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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여행(8)...왕릉의 석물답사는 즐거워/조선왕릉답사 2004. 11. 4. 00:33
오늘은 왕릉의 부속물인 석물(石物)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용어가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그래서 다소 무리인줄 알면서도 오늘 한꺼번에 석물을 모두 설명할려고 합니다. 오늘까지 용어설명을 모두 마치고 내일부터는 왕릉여행을 본격적으로 해볼까 합니다. 그러니 좀 지루하시더라도 끝까지 버텨보시길......전문가 칭호가 곧 눈앞에 보이니까...ㅎㅎㅎ 전형적인 조선 왕릉의 석물은 1대 태조에서부터 25대 철종에 이르기까지 아래에 소개하는 석물들이 대부분 설치되어 있습니다. 다만, 사후에 추존되었거나 폐위되었다가 복위된 능에 한해서는 석물이 반으로 줄어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먼저 그림을 봐가면서 같이 따라가 보도록 합시다...... 위에서 밑으로 설명드리겠습니다...
왕릉의 석물
1. 곡장(曲墻)
2. 능침(陵寢)
3. 병풍석(屛風石)
4. 난간석(欄干石)
5. 석양(石羊)과 석호(石虎)
6. 상석(床石)
7. 망주석(望柱石)
8. 장명등(長明燈)
9. 문인석(文人石), 무인석(武人石), 석마(石馬)
10. 장대석(長臺石)
1. 곡장(曲墻)
봉분(封墳)을 보호하기 위하여 동,서,북 삼면으로 담장을 쌓는데 이를 곡장(曲墻)이라고 합니다. 곡장은 왕실의 묘인 능(陵)과 원(園)에만 설치할 수 있고 일반 묘에는 흙으로 산담을 쌓았습니다. 곡장(曲墻)은 능 위쪽에서의 토사(土砂) 유입을 막는 실질적인 기능과 혈의 생기를 흩어버리는 바람을 막아주는 풍수지리상의 기능을 수행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능침(陵寢)을 아름다우면서도 아늑하게 만들어주는 역할도 합니다.
2. 능침(陵寢)
병풍석 위에 잔디가 있는 봉분을 말합니다.
곡장과 능침(태릉과 여주영릉)
3. 병풍석(屛風石)
왕릉 봉분을 병풍처럼 사대석이 휘두르고 있기에 이를 흔히 병풍석이라 합니다. 봉분 밑을 12각(12지신상이 새겨짐)의 병풍석으로 둘러싸 봉분을 보호하는데 돌의 쓰임새에 따라 용어가 좀 복잡합니다... 참고로 알아두세요.... 병풍석은 인석(引石), 만석(滿石), 우석(隅石), 면석, 지대석(地臺石), 박석(薄石)으로 구분 되며 아래의 사진에서 능침에서 사각의 튀어 나온것이 인석, 봉분의 맨 윗부분 두른 것을 만석, 중앙에 있는 것이 면석이며, 면석과 면석을 이어주는 각이진 부분을 우석, 만석처럼 아랫 부분을 두른 것을 지대석, 그리고 맨 아래 바닥을 넓게 두른 것을 박석이라고 합니다.
병풍석과 난간석
4. 난간석(欄干石)
난간석(欄干石)은 잡인과 짐승등의 접근을 막고 호석을 보다 튼튼하게 지지해 주기 위해서 봉분(封墳)의 주변에 둘러 놓는 돌로 만든 울타리입니다. 난간석의 높은 기둥은 석주(石柱), 석주를 가로질러 진입을 가로막은 것은 죽석(竹石), 죽석의 중간을 받치고 있는 작은 기둥은 동자석주(童子石柱)라고 합니다. 세조의 유언으로 세조 이후에는 병풍석을 두르지 않는 대신에 병풍석에 새겼던 12지신상 (十二支神像)을 난간석의 12 동자석주에 옮겨서 새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조 이후에도 권력의 힘이 강했던 왕들은 바로 윗대의 왕릉에 병풍석을 만들기도 했더군요.
석주, 죽석 및 동자석주
5. 석양(石羊)과 석호(石虎)
석양(石羊)과 석호(石虎)는 난간석의 바깥쪽에 세워두는 돌로 만든 양과 호랑이입니다. 신라 시대에는 왕릉 주변에 돌사자를 세워 놓았고 고려시대에는 주로 석구(石狗)를 세워 놓았으며 고려 후기에 와서야 비로소 석호와 석양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왕릉에는 석호와 석양을 각각 4기씩 밖을 향하도록 세워두었으며 추존된 왕의 경우에는 각각 2기씩 세워두었습니다. 홍릉과 유릉은 중국 황제릉을 본따서 신도의 좌우로 해태와 기린, 코끼리, 낙타 등 다양한 동물 조각을 세웠습니다. 석호와 석양 등 동물들을 석수(石獸)라고 일컬으며, 석호, 석양을 호석, 양석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석양과 석호
6. 상석(床石)
왕의 혼령이 나와 앉는 곳이라하여 혼유석(魂遊石)이라고도 합니다. 상석을 괴고 있는 북 모양의 돌을 고석(鼓石) 또는 족석(足石)이라고 하며, 한 개의 고석 4면에는 귀면(鬼面)을 새겨 넣었는데 사악한 것을 물리친다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상석과 고석
7. 망주석(望柱石)
망주석(望柱石)은 능상(陵上)의 좌우에 있는 돌로 만든 기둥입니다. 멀리 신라시대의 괘릉 에도 망주석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혼령이 무덤을 찾을때 멀리서도 찾기 쉬우라고 세운 답니다. 상석 좌우로 한개씩 한 쌍을 배치합니다.
8. 장명등(長明燈)
장명등(長明燈)은 절의 석등(石燈)을 모방하여 만든 석물입니다. 상석 한 단 아래 중앙에 있으며, 상징적인 등불 역할을 합니다. 조선 전기의 장명등은 대부분 팔각형이었으나 조선 중기 이후로는 사각형과 팔각형 석등이 유행처럼 교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망주석과 장명등
9. 문인석(文人石), 무인석(武人石), 석마(石馬)
문인석(文人石), 무인석(武人石)은 죽은 임금을 모시도록 돌로 만들어 세우는 문관과 무관의 형상입니다. 문인석은 관(冠)을 쓰고 홀(笏)을 쥐고 있으며 좌우 한 쌍을 배치하며 무인석은 갑옷에 검을 들고 문인석 다음에 위치하고 있으며 좌우 한 쌍을 배치합니다.(태종의 헌릉은 2쌍씩 배치) 석마는 문인석과 무인석 뒤에 한 마리씩 있으며, 마석이라고도 합니다.
문인석과 무인석
10. 장대석(長臺石)
왕릉의 능원을 3단계로 나누어 초계(初階), 중계(中階), 하계(下階)로 구분합니다. 각 단계의 구분을 위해서 돌을 가로로 길게 놓았습니다. 이것을 장대석이라고 합니다. 능 바로 아래의 첫 번째 장대석을 초계, 두 번째 장대석을 중계, 마지막 장대석을 하계라고 합니다. 각 계 마다 놓이는 석물을 구분하여 초계에는 망주석과 상석을, 중계에는 문인석과 장명등을, 하계에는 무인석을 배치 하였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이해가 되실겁니다. 대부분 장대석이 3단계로 갖추어져 있으나 장대석이 한 단이거나 없는 곳도 일부 있습니다.
11. 용미(龍尾)
곡장 뒤의 언덕을 용의 꼬리같이 만들어 놓았다고 해서 용미라고 합니다.
장대석과 용미
<계속 이어집니다...>능, 원, 묘에 관련된 조선왕조 왕족의 무덤들은 모두 109기에 이릅니다. 그 중 능이 44기, 원이 13기 그리고 묘가 52기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왕이 승하하면 국장을 관장할 임시 기구인 도감(빈전도감, 국장도감, 산릉도감) 들이 설치되고 3개월에서 5개월에 이르는 국장 기간 동안 왕릉 터가 상지되었습니다. 이때 동원된 다수의 풍수지관들과 함께 대신들은 한양 주변 백리 안팎의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니며 풍수로서 판단하여 천거된 후보지는 조정에서 논의를 거쳐 재위 왕의 결정으로 정해졌습니다. 참으로 힘든 과정을 거쳐 능지가 결정되었습니다. 이때 보통 산역을 위하여 동원된 산릉부역군(山陵赴役軍) 수는 6,000~9,000 명 이었고 그 이외에 많은 공장(工匠)들이 동원되어 정자각, 석물들을 만들었습니다. 대단한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엄청난 량의 새로운 지식을 쌓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앞으로 계속 진행하면서 조금씩 상기하다보면 금새 내것인양 쉽게 이해가 갈겁니다.....왕릉 하나가 탄생하기까지는 범국가적으로 참여하여 엄청난 과정을 거친 대역사로 만들어졌는데 후세의 우리들이 왕릉을 답사하고자 한다면 이정도의 노고는 해야하지 않을까요.....화이링....ㅎㅎㅎㅎ♥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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