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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자연풍수지리 33 차 간산 및 시산제 안내(2011년 3월 26일 원주지역)풍수이야기/풍수간산기 2011. 3. 25. 23:49
이번 33차 간산은 백두대간에서 분맥된 한강기맥(漢江岐脈)이 남서쪽으로 행도(行度)하다가 우뚝 솟구친 치악산(雉岳山)자락이 일군 국형사(國亨寺) 경내에 소재한 동악단(東岳壇)에서 2011년 우리연구소의 시산제(始山祭)를 거행할 예정입니다.
순진무구(純眞無垢)한 우리나라의 산천(山川)에는 지금도 진혈대지(眞穴大地)가 많이 남아 적선유덕(積善有德)하고 효성(孝誠)이 지극한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맑은 마음, 밝은 눈, 지극한 정성으로 구산(求山)하면 반드시 참된 대지대혈(大地大穴)을 얻을 수가 있지만 아무런 적덕(積德)이나 공덕(功德)이 없는 사람이 허황되이 욕심을 채우려 한다면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것이 터가 지닌 영성(靈性)입니다.
사자소학(四字小學)에 '積善之家 必有餘慶' '不善之家 必有餘殃' 라 하여, 선행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경사스러운 일이 있지만, 선행을 쌓지 않은 집안은 반드시 재앙이 따른다고 하였듯이 하늘은 적선(積善)을 쌓은 사람을 결코 버리는 법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풍수에서 하늘이 감추고 땅이 비밀스럽게 숨겨 놓은 천장지비(天藏地秘)의 대혈(大穴)도 반드시 선행(善行)과 적덕을 쌓아야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진리와도 관계가 있습니다.우리나라 속담에‘방안풍수’와‘작대기 풍수’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만 권 서적에 막힘 없이 논리적인 풍수 법리를 터득했어도 막상 산에 오르거나, 용사를 할라치면 눈앞이 깜깜해지고 손발이 떨리는 지사를 방안풍수라 합니다. 풍수사란 논리가 정연하고, 법리에 능통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사(先師)들과 동행하여 여러 현장과 산야를 찾아다니면서 목력(目力)을 쌓고 터득하는 것이 개안(開眼)의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론은 박식하더라도 산안(山眼)이 밝지 못한 지사를‘방안풍수’라 하는 것입니다.
또 역마살 끼가 발동하여 전국의 산야를 발이 닿도록 쫓다 보니, 나름대로 산을 보는 안목은 열렸지만 막상 실전에 임했을 때 응용할 법리(法理)를 몰라 우왕좌왕(右往左往)하는 풍수사를‘작대기풍수’라고 합니다. 그래서 명풍수가 되는 지름길은 많은 이론을 섭렵하고, 선사들과 동행하여 산야를 주유(周遊)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번 33차 간산과 2011년 시산제에 회원님들의 많은 참여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시산제가 예정된 치악산하 동악단 및 운곡 원천석 용맥도
1. 일시 : 2011년 3월 26일(토요일) 오전 09: 30 (지방에서 참여하는 분들의 편의를 위해 최대한 시간을 늦추었습니다)2. 집결지
▶ 서울 : 양재동 서초구청 맞은편(수협은행 앞)
- 지하철 3호선 양재역에서 하차하여 1번 출구로 나와 50m 정도 걸어오시면 수협은행 앞 도로에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공휴일에는 서초구민회관 주차장을 무료이용 하실 수 있습니다.(그러나 서초구청에서 수시로 행사를 개최하는 실정이니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 출발 및 경유지 예정시간:
양재역(서초구청 맞은편 수협은행 앞, 09:30분 출발) → 죽전 임시정류소(09:50) → 수원인터체인지(영동방향) → 남원주 IC(11:40) → 원주시 행구동(국형사, 동악단 시산제 장소) → 원주시 행구동(운곡 원천석 묘소) → 원주시 지정면 간현3리(원충갑 장군 음택) → 원주시 지정면 간현3리(이기 묘소) → 석식(지정면 간현리)※ 다른 장소에서 합류를 희망하실 분은 김명식 고문(019-212-3494), 정철화 간산분과위원장(011-745-2357)에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3. 답사 안내 : 김명식 고문, 정철화 간산분과위원장
4. 2011년 시산제 및 간산 안내(간산은 현지사정에 따라 장소와 순서가 바뀔 수 있습니다)
1) 시산제(始山祭) <원주시 행구동 98번지>
산을 관장하고, 산을 수호(守護)하는 신을 산신령(山神靈)이라 한다. 자연계는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간에 영혼이 존재하고, 생성(生成)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원시신앙의 애니미즘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산신의 신체(神體)로, 호랑이와 동자를 대동하는 신선상(神仙像)으로 나타난다. 산신에게 축원(祝願)하는 일을 산신제, 또는 산제(山祭)라 하며, 요즈음에는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정성껏 제수를 마련하여 산신에게 제를 지내는 것이 일반화되었는데, 보통‘시산제’라 칭하기도 한다. 이번 우리 연구소 시산제는 원주시 행구동에 소재한 동악단(東岳壇)에서 가급적 전통적 방식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동악(東岳)은 조선의 오악(五岳)가운데, 치악산 천년송림이 울창한 국형사(國亨寺) 경내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 절은 신라 경순왕 때, 무착대사가 창건하여 고문암(古文庵)으로 불렀다고 한다.
조선 태조(이성계)는 이곳에 동악신(東岳神)을 봉안하고 동악단을 쌓았으며 해마다 봄, 가을이면 원주, 횡성, 영월, 평창, 정선 고을의 수령들이 모여 산제를 올렸다고 한다. 이로 인해 고문암은‘나라의 만사형통을 기원한다’는 의미로 '국형사' 가 된 것이다.
오악은 국풍(國風)인 무악대사가 계룡산에 머물 때, 산신을 현몽한 뒤 태조에게 진언하여 오악단을 세웠다고 한다. 중악은 계룡산 신원사에 세워졌으며, 서악은 황해도 구월산, 남악은 지리산에, 북악은 묘향산에, 동악은 치악산 국형사에 세워졌으니, 풍수적 천혜의 위치에 국형사의 도량이 세삼 주목받는 셈이다. 한편 산신각의 좌향이 을좌신향(乙坐辛向)을 놓아 한양을 응시하는 형세를 이룬 것도 특이하다.
지금도 원주시를 포함한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국태민안과 함께, 주민들의 안녕을 고하는 산제 등을 올리는 유서 깊은 곳으로, 우리 연구소에서도 회원들의 행운과 건강을 치악산의 동악신에게 기원하며, 정성을 다해 제를 올릴 예정이다.동악단 용맥도 국형사 경내의 동악단 전경 치악산 연맥에서 탱글탱글한 소원봉이 연주체로 떨어지는 국형사 전경
행구동 산 37번지에 소재한 운곡의 묘소는 친구였던 세 살 터울 위인 무학대사가 소점 해주었다고 전한다. 당시 무학대사가 두 개의 자리를 놓고 집안에 벼슬과 부귀를 안겨주는 자리와, 만대자손(萬代子孫)에게 평화를 주는 자리 중에서 택하라고 하자 운곡이 후자를 택해 지금의 자리로 정해졌는데, 지금도 원씨 문중은 크게 흔들리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곳 묘소는 1971년에 봉분의 일부가 도굴 당했으나 내광이 석관(石棺)이 되어, 관내(棺內)까지는 파지 못했다고 한다.
선생의 본관은 원주이며, 자(字)는 자정(子正)이고 호는 운곡(耘谷)이다. 1330년(고려 충숙왕 13)에 종부시령의 작은 벼슬아치였던 부친인 윤적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글 잘 짓기로 유명한 선생은 국자진사(國子進士)를 지냈으며, 조선 3대왕 태종의 스승이기도 하다. 고려가 망하자 강원도 원주의 치악산에 숨어살면서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조선 건국 초기에 선비들이 변절하던 시절에 고려조에 대한 절의를 끝까지 지켰다.
운곡은 생전에 시 1,144수를 남겼는데「회고가」중, 일부이다.
흥망(興亡)이 유수(有數)하니 만월대(滿月臺)도 추초(秋草)로다.
오백 년(五百年) 왕업이 목적(牧笛)에 부쳤으니
석양(夕陽)에 지나는 객(客)이 눈물겨워 하노라.
태종은 왕이 되자 세 번이나 치악산으로 찾아가 스승을 뵙고자하였으나 몸을 숨기고 만나주지 않았다. 치악산 태종대는 그 때 태종이 원천석을 기다리며 잠시 쉬어가던 곳이라고 한다.
태종이 그를 찾아간 것은 스승에 대한 예우를 생각한 면도 있었지만 뛰어난 학자를 새 왕조에 받아들임으로써 명분을 얻어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한 수단도 있었다.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 태종은 원천석의 아들 원형을 현감으로 등용하여 다소나마 위안으로 삼았다.
무학대사가 점지한 이곳 음택을 두고, 풍수인들 사이에 혈적(穴的) 여부에 대해 설왕설래(說往說來), 논쟁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우리연구소에서는 이번 기회에 선생의 묘소에서 봉요혈의 진위(眞僞)여부를 확실히 밝히고자 한다.
을입수(乙入首)에 정침(正針)은 진좌술향(辰坐戌向), 봉침(縫針)은 을좌신향(乙坐辛向)으로 격침(格針)되고, 묘소아래 분수척(分水脊)에서 양파(兩破)되는 수구(水口)는 좌수(左水)는 경파(庚破), 우수(右水)는 해파(亥破)로 갈무리 된다.무학대사가 점지한 운곡 원천석 묘소 용맥도 및 호종맥 과연 무학대사가 소점한 봉요혈인가?
원충갑[1250년(고종 37)∼1321년(충숙왕 8)]의 시호는 충숙(忠肅)이고,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향공진사로 원주의 별초(別抄)에 있을 때인 1291년(충렬왕 17)에 몽고의 합단적(哈丹賊)이 침입하여 원주 치악성을 포위하자 전후 10차에 걸쳐 적을 크게 무찔러 후세에까지 이름을 날렸다.
원충갑의 이러한 공로로 원주를 익흥도호부(益興都護部)로, 다시 1308년에 원주목으로 승격되었고, 원주에 부과되던 각종 부역과 잡공이 3년 간 면제되기도 하였다.
원충갑은 중랑장·장군 등 여러 벼슬을 거쳐 삼사우윤에 올랐다. 당시 간신 오기(吳祈)가 충렬왕 부자를 이간하고 어진 신하를 모해하는 바가 많았기 때문에 원나라 사신인 단사관(斷事官) 티므르부카(帖木兒不花)에게 그의 처벌을 호소하였다.
1303년 홍자번(洪子藩)과 함께 오기를 잡아 원나라에 압송하였으며, 충선왕 때 응양군상호군이 되었다. 합단적을 물리친 공으로 충숙왕 6년(1319) 추성분용정란광국공신이 되었다.
묘소는 배위 정경부인 익흥(원주)이씨와 합장 묘로, 내룡(來龍)의 변화가 활발하고, 혈증(穴證)도 보인다. 좌측 청룡자락에는 그의 딸과 사위인 원주이씨 중시조인 부령공 이희백(李希伯)의 합폄 묘가 살짝 자태를 들어낸다.
진입수(辰入首)에 정침봉침(正針縫針) 모두 을좌신향(乙坐辛向)으로 관중(貫中)되고, 좌선수(左旋水) 건해파(乾亥破)가 되어 정묘향(正墓向)이다.원충갑 장군 부부 합폄 묘 사위인 이희백의 묘소가 있는 청룡자락에서 바라본 조안산 전경
이기(李 , 1522~1600)의 본관은 한산(韓山)이고, 자(子)는 가의(可依), 호 송와(松窩)이며, 시호는 장정(莊貞)이다. 1546년(명종 1)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555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삼사 등의 여러 관직과 강원도관찰사, 양주목사 등을 거쳐 예조판서,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명종 대에 권신 이량(李樑)을 탄핵하였으며, 선조 대에는 동인에 속하여 1583년(선조 16)에 대사헌으로 사헌부 관인을 이끌고 이이(李珥)를 탄핵하다가 장흥부사로 좌천되었다. 1594년에는 정철(鄭澈)이 최영경(崔永慶)을 무고하게 죽인 일을 공격하였다.
또한 임진왜란 후 주전론을 주장한 북인의 입장에서 유성룡(柳成龍)의 주화론을 공격하는 쪽에 섰다. 1578년 양주목사가 되었을 때는 선정을 베풀었다는 보고가 관찰사에 의해 올라왔고, 임진왜란 때는 순화군(順和君)을 수행하면서 고향인 강원도에서 의병을 모집하였다.
대사헌일 때 말을 제대로 먹이지 못해 타고 가던 말이 거리에서 주저앉은 일이 있었는데, 그 후로 말이 피곤하여 주저앉으면 사람들이‘대사헌의 말’이라 하여 청렴함을 칭송하였다. 1603년에 청백리에 뽑히고 영의정에 추증(追贈)되었다.
이곳 묘소는 보국(保局)이 완벽한 장풍국(藏風局)의 명당을 이루는데, 탐랑체(貪狼體) 주봉(主峰)에서 낙맥(落脈)하는 내룡(來龍)의 기세가 활발하다. 입수처에서 살짝 고개를 쳐들고 비룡(飛龍)으로 치올라 옥녀단장형(玉女端粧形)의 형국을 일구었다.
풍수에서 말하는 옥녀(玉女)란 젊은 여자, 천상(天上)의 여자이며, 절세 미인인 동시에 풍요(豊饒)와 다산(多産)을 상징한다. 옥녀 형국의 주산이나 부모봉은 둥그스름한 무곡(武曲)이거나, 귀인형(貴人形)의 탐랑(貪狼)이 주를 이루며, 주변에 옥녀가 머리를 빗는 빗처럼 생긴 산이나 사격(蛾眉砂) 등이 있어야 한다. 또한 화장대나 장롱, 분갑 등이 있으면 더욱 확실한 옥녀단장형이 된다. 그리고 옥녀가 목욕을 할 수 있는 담(潭)이나 연못 등이 있으면 더욱 좋다.
과연 옥녀가 기거할 수 있는 합당한 명당인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해좌사향(亥坐巳向)에 병파(丙破)가 되어 문고소수(文庫消水)이다.옥녀단장형의 이기 음택 국세 5. 회비 : 일반 - 4만원. 여성 - 3만원(교통비, 중식, 석식, 기타 비용 등)
- 회비는 당일 사무국장에게 납부.6. 신청기간 : 일반회원은 3월 18일(금)까지 신청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7. 신청방법 : 참가를 희망하시는 분은 반드시 이름과 연락처를 게시판 아래에 리필(꼬리말)로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Tel) 한국자연풍수지리 연구소 02-922-0207, 017-282-9721,
8. 연락처
서울, 경기, 전국 : 정철화 (011-745-2357), 채영석 (017-282-9721), 김명식 (019-212-3494)
강원, 원주 : 채희정 (018-315-5989)
충남: 정수일 (011-9823--2588)
대전: 소암 (011-9800-0307)
경북, 경남 : 일원 류재백 (016-834-6681)
전북, 전남 : 정남중 (011-557-5427)10. 기타 : 산행을 할 수 있는 간단한 복장과 나경패철, 필기도구, 간식 등
(우천 시도 예정대로 간산을 진행할 예정이오니, 비가 오면 우산이나 우의 등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풍수이야기 > 풍수간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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