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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풍산 심씨 문정공파 묘역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1. 8. 3. 10:00
풍산 심씨 문정공파 묘역(豊山 沈氏 文靖公派 墓域)
풍산심씨 묘역은 이번 답사의 마지막 코스인데 예전에 한번 다녀온 곳이라 별 뜻없이 찾아갔는데 묘역이 엄청나게 넓어서 미리 준비 안한것을 탓하며 열심히 찾아다녔다. 풍산심씨 묘역은 더군다나 동향이라 해가 일찍 지기 때문에 더욱 힘들게 찾아다녔다. 그중에서 심정선생묘를 사전에 준비를 못한 관계로 물어물어 해가 진뒤 겨우겨우 찾았는데 그래서인지 오히려 더 뿌듯하다. 아이폰 덕분에 현장에서도 인터넷이 가능하여 그 덕분에 이번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답사는 미리미리 준비하면 고생을 덜하고 준비가 소홀하면 여러명이 고생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한번 깨달았다.
조선 중기의 문신 심정(14714∼1531)의 묘로, 묘역 안에는 그의 아들 심사손, 심사순, 손자 심수경 등 풍산 심씨 가문의 묘 60여 기가 함께 마련되어 있다. 심정은 연산군 1년(1495) 생원시에 합격한 뒤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1506년 중종반정 때 공을 세워 화천군(花川君)에 봉해졌다. 중종 14년(1519) 경빈 박씨를 통하여 조씨전국(趙氏專國)의 말을 궁중에 퍼뜨리고 왕을 움직여 기묘사화를 일으켜 결국 정권을 장악하기도 하였으나, 경주 박씨의 동궁 저주사건이 드러나서 강서로 귀양을 갔다가 이항·김극핍과 함께 신묘삼간(辛卯三奸)으로 지목되어 죽게 되었다. 심정의 아들 심사손(1493∼1528)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중종 18년(1523) 비변사낭관으로서 서북면의 야인정벌에 공을 세워 많은 관직에 올랐다. 심사손의 아들 심수경(1516∼1599)은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명종 1년(1546) 문과에 장원급제 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명종 17년(1562) 중종의 묘를 옮길 때 경기도 관찰사로 나라에서 쓰던 큰 상여가 한강을 건너는 다리를 설치하지 않은 죄로 파직되었다. 그 뒤 대사헌과 8도 관찰사를 지내면서 청백리에 추천되었고 선조 31년(1598)에 생을 마감하였다. 풍산 심씨 묘 60여 기 중에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는 이 4분의 묘와 묘비, 상석 등을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문화재지정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77호
문화재명칭
풍산 심씨 문정공파 묘역(豊山 沈氏 文靖公派 墓域)
소재지
서울특별시 강서구 방화동 산 152-1 일대, 방화동855번지(심정묘)
관리자(연락처)
풍산심씨문정공파
▼ 풍산심씨 묘역 배치도 위성사진
심정(沈貞)
1471년(성종 2)∼1531년(중종 26).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정지(貞之), 호는 소요정(逍遙亭). 아버지는 부사를 지내고 적개공신(敵愾功臣)이었던 응(膺)이다.
1495년(연산군 1) 생원시에 합격하고, 1502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이듬해 수찬이 되었고 1506년 중종반정에 가담, 정국공신(靖國功臣) 3등에 녹훈되고 화천군(花川君)에 책봉되었다.
이듬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서 사은사(謝恩使)에 임명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이해에 남곤(南袞)·김극성(金克成) 등과 함께 모의, 김공저(金公著)와 조광보(趙光輔)를 제거하기 위한 옥사를 일으켜 인망을 잃었다.
1509년(중종 4) 성천부사 등의 외직을 거쳐, 1515년 이조판서까지 승진하였으나 삼사의 탄핵으로 물러났으며, 다시 1518년에 형조판서의 물망에 올랐으나 조광조(趙光祖) 등의 사류(士類)로부터 소인(小人)으로 지목되고, 이조판서이던 안당(安瑭)의 거부로 임명되지 못하였다.
이에 한강변에 정자를 지어 울분을 달래던 중, 아들 사손(思遜)마저 사류의 탄핵으로 파직되자 조광조 등의 사류에 대한 원망이 골수에 맺혀 틈만 노리게 되었다. 마침 1519년 조광조 등이 위훈삭제(僞勳削除)를 요구, 반정공신들로부터 심한 반발을 받게 되자 경빈박씨(敬嬪朴氏)를 통하여 조씨전국(趙氏專國)의 말을 궁중에 퍼뜨리고 남곤·홍경주(洪景舟) 등과 모의, 왕을 움직여 기묘사화를 일으켜 사류를 일망타진하였다.
그뒤 남곤과 함께 정권을 장악하다가 1527년 남곤이 죽은 뒤 좌의정·화천부원군(花川府院君)에 올라 수하에 이항(李沆)과 김극핍(金克愊)을 두고 권력을 독점, 동궁(東宮: 후일의 인종)과 인척관계에 있으며 권력경쟁자였던 이조판서 김안로(金安老)를 귀양보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경빈박씨의 동궁저주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와의 관련사실이 드러나게 되어, 김안로의 사주를 받은 대사헌 김근사(金謹思), 대사간 권예(權輗)의 탄핵으로 강서로 귀양갔다가 이항·김극핍과 함께 신묘삼간(辛卯三奸)으로 지목되어 사사(賜死)되었다.
후일 김안로가 패사(敗死)한 뒤에도 그만은 사림의 미움을 받아 신원되지 못하고 남곤과 함께 ‘곤정(袞貞)’으로 일컬어져 소인의 대표적 인물로 길이 매도되었다. 형제간에 우의는 지극하여 곤경에 처한 동생 의(義)를 끝까지 보살펴주었다고 하며, 교묘한 꾀를 잘 내어 지혜주머니〔智囊〕라 불렸다고 한다.<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풍산심씨 심정 묘
▼ 풍산심씨 심정 묘비
▼ 풍산심씨 심정 묘 문인석... 문인석이 2쌍이다...
▼ 풍산심씨 심정 묘 후경... 삼정초교 운동장 뒷산에 묘가 있다.
▼ 풍산심씨 심정 묘 아래에 있는 아들 심사순 묘
▼ 심정 묘를 찾아가기 위해 네비주소를 방화동 799번지를 찍으면 느티나무 앞에 세운다. 여기서
삼정초교 운동장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약100미터 올라가면 심정 묘가 나온다.
심사손(沈思遜)
1493년(성종 24)∼1528년(중종 23).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양경(讓卿). 좌의정 정(貞)의 아들이다.
1513년(중종 8) 사마시에 합격하고, 1517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을 거쳐 예문관에 들어가 사관(史官)으로 오래 있으면서 사실대로 기록하였다.
1523년 비변사낭관으로 서북면의 야인정벌에 공을 세우고, 예조좌랑·사간원정언을 거쳐 병조정랑이 되어서는 군무에 숙달함을 인정받아 중대한 일은 반드시 도맡아 처리하였다.
홍문관에 들어가 수찬·응교를 지내고, 1525년 경상우도어사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전한·직제학을 역임하였다.
1528년 다시 서북 변경의 야인들의 준동이 심해지자 당상관에 올라 만포진첨절제사가 되어 변방방어에 정력을 쏟다가, 야인의 기습을 받아 살해되었다. 그의 나이 겨우 36세로서, 중종은 명신을 잃은 것을 매우 슬퍼하였다.<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심정의 차남 심사손 신도비
▼ 심정의 차남 심사손 신도비
▼ 심사손 묘비
▼ 심사손 부인 정경부인 이씨 묘비
▼ 심사손 묘 석물
▼ 심사손 신도비와 석물
심수경(沈守慶)
1516년(중종 11)∼1599년(선조 32).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희안(希安), 호는 청천당(聽天堂). 아버지는 사손(思遜)이다.
1546년(명종 1)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고, 1552년 검상(檢詳)을 거쳐 직제학을 지냈다.
1562년 정릉(靖陵: 中宗陵)을 이장할 때 경기도관찰사로 대여(大輿)가 한강을 건너는 선창(船艙) 설치를 하지 않은 죄로 파직되었다. 뒤에 대사헌과 8도 관찰사를 역임하였으며,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1590년(선조 23) 우의정에 오르고 기로소에 들어갔으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삼도체찰사가 되어 의병을 모집하였으며, 이듬해 영중추부사가 되었다가 1598년 치사(致仕)하였다. 문장과 서예에도 능하였다.
저서로는 《청천당시집》·《청천당유한록(聽天堂遺閑錄)》이 있다.<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심정의 손자, 심사손의 아들인 심수경 묘
▼ 심수경 묘
▼ 심수경 묘 석물
▼ 심수경 묘비
▼ 심수경 묘 후경..
심일취(沈日就)
심일취(1547~)는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중진(仲進)이다. 증조는 좌의정을 지낸 심정(沈貞)이고 조부는 정양공 심사손이며, 부는 청백리로 우의정을 지낸 심수경의 차남이다. 모친은 정경부인(貞敬夫人)으로 군기시판관 신파의 딸이며 배위(配位)는 정부인(貞夫人) 광산김씨(光山金氏)이다. 사근도찰방(沙斤道察訪) 심일장의 동생이다. 1573년(선조6년) 계유년 식년진사 3등에 합격했다. 마전군수(麻田郡守)와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다.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追贈)되었다.
▼ 심수경의 차자 심일취 묘
▼ 심일취 묘비
▼ 심일취 묘 석물
▼ 심일취 묘 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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