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선운사는
화려함과 생명력이 공존하고 있었다.
아무런 목적이 없어도
그져 넘쳐나는 생명들을 찾아
발길을 옮기고픈 멋진 산사.....
마음에 맞는 벗이라도 동행한다면
천하를 얻는 기분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스스로 자위하게 만드는 곳이다.
입구에서부터 벛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1년중 운이 좋아야지만 볼수있는 동백꽃이 만개하여
흥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동백은 열정을 뽐내며 절정에 이르렀고
가장 멋드러진 마지막 징표,
통째로 떨어지는 꽃송이들이 지천에 널려
하늘과 땅을 영속성으로 이어주고
쉼없이 아낌없이 제 한몸을 던져
객들에게 선운사의 봄의 운치를 알려주고 있다.
선운사에는 백파선사 기념비가 서있는데
추사의 글씨로 유명하다.
백파선사와 대둔사 초의선사의 선논쟁에
추사가 끼어들어 백파를 사정없이 몰아세웠는데
그런 추사가 백파선사의 입적을 두고
기념비문을 썼으니 참으로 많은 생각을
갖게하고 있다.
선운사에는 보물들과 천연기념물이 많다.
우선은 천연기념물만 살펴보면
입구에 있는 송악은 367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내륙에 있는 나무중 가장 북단에 있단다.
잘 알려진 동백림은 184호로 지정되어 있고
수령 500여년의 동백나무 3000여주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개화시기는 4월중순인데 올해는 지금이 절정이다.
도솔암 가는길에 진흥굴이 있는데
그 앞에 멋드러진 소나무 한그루가 바로 장사송이다.
천연기념물 35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수령은 약 600여년이 된단다.
선운사 앞은 몇백년은 됐음직한 고목이 빼곡한데
다른 곳과는 달리 그 곁을 지날때면 조금은 위축되고
옷깃을 매만지게 되는 곳이다.
봄이 깊어감에
나무마다 경주하듯 앞 다투어
잎새를 들어내고 있는 꼴이
성질 급한 인간의 모습을 닮았다고 본다면
선운사 앞 고목은 생에 초연한 고승의 모습처럼
봄을 맞이하는 자세에서도 확연이 드러난다.
결코 서두르거나 경솔하지 않고
쉽게 마음을 드러내는 경망스러움도 없다.
그러고 보니 선운사의 봄 물오르는 소리는
그 고목에서 잠시 멈춰 서버린듯 하다.
성질 급한 사람은 느낄수도 바라볼수도 없는
고목의 물오르는 소리!!!
가지마다 꽉찬 봄기운을 머금고
금새라도 세상보기를 할것만 같은데
뭐가 아쉬운지 아직도 몽오리만 보이고
그 아름다운 신록의 연출은 보류하고 있다.
다른 나무들은 벌써 꽃도 피고
잎새도 피웠더니만
고목의 마음은 아직도 멀었다는 양
그져 느긋이 봄기운을 받고 서있을 뿐이다.
선운사 동백을 보려다 몇번이고
헛탕을 친 경험이 있는 나로선
이 고목의 물오름을 보기위해선 또 얼마만의
헛걸음이 필요할 건가 새삼 걱정이 앞선다.
선운사 도솔암에 오르는 길은 평탄하면서
가족단위로 움직이기 아주 좋은 곳이다.
그러다가 도솔암에서 낙조대로 오를라치면
갑자기 가파른 계단이 쉼없이 이어져
보통 각오없이는 엄두가 나지않는다.
도솔산이 지척에 있었건만
창피하게도 한번도 오르지 못했으니
누구에게 도솔산선운사에 대해 말할수 있으랴...
어제도 동행한 후배님 시간관계상
또 지나칠 위기가 있었으나
나의 간절한 바램이 이를 성사시켰으니
이것도 행운임엔 틀림없겠지....???
낙조대에 이르니 바람이 참으로 맛있다.
비록 황사가 불어 그 청량감이 다소 떨어졌다지만
내겐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고향 뚝배기 같은 아주 맛이 있는 바람이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고향의 산세와
멀리 황해바다는
내게 흐릿한 어릴적 추억을 되새김 해주고,
나와 부대끼며 어린시절을 보냈던
내 주위 많은 분들이
주마등으로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비록 낙조의 멋들어진 맛까지
다 갖진 못했지만
그곳에 서 있다는 자체가
내겐 큰 의미로 다가왔다.
이번 고향 방문에서 큰 수확 하나를 거둔셈이다.
낙조대에 오래 있지 못하고
곧바로 오던길로 내려오려니
아쉬움도 많이 남고 다리도 유난히 휘청인다.
도솔산처럼 평지로 이어지다
갑자기 급경사를 만나
힘들게 오르는 산이 있는 반면
처음부터 급경사로 시작하다가
점점 평탄한 길을 가게되는 산도 있다.
어느 쪽이든 한번은
급경사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인생살이도 이와 흡사한 경우가 많다.
동행한 후배에게 인생살이의
두가지 측면을 말해주면서
우리는 어느쪽 인생을 살고있는가 자문해본다.
도솔암 옆에 고려시대에 세웠다는
마애불상이 있는데 약 40미터의 깎아지른
절벽위에 새긴 장대한 암각여래상이다.
이 암각여래상의 배꼽부분에 부처님을 봉안할때 복장하는
감실이 있는데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곳에 신기한 비결이 들어있어서 그 비결이 나오는날
한양이 망한다는 유언비어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한다.
여러사람이 그 비결을 손에 넣으려다 실패하고
갑오농민전쟁에 이르러 당시 손화중이란 사람이
그 비결을 손에 넣고 어디론가 가지고 가버렸다한다.
아직도 그 감실이 부처님 배꼽(정확히는 명치)에
색이 다르게 부조화로 있는것을 보니
후세인들의 욕심이 부처님 마져도
가만 놔두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시간에 쫒기는 인생은 참으로 고달프다.
우리가 잊고 지내는 사이
시간은 어느새 우리 생의 한복판을 점거해 버렸다.
시간에 의해 조종되고
시간따라 나의 행동이 바뀌어지는 것이다.
요 몇달 시간을 극복하고
시간을 이겨볼려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좀체 그 녀석을 이기기란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여유있게 생각한다지만
상대방이 시간에 쫒기면
또한 그를 따를 수 밖에 없음이니
시간을 내가 이기기란
아예 맘을 먹지 않는게 나으리라.......
동행한 후배 덕에 풍천장어와
복분자의 향에 취해 꿈길을 헤매이다
일상으로 돌아왔다.
오던길은 나의 애마가 투정을 부려 힘들게 왔지만
푸르른 4월의 선운사 답사는
내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준것만은 확실하다.
근데 황사는 누가 뿌린겨...?????
출처 : 불혹전후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