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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절날 더위에 열 받고 일본땜에 열 받은 왕릉답사
    답사는 즐거워/조선왕릉답사 2006. 8. 15. 23:14

    광복절날 왕릉답사

     

    왕릉의 평온한 사초지

    8월15일은 광복절이자 정부수립일이고 하필이면 우리나라와

    중국이 그렇게도 반대하는 야스쿠니 신사를 일본 수상이 참배한다는

    날인데 우리는 그런 일본으로부터 온갖 핍박을 받은 의친왕의
    기제에 참석하는 날입니다.

     

    출발부터 감정이 약간 복받칩니다. 우리가 모이기로 한 장소가

    고종이 누워계시는 홍릉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매번 금곡지구를

    갈 때 차량을 이용하다보니 오늘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어찌 해야할지 난감한 경우가 있더군요. 그래서 택시로 무조건

    청량리까지 가서 금곡이라고 써있는 버스를 집어탔는데 다행

    스럽게도 홍유릉 입구에 정확히 세워주더군요.

     

    홍유릉 주차장에 도착하니 반가운 얼굴들이 환영해주는데 날씨는

    조금 더웠지만 아주 기분은 좋았습니다. 아침인데도 어찌나 푹푹

    찌는지 오늘 일정이 평탄하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들더군요. 날씨가

    이러하니 사람들 모습이 밝은 웃는 표정이 아니라 모두 햇살에

    찌뿌린 얼굴들을 하고 초장부터 땀과의 전쟁을 했습니다. 그러니

    문화해설사나 답사객이나 모두 고생이었습니다.

     

    홍릉으로 들어서자 우리의 쥔장이신 광나루님은 어찌나 땀을 많이

    흘리는지 마치 어디 몸 한군데 방수가 잘못된 것처럼 연신 물을

    바가지로 퍼내는 듯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 한 바가지 씩 짜는 모습이
    안스러워 보였습니다...ㅎㅎㅎ 그래도 끄떡없이 답사를 이끌고

    안내하는 모습이 고맙더군요.

     

    홍릉의 연못

    홍릉의 연못은 예전에 갔을때는 원형의 못이 조금 무너져 어긋나

    있더니 이번에보니 복원을 했는지 똑바른 원형으로 바뀌어져

    있더군요. 원형연못은 우리나라 방식과는 차이가 납니다. 우리의

    연못은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원리에 따라 연못의 모양은 방형으로

    하고 그 안에 원형의 섬을 만드는게 보통인데 홍릉은 일본인들이

    만든거라 그렇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전통방식으로 시정해야 되지 않을까요?

     

    홍유릉은 여러번 다녀온 곳인데 갈 때 마다 색다른 느낌이 드는

    곳입니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은 안개비가 자욱하니 침전과 석물들을

    감싸고 있는데 그 풍경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아침 나절에 유릉의

    재실 앞에서 유릉을 보면 언제나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있는데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보면 은은한 색감과 신비로운 왕릉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오늘은 카메라를 소지하지 못해

    그 모습을 담지 못했습니다.

     

    유릉에서 설명하시는 문화해설사(가운데 흰옷)

    시간이 촉박한 가운데서도 유릉 능원까지 올라가 사방을 둘러

    보면서 방향을 보니 유릉의 향(向)이 유향(酉向)으로 보인더군요.

    즉 서쪽을 향해 릉이 놓여있다는 말입니다. 조선의 왕릉은 대부분

    남향이나 동향으로 되어있는데 서향은 처음보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간 사릉도 서향 같았는데 패철을 소지하지 않아 정확한 것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서향이나 북향으로 묘를 안쓰는 것은 아니지만

    왕릉에 이런 향으로 썼다는 것은 조금 의아해지더군요.

     

    영원에서 설명하시는 대운님

    홍유릉 답사를 마치고 영원으로 향했습니다. 영원은 영친왕을 모신

    곳입니다. 세세한 것은 생략을 하고 느낌위주로 답사기를 진행하려고

    하니 양해바랍니다.
    영친왕을 모신 영원은 왕릉에 준해서 석물도 배치했고 정자각도

    세웠습니다. 그런데 장소가 협소하여 깎아지른 절벽에 세우다보니

    한눈에 보기에도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의친왕 전하의 기제를 마치고...

    우리황실사랑회가 주관하신 의친왕의 기제사에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참석을 했는데 막상 제례가 진행되면서, 절을 한번 올릴 때

    마다 새로운 느낌들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왕조가 몰락하여 귀하디

    귀한 몸이 제대로 뜻을 펴보지 못하였고 돌아가신 뒤에도 기구한

    운명처럼 여러차례 천장을 하여 이곳에 이르렀다니 안타까운 마음

    금할길이 없었습니다. 나라에서 해야할 일을 고맙게도 황사회에서

    하고 계시니 감사할 따름이고 저희들에게 신경을 많이 써 주신 덕에

    짧은 시간이나마 의미있게 참반을 했는데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사릉의 원경

    8월의 태양은 답사객이라고 봐주지 않더이다..ㅎㅎㅎ
    식사 후에 찾아간 사릉(단종비 정순왕후 송씨 릉)은 소나무가 아주

    멋드러지게 서 있고 여러모로 다른 왕릉과는 다른 모습이 눈길을

    끌더군요. 능역에 해주 정씨의 민가묘가 있는 것도 그렇고 풍수에

    비쳐볼 때 이해 안가는 부분이 많은 것도 그렇습니다. 아마도 처음

    조성할 때 왕릉으로 조성한 곳이 아니어서 그럴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릉의 소나무 길


    이곳의 답사 별미는 능역에 올라 홍살문을 바라보는 풍광인데

    오후의 햇살이 비추는 시각이라 소나무들이 더욱 아스라히 비춰져

    은은함과 신비감이 더한 것 같았습니다. 그곳에서 잠시 숨을 가다듬고

    휴식을 취했는데 비운의 왕비 정순왕후의 생애를 음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여서 아주 의미있는 일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성묘 전경

    10여년 전에 광해군묘와 공빈 김씨 묘를 찾는다고 두번이나

    송능리에 갔다 못찾고 그냥왔었는데 이번에도 내게는 쉽게 허락을

    하지 않더군요. 다름아니라 일행들은 모두 성묘(선조의 후궁 공빈

    김씨 묘)쪽으로 갔는데 우리만 광해군묘로 들어서서 서로 길이

    엇갈렸기 때문입니다. 전화를 받고서야 부리나케 방향을 틀어

    성묘로 갔습니다.

    성묘는 풍양조씨 시조묘 바로 뒤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광해군이

    제위 때 어머니 공빈을 공성왕후(恭聖王后)라 하고 석물을 왕비릉에

    준하게 하며 능호를 성릉(成陵)이라 하였습니다. 이때 풍양조씨

    시조인 조맹의 묘를 옮길 것인가 논의했으나 반대가 심해 평장으로

    하도록 해서 그 묘를 옮기지 않았다가 나중에 광해군이 폐위 된 후에

    인조 때 다시 봉분과 석물을 세웠다고 합니다.

     

    성묘와 임해군묘의 갈림길....오른쪽이 성묘가는 길..

    성묘는 광해군이 왕이 되었으니 혈자리가 분명했으나 조맹의
    묘를 파내지 못해 화가 거꾸로 미쳐 임해군은 형제에 의해 사사되고

    광해군은 폐위된 것으로 봐서 지금은 기운이 다한 흉지로 변한게

    분명하다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풍양 조씨는 조선조 후기에 와서

    신정왕후 조대비가 30여년간 권력을 휘둘렀으니 그 자리가 혈자리

    임에 틀림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무가 우거져 잘 안보였는데

    내려오면서 둘러보니 외청룡이 크게 돌고 있었는데 어느 분이

    이 자리가 명당이라고 하시던데 아마도 풍수를 많이 아시는 분

    같았습니다. 겨울에 나뭇잎이 지고 난 후 한번 편안하게 답사를

    해볼 작정입니다.

     

    임해군묘...들꽃처럼님 사진에서


    임해군묘는 길도 막혀있던 곳을 수풀을 해치고 힘겹게 찾은 곳인데

    묘소 관리도 제대로 안되어 있어 실망이 컸습니다. 그곳에서는

    어찌나 숨이 차던지 저 또한 숨을 고르느라고 말을 아꼈네요..ㅎㅎ

    일부 몇사람이 안보이던데 누군가 그럴수가 있냐고 하더이다.ㅎㅎ

    풀섶에 감춰진 길을 열면서 나를 따르라고 안내하신 뭉치님께 감사

    드립니다..

     

    광해군묘


    광해군묘를 보면서 우리가 과거의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면 안될까?

    라는 의문을 던져봅니다. 광해군은 인조반정 당시에도 뚜렷한

    명분을 찾지 못해 사약을 내리지 못하고 천수를 다했지만 지금은

    새롭게 그의 등거리 외교정책이 조명되고 있습니다.
    앞서 사릉도 한이 맺힌 정순왕후를 사후 5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굳이 단종과 떨어뜨려 놓고 지낼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는데 광해군도 왕으로 되돌리면 안될까 하는 나만의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광해군묘의 부서진 망주석

    광해군묘의 석물들이 많이 훼손되었는데 망주석은 부러져있고
    석등도 한쪽은 깨져있더군요... 묘비는 총탄에 맞아 몇군데 파여

    있는데 대충 6.25 때 그랬을거라고 막연히 생각들 하고 있더군요.

    야간에는 묘비가 사람으로 보여서 그렇게 총을 많이 맞는다더군요.

    옳은 지적인데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묘비나 기념비에는 총탄

    흔적이 유난히 많습니다. 이것은 6.25 때 입은 상처 뿐만 아니라

    누군가 장난 삼아 공기총이든 다른 총으로 사격연습을 한 결과

    이기도 합니다. 문화재란 인식이 별로 없던 때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겠지만......

     

    안빈묘로 가는 길

    돌아오면서 안빈묘(효종의 후궁 안빈 이씨 묘)를 찾았는데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전자보호장치를 달아놓아 접근할 수 조차 없어

    씁쓸한 마음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이곳의 석물들이 아주 보기

    좋다고 하는데 도굴꾼들이 그걸 노려 이렇게 철통같은 경비를

    설치한거라는군요.

     

    목릉 전경

    이제는 흐를 땀도 별로 없었겠지만 그래도 무던히 땀이 솟아

    나더군요. 동구릉에 가면서도 또 방향을 잘못 잡아 일행들을

    기다리게 했네요... 오늘 운전을 해주신 보현당님께 새삼 감사
    드립니다. 몸도 불편하신데 이 더위에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으니
    몸 나으시면 막걸리 한사발 사드리리다...

     

    왕릉에 유난히 많이 핀 꽃

    목릉(선조와 의인왕후, 인목왕후의 릉)이 최근에 개방되어 가고

    싶었는데 드디어 오늘 기회가 왔네요. 이미 답사객들은 지칠대로

    지친 상태라 표정들이 무덤덤해져 있었고 말없음표를 입에 하나씩

    물고 있는듯 능원으로 올라갈 때도 거의 말이 없더군요. 능 사초지를

    따라 꽃들이 많이 피어있었는데 창공을 배경으로 바라보니 보랏빛

    꽃색깔이 아주 예쁘게 보이더군요.

    목릉을 올라가니 제일 먼저 무인석의 장대한 기골이 눈에 띄더군요.

    엄청 큰 석물은 우리를 압도하고 조선왕릉의 정형을 제대로 갖춘

    능역은 공부할 수 있는 거리를 제공해 주어 잠시 왕릉공부를 했습니다.

     

    목릉 정자각과 멀리 보이는 인목왕후릉


    목릉 선조대왕릉에서 바라본 인목왕후릉은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는데 항상 느끼는 거지만 왕릉을 조성한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 모습이나 석물의 모습이 달라지더군요..

    인조때 만들어진 인목왕후릉은 인조의 입장에서는 인조반정의
    은인이자 반정의 명분이었던 인목왕후를 후하게 장례지낼 수
    밖에 없었겠지요. 그래서인지 멀리서 바라본 석물들이 아주
    정교하고 아름답게 조각된 것 같았고 석물의 색깔도 흰색으로
    아주 깔끔하니 보여 그 모습도 평온해 보였습니다.


    지친 몸으로 릉에서 내려오다보니 힘들이 빠져 몇사람이 넘어지고

    그 바람에 박장대소를 하면서 다시금 힘을 비축했으니 고마워해야

    하는건지 원...ㅎㅎㅎ

     

    명성황후 초장지에 드러난 석물

    동구릉 건원릉은 정자각과 그 외 건물들을 한창 보수 공사중이
    었습니다. 새롭게 단장한 근사한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명성황후의 초장지를 가기위해 숭릉(현종과 명성왕후 김씨 릉)

    쪽으로 가는데 연못이 하나 나오는데 물오리류의 새들이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숭릉 입구쪽에 동물서식지라 비공개 한다고 써있던데

    그 의미를 알 수 있더군요. 조심조심 돌아 초장지를 찾으니 강원을

    조성한 흔적이 보이고 일부 석물이 드러나 있었는데 땅에 뭍혀있다

    빗물에 씻겨져 드러나 보이는거라 합니다. 아마도 더 많이 뭍혀있을

    거라 생각이 드는데 필요하다면 땅속을 확인하는 장비들이 많으니

    그걸 이용하면 쉽게 알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윗쪽으로 올라가보진

    못했지만 홍릉을 이곳에 최초 조성하려 했다는 역사적인 의의는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숭릉의 팔작지붕 정자각

    숭릉은 먼 발치에서 돌아봤는데 무엇보다도 정자각이 팔작지붕
    으로 되어 있어 아주 멋드러진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다른 곳이 맛배지붕으로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과는 대조가
    되고 있더군요. 한가지 아쉬운 것은 이번 장마로 인해 숭릉 봉분이
    일부 무너져 내렸는데 보수가 시급한 실정이었습니다.

     

    엄청난 더위로 다들 고생들이 많았을텐데 어느 누구 한사람
    불평하는 분이 없었고 설명하나라도 놓칠새라 열심히 경청하고
    눈으로 확인하는 진지한 답사가 되었다고 자부합니다. 아울러
    차량을 제공한 여러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마지막 코스로 타는 갈증을 적셔주는 막걸리가 없었더라면 왕릉
    답사의 묘미는 반감되었을 거라고 자문자답을 해보면서 화통하게
    끝 마무리에서 우리들에게 보시를 내려준 동구릉 소장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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