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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군포]충간공 이기조 선생 묘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1. 8. 5. 10:00
이기조 선생 묘 답사
비가 오락가락하면서 사진이 제대로 찍히지 않아 고생했고,
날씨가 더워 땀이 많은 체질이라 더더욱 곤혹스러웠다.
그래도 새로운 묘를 답사하면 어디서 나오는지 힘이 솟는다.
이것도 어쩌면 직업병의 일종이겠지....ㅎ
이기조 선생의 묘는 수리산역 부근 주공5단지 끝지점에 위치해 있다.
수리산역은 두번째 오는데 지난번에도 느낀 거지만 주공5단지 쪽으로 들어가는 길이 딱 한 군데라서
수리산역 앞에 있는 삼거리를 그냥 지나치면 다시 돌아들어갈 곳이 없어 애를 먹는다.
처음에 우회전을 못하면 완전히 한바퀴를 다시 돌아 유턴을 하고 또하고 해야 다시 원위치로 된다.
수리산역 앞과 뒤에 들어가는 진입로를 만들었으면 한번 지나쳐도 다시 들어갈 곳이 있을텐데...
군포시에 계시는 분들은 아주 정확하게 한번에 수리산역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외지인들은 한번씩 실수를 하게 만든다. 나는 벌써 두번째 실수를 했다.
한번에 못들어오고 허탕치고 찾은 묘라 그런지 아니면 이장해온 묘라 그런지 별로 감동도 없다.
문화재이니까 그냥 올린다. 그러나저러나 우리나라에 지자체가 생기면서 선현묘가 너무도 많이
문화재로 지정되었는데 이것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조선 인조때 문신인 이기조 선생의 묘는 원래 경기도 장단에 있었다가 1672년에 이곳으로 이장하여 부인 신씨와 합장했으며 묘역에는 이기조 선생의 묘와 신도비가 있으며 약120여평에 걸쳐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석물로는 상석,향로석이 각 1기와 동자석 망주석,문인석 각 2기의 석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즉 봉분을 중심으로 정면에 상석과 향로석이 놓여 있고, 한 단 아래의 좌우에 동자석, 망주석, 문인석이 한쌍씩 서 있다. 이 묘소에는 묘비가 없는대신 동자석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이 묘역은 원래 산본동 산16에 위치하였으나 산본지역의 택지건설로 인하여 1992년 현위치로 이장한 것이다. 이장 직전의 발굴조사 결과 봉분에는 호석이 둘러져 있었고 원래의 묘에서 영조 4년(1728)에 이장되어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유적은 현재 경기도 기념물 제121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이기조(李基祚)
1595년(선조 28)∼1653년(효종 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자선(子善), 호는 호암(浩菴). 판서 현영(顯英)의 아들이며, 박동열(朴東說)의 문인이다.
1615년(광해군 7) 진사로서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들어가 박사가 되었으나, 대북파에 의하여 파직되어 아버지 현영과 함께 수원 쌍부촌(雙阜村)에 은거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형조좌랑이 되었다가 뒤이어 정언이 되었다.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 때에는 한남도원수(漢南都元帥)의 종사관(從事官)으로 난 평정에 공을 세웠으며, 그뒤 지평·헌납·수찬·교리·이조좌랑·응교·좌부승지 등의 청요직(淸要職)을 여러 차례 역임한 뒤 병조참의·공주목사·호조참의를 거쳐, 1635년(인조 13) 경상도관찰사로 나가 많은 치적을 쌓아 송덕비가 세워졌다.
1636년 안변부사로 있을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평안도찬획사(平安道贊劃使)로서 적과 싸우기를 원하였으나 감사의 반대로 좌절되자 죽도(竹島)에 영을 설치하고 백성들을 피란시켜 적봉(賊鋒)을 피하게 하였다.
난 후 도승지에 이어 대사간, 이조참의·참판을 역임하고 1645년 부제학으로 동지 겸 정조성절사(冬至兼正朝聖節使)로 청나라에 가서 지나친 세공미(歲貢米)의 부담을 감축하는 데 성공하였다. 효종이 즉위하자 호조판서에 올랐으나 대동법 및 행전(行錢) 등의 문제로 김육(金堉)과 뜻을 달리하여 대립하였다.
1650년(효종 1) 효종이 성지(城池)를 수축하기 위하여 ‘왜정가려(倭情可慮)’라는 이유로 청나라에 보내는 주문(奏文)에 남방의 수성연졸(修城鍊卒)을 주장하였는데, 청나라가 이를 강화조약의 위반이라고 하여 추궁, 그 책임으로 이경석(李景奭)·조경(趙絅) 등이 청사(淸使)의 사문(查問)을 받을 때 이들을 적극 변호, 신구(伸救)하여 효종의 총애를 받았다.
그해 진주부사(陳奏副使)로 청나라에 갔다 돌아와 우참찬이 되고, 이어서 예조판서가 되었으나 종묘수리에 태만하였다는 김육 등의 탄핵으로 함경감사로 밀려났다가 병으로 사퇴하였다.
1653년 공조판서에 임명되어 돌아오던 중 김화에서 병사하였다. 영의정에 증직되었으며, 시호는 충간(忠簡)이다.<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네비게이션주소 관리자(연락처) 경기도 기념물 121호 이기조 선생 묘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산1152-11(네비에 안나옴)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가야주공아파트 5단지 끝나는 지점(수리산역부근)
▼ 이기조 선생 묘 안내판
▼ 이기조 선생 묘 전경
▼ 이기조 선생 묘... 아파트단지 끝나는 지점에 있다... 철망이 처져있다.
▼ 이기조 선생 신도비...
▼ 이기조 선생 신도비
▼ 이기조 선생 묘 ... 묘가 상당히 크다.
▼ 이기조 선생 묘 동자석
▼ 이기조 선생 묘 망주석...
▼ 이기조 선생 묘 백호쪽 석물...
▼ 이기조 선생 묘 청룡쪽 석물...
▼ 이기조 선생 묘 입수... 새로 조성한 묘라 맥선이 없다..
▼ 이기조 선생 묘 입수처에서 본 용맥... 공원 등산로로 연결되어있다.
▼ 이기조 선생 묘 후경... 사격, 조안산 등이 모두 아파트로 이뤄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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