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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포천]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 김종숙(金宗淑) 묘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20. 1. 28. 12:31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 김종숙(金宗淑) 묘


    양주,포천답사를 후배와 함께 경자년 설 연휴를 이용하여 다녀왔다. 많고 많은 날 중에 막상 답사를 하려고 하면 여러가지 장애들이 발생하여 답사를 취소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날이 서로 맞아 설 연휴에 진행했다.

    양주 묘지답사를 마치고 포천으로 돌아서 귀경을 하면서 마지막에 들른 묘소가 상락부원군 김종숙 묘다. 김종숙은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세조 때 좌의정을 한 김질의 부친이다. 김질은 사육신을 고변해서 변절자로 더 알려진 인물이다. 이 집안을 살펴보면 김종숙은 김사형의 손자이고 영의정 김수동의 조부이다.

    아마도 사패지처럼 보이는 산의 아랫 부분은 다른 사람들 차지가 되었고 산을 오르는 길은 오른쪽 끝에 재실이 있는 곳이다. 재실까지 가서 차를 주차한 후 그 옆길을 통해 묘소로 올라야 한다.

    이곳은 멋진 안산이 바짝 다가와 있어서 이것을 보고 잡은 듯 보인다. 이렇게 안산이 바짝 다가와 있으면 발복이 빠르게 이루어 진다고 보는데 주로 재물복이다. 지금까지도 안산이 망가지지 않고 잘 보존 되는 것도 운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길 보다는 흉이 더 많아지는 것이 이런 입지다. 

    김종숙 묘 아래에는 4남 김무 묘가 위치해 있다. 안산이 높고 가까워서 아들 묘 보다는 김종숙 묘가 정혈처로 보인다.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 김종숙(金宗淑)


    상락부원군 김종숙[上洛府院君 金宗淑, 정종 2년(1400)~성종 1년(1470)]

    본관은 안동, 자는 동추(同樞). 증조는 상락군 영삼사사 김천(金蕆), 조부는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된 익원공 좌정승 낙포 김사형(金士衡), 아버지는 동지밀직사사 김승(金陞)이며, 어머니는 광산 김씨로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김정의 딸이고,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김약채, 청백리로 녹선된 성균관 대사성 문온공 척약재 김약항, 두문동 72현 중 한 명인 충정공 김약시와 동기간이다.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김종숙은 어려서 부친과 형들의 가르침 아래 학문을 닦았으며 음보로 관직에 나갔으나, 사헌부 감찰로 있던 1429년(세종 11)에는 환곡을 부정하게 받아갔다는 이유로 파직된 기사가 나온다. 또 1450년(문종 1)에는 양산 군사로 문종을 인견하였고, 1457년(세조 3)에는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使-중추원의 정3품 당상관)에 올랐고, 1470년(성종 1)에는 70세 이상으로 고기를 먹이게 할 만한 대신들의 이름에 김종숙 선생이 올랐다. 하지만 그 해 70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으니, 부음을 들은 성종이 쌀·콩 아울러 30석, 종이 1백권, 석회 40석, 송지(松脂-송진) 3두, 유둔(油芚-비 올 때 쓰기 위하여 이어 붙인 두꺼운 기름종이) 3장을 내려 주었다. 이는 그의 아들 상락부원군 김질 때문에 특별히 내려 주는 것이라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그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후손들이 세운 묘비에 의하면 약관의 나이에 이미 학문에 능통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하였고, 형제들과 함께 포천으로 이거한 후에는 향리의 풍속을 순화하는 데 일조하였다고 적혀 있다.

    동추공은 아내 경주 이씨와 4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단종 복위를 꾀하던 사육신을 고변하였고, 후에 좌리공신 2등에 책록되어 의정부 좌의정에 오른 문정공 쌍곡 김질(金礩)이고, 차남은 형조판서 효소공 상곡 김작(金碏), 3남은 여주목사 영가부원군 김적(金磧), 4남은 청백리에 녹선되고 정국공신 4등에 책록된 공조판서 풍양군 김무(金碔)이다. 딸은 성균관사성 홍의달(洪義達)에게 출가하였다. 또한 여주목사를 지낸 김의동, 정국공신 2등에 책록되고 의정부 영의정을 지낸 문경공 만보당 김수동, 정국공신 3등에 책록되고 이천부사를 지낸 양한재 김수경, 부평부사를 지낸 김성동은 김종숙의 손자들이다.

    벼슬은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고, 아들과 손자의 공훈으로 증 영의정, 상락부원군에 추증되었다. 신도비에는 “증 영의정 상락부원군, 안동 김공 종숙 지묘, 정경부인 경주 이씨 부좌”라 기록되어 있다. 묘소는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내리 산12-1 막내아들 풍양군 김 무 묘소 위에 있다.


    풍양군(豊陽君) 김무(金碔)


    공조판서 풍양군 김무[豊陽君 金碔, 세종 23년(1441) ~ ? ]

    동지중추부사 김종숙의 4남 1녀 중 막내며, 자는 미보(美甫). 음보로 조정에 나가 예종 1년(1468) 사헌부 집의, 성종 6년(1475) 궁궐 수리 도감 낭청, 성종 8년(1477) 춘천부사, 성종 14년(1483) 예빈시 부정, 성종 21년(1490) 통정 대부 우부승지와 공조 참의, 성종 24년(1493) 통정 대부 형조 참의와 가선 대부 강원도 관찰사가 되었다. 하지만 이때 대관들이 반대하기를 김무는 성품이 용렬하고 잘았으며 굽신거리며 웃는 낯으로 아첨하였다. 처음에 음보로 조정의 반열에 낄 수 있었는데, 그 형 효소공 김 작의 딸이 성종의 후궁인 명빈(明嬪) 김씨가 되자, 저절로 고관이 되어 승지가 되고, 다시 참의가 되었다가, 가선 대부가 더해져 관찰사가 되었다고 반대하였으나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연산군 1년(1495)에 동지중추부사로 황제의 탄신을 하례하게 하였고, 조카인 문경공 김수동(金壽童), 영안군 김수경(金壽卿)과 함께 1506년 중종반정에 참여한 공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연산군을 폐위하고 중종을 추대하는 데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린 칭호) 4등에 책록되어 자헌 대부의 품계로 승차하였으며, 이후 관직은 지중추부사, 공조판서에까지 올랐고 풍양군(豊陽君)에 봉해졌다. 사후 중종 14년(1519년) 조광조와 사림파들이 정국공신 중 공이 없음에도 부당하게 공신에 책록된 인사들에 대한 작호를 삭제하는 과정에서 위훈이 삭제되었지만, 청렴하게 관직생활을 하여 청백리에 녹선될 정도로 자신을 절제하며 검소하게 살았다.

    부인은 사직 홍의화의 딸인 남양 홍씨로 8남 1녀를 두었다. 장남은 참의를 지낸 김인석, 차남은 군수를 지낸 김의석, 3남은 김예석, 4남은 통덕랑 김원석, 5남은 김지석, 6남은 김형석 7남은 김이석, 막내는 김정석이며 춘천부사를 지낸 정종보는 사위이다. 

    <포천소식 신문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 김종숙(金宗淑) 묘

    소재지

    경기 포천시 내촌면 내리 산 12-1(재실: 내촌면 내리 113-4)

    관리자(연락처)

    안동김씨동추공파 종중

     

    ▼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 김종숙(金宗淑) 묘 전

    ▼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 김종숙(金宗淑) 묘 

    ▼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 김종숙(金宗淑) 묘비

    ▼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 김종숙(金宗淑) 묘 청룡쪽 석물

    ▼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 김종숙(金宗淑) 묘 구 묘비가 잘 보존되어 있다.

    ▼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 김종숙(金宗淑) 묘 문인석.

    ▼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 김종숙(金宗淑) 묘 아래에는 특이하게 문인석 한쌍이 있다.

    ▼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 김종숙(金宗淑) 묘 측경

    ▼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 김종숙(金宗淑) 묘 입수도두... 상당히 급하게 내려온다.

    ▼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 김종숙(金宗淑) 묘 후경... 안산이 멋지고 가까워 초반에 발복이 있었겠지만 후에는 길보다는 흉이 더 많은 형태다.


    ▼ 김종숙(金宗淑) 묘 아래에는 4남 풍양군(豊陽君) 김무(金碔) 묘가 있다. 

    ▼ 풍양군(豊陽君) 김무(金碔) 묘. 

    ▼ 풍양군(豊陽君) 김무(金碔) 묘. 

    ▼ 풍양군(豊陽君) 김무(金碔) 묘 석물.. 청룡쪽 문인석이 깊게 박혀있다.

    ▼ 풍양군(豊陽君) 김무(金碔) 묘 후경

    ▼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 김종숙(金宗淑) 재실 구경재 삼문... 

    ▼ 구경재 

    ▼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 김종숙(金宗淑) 묘는 주금산하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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