중심사찰로 발전시켰다.

    그 뒤 끊임없는 중창과 중수를 거쳐 6·25전쟁 때 소실되기 전까지는 20여 동의 전각을 갖춘 대찰이었다. 그러나 공비들이 소굴로 이용하였던 이 절에다 도주하기 전에 불을 놓아 대웅전 등 대부분의 건물들이 불타고, 단지 천왕문(天王門)과 사천왕(四天王)·외호문(外護門)만 남았다.

    불타버린 대웅전은 서쪽을 향하여 세운 정면 5칸, 측면 4칸, 중층팔작(重層八作)지붕의 큰 건물이었다.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2층까지 통해서 한 방으로 만들고, 중앙 단상에는 금동석가여래상과 양협시불을 안치하였는데, 구조양식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중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우수한 수법이다. 이후 주민들은 대적광전을 다시 지어 대웅전에 있었던 비로자나불을 모셨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적광전과 천왕문·영각(影閣)·요사채 등이 있다. 사천왕문 안에 봉안된 사천왕상은 1780년(정조 4)에 조성된 국내 목각상의 대표적인 것으로, 최근 중수하여 옛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였으나, 복장 속의 비장품은 도굴꾼들에 의하여 망가진 상태로 방치되었다. 현재 사천왕문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국보 제44호인 보림사삼층석탑 및 석등, 국보 제117호인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제155호인 보림사동부도(寶林寺東浮屠), 보물 제156호인 보림사서부도(寶林寺西浮屠), 보물 제157호인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寶林寺普照禪師彰聖塔), 보물 제158호인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비 등이 있다.

    삼층석탑은 남쪽 석탑이 높이 5.4m, 북쪽 석탑이 5.9m이며, 석등은 높이 3m로서 이들은 모두 870년(경문왕 10)에 건립되었다. 비로자나불좌상은 858년(헌안왕 2)에 김언경(金彦卿)이 자신의 봉급을 모아 조성한 불상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長興寶林寺鐵造毘盧遮那佛坐像, 국보 제117호)


    국보 제117호. 높이 273㎝. 지금은 광배(光背)와 대좌를 모두 잃어버리고 불신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 불상은 왼쪽 어깨 부분에 8행의 불상 조상기가 음각되어 있다. 명문에는 858년(헌안왕 2) 7월 17일에 당시 무주(武州)와 장사(長沙: 지금의 장흥)의 부관(副官)으로 있던 김수종(金遂宗)이 발원하여 이 불상을 주성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보조선사탑비(普照禪師塔碑)에는 859년 부수(副守) 김언경(金彦卿)이 사재를 들여 2,500근의 노사나불(盧舍那佛)을 주성하였다고 한다. 위의 두 기록을 종합해보면, 이 불상은 858년에 착수되어 859년에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장흥 보림사 남·북 삼층석탑 및 석등(長興寶林寺南·北三層石塔─石燈, 국보 제44호)


    현재 보림사 앞뜰의 원위치에 남북으로 대립하여 구조와 규모가 같은 2기의 삼층석탑이 서 있고 그 사이에 석등이 1기 남아 있다. 보림사는 헌안왕의 명으로 보조국사(普照國師) 체징(體澄 ; 804∼880)이 헌안왕 4년(860)에 창건한 사찰이다. 보조선사는 도의(道義)와 염거화상(廉居和尙)의 법맥을 이어 보림사에서 가지산문(迦智山門)을 개창하였다.

    1934년 가을 해체 복원할 때 초층탑신 상면 중앙의 사리공(舍利孔)에서 사리합(舍利盒)·자기류(磁器類)·목판(木版)·비단·사리·구슬 등의 사리장엄구와 함께 탑지(塔誌)가 발견되어, 탑의 조성연대 및 중건사실이 밝혀졌다. 탑지에 의하면, 이 탑은 870년 경문왕이 선왕인 헌안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건립한 원탑(願塔)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891년(진성여왕5)에 사리 7매가 봉안되었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1478·1535·1684년 등 세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음이 확인되었다. 1962년 국보 제44호로 지정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국보44호, 국보117호

    문화재명칭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장흥 보림사 남·북 삼층석탑 및 석등

    소재지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45 

    관리자(연락처)

    대한불교 조계종

     

    ▼가지산 보림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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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지산 보림사 사천왕문에는 보물로 지정된 목조사천왕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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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림사 남북삼층석탑 

    ▼보림사 석등 

    ▼보림사 남북삼층석탑 및 석등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 좌상... 

    ▼보림사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

    ▼보림사 대웅전과 종루...

    ▼보림사 대웅보전...

    ▼보림사 명부전... 용마루 모습이 매우 특이하다.

    ▼보림사 보조선사창성탑비 안내판...

    ▼보림사 보조선사창성탑비 

    ▼보림사 보조선사창성탑비 귀부

    ▼보림사 보조선사탑 안내판... 

    ▼보림사 보조선사탑

    ▼보림사 보조선사탑 옆에 있는 목없는 불상...

    ▼보림사 보조선사탑에서 바라본 보림사 경내...

    ▼보림사 미타전...

    ▼보림사 미타전에 모셔진 장흥 전의상암지 석불입상 안내판...

    ▼보림사 미타전에 모셔진 장흥 전의상암지 석불입상

    ▼보림사 조사전...

    ▼보림사 조사전에 모셔진 조사들의 진영....

    ▼보림사 삼성각...

    ▼보림사 성보박물관...

    ▼보림사 성보박물관은 현재 유물을 대여 중이어서 문이 닫혀있다.

    ▼보림사 동부도 전경...

    ▼보림사 동부도 안내판...

    ▼보림사 동부도...

    ▼보림사 동부도 전경...

    ▼보림사 서부도...

    ▼보림사 서부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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