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경기 시흥]강희맹선생 묘 및 신도비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1. 9. 21. 10:00

    강희맹선생 묘 및 신도비

     

    시흥의 관곡지를 알면서 그곳에 강희맹선생 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여러차례 기회를 엿보았으나 별도로 

    찾아가지 않는한 강희맹선생 묘는 찾아가기 힘들다는 결론에 이번에 강희맹선생 묘를 가고자 시흥 일원의 

    묘지답사를 계획했다.

    선생 묘 답사가 궁극적인 목적이 되었지만 막상 시흥지역 묘를 답사해보니 너무도 훌륭한 묘들이 많아서 

    거기에 정신을 팔리다보니 막상 강희맹선생 묘역은 시간에 쫓겨 정신없이 둘러보고 다음 일정으로 옮겼다.

    선생의 묘역은 앞쪽 아파트가 답답하게 가로막고 있어서 넓고 광활한 명당기운이 오그라드는 격에 해당하여 

    문중에 더이상의 기운은 기대하기 힘들듯... 

    오히려 아파트의 일부 동에서는 형세로 보아 힘을 받아 인물이 나올만한 곳이다.

    강희맹(姜希孟)

     

    1424년(세종 6)∼1483년(성종 14).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경순(景醇), 호는 사숙재(私淑齋)·운송거사(雲松居士)·국오(菊塢)·만송강(萬松岡).
    지돈령부사 석덕(碩德)의 아들로, 인순부윤(仁順府尹)이었고 화가였던 희안(希顔)의 동생이며, 세종의 이질(姨姪)이다.
    1447년(세종 29) 별시문과에 18세로 장원급제한 뒤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가 되었다.
    1450년에 예조좌랑과 돈령판관을 역임하고, 1453년(단종 1) 예조정랑이 되었다.
    1455년(세조 1)에 원종공신 2등에 책봉되었고, 그뒤 예조참의·이조참의를 거쳐, 1463년 중추원부사로서 진헌부사(進獻副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그 이듬해에 부윤으로서 어제구현재시(御製求賢才試)에 2등으로 합격하고, 1466년 발영시(拔英試)에 3등, 등준시(登俊試)에 2등으로 급제, 세조의 총애를 받아 세자빈객이 되었으며, 예조판서를 거쳐 1467년에는 형조판서로 특배되었다.
    1468년(예종 즉위)에 남이(南怡)의 옥사(獄事)를 다스린 공으로 익대공신(翊戴功臣) 3등에 책봉되어 진산군(晋山君)에 봉해지고, 1471년(성종 2)에는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에 책봉되었다. 그해에 지춘추관사로서 신숙주(申叔舟) 등과 함께 《세조실록》·《예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473년에는 병조판서가 되고, 이어서 판중추부사·이조판서·판돈령부사·우찬성을 역임한 뒤, 1482년에 좌찬성에 이르렀다.
    인품이 겸손하고 치밀하여 맡은 일을 잘 처리했으며, 또 경사(經史)와 전고(典故)에 통달한 당대에 뛰어난 문장가였다. 사대부로서의 관인적 취향과 섬세한 감각을 가진 문인이면서도 농촌사회에 전승되고 있는 민요와 설화에 깊은 관심을 가져 관인문학(官人文學)의 고답적인 자세를 스스로 파괴해버렸다.
    그의 《농구십사장(農謳十四章)》은 생활주변에서 채집한 농요를 모아 정리한 것으로 농민들의 애환과 당시 농정(農政)의 실상이 잘 묘사되었는데, 그의 시 중에서 그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형의 시집인 《진산세고 晋山世稿》를 편찬하였으며, 세조 때 《신찬국조보감 新撰國朝寶鑑》·《경국대전》의 편찬과 사서삼경의 언해, 성종 때는 《동문선》·《동국여지승람》·《국조오례의》·《국조오례의서례》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또한, 소나무와 대나무 및 산수화를 특히 잘 그렸는데, 현재 일본의 오구라문화재단(小倉文化財團)에 소장되어 있는 〈독조도 獨釣圖〉는 그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글씨로는 원각사비(圓覺寺碑)의 액전(額篆)과 그의 아버지와 강지돈(姜知敦)의 묘표의 액서(額書), 합천홍류동체필암각(陜川紅流洞泚筆巖刻) 등을 썼다.
    저서로는 성종의 명에 따라 서거정(徐居正)이 편찬한 《사숙재집 私淑齋集》 17권 이외에 《금양잡록 衿陽雜錄》·《촌담해이(村談解頤)》 등이 전하고 있다. 시호는 문량(文良)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네비게이션주소 
     관리자(연락처) 

       경기도 기념물 87호
       강희맹선생 묘 및 신도비
       경기도 시흥시 하상동 산2
       경기도 시흥시 하상동 367(재실앞 공원)
       진주강씨


     

     

     

     

     

     

     

     

     

     

    강희맹(姜希孟)선생 묘 및 신도비


    강희맹(姜希孟,1424~1483) 선생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농학자로 자는 경순(景醇), 호는 사숙재(私淑齋)ㆍ국오(菊塢)ㆍ만송강(萬松岡)ㆍ운송거사(雲松居士)ㆍ무위자(無爲子)이며,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세종 29년(1447)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처 좌찬성(左贊成)등을 역임했다. 저서에 『사숙재집(私淑齋集)』ㆍ『촌담해이(村談解이)』ㆍ『금양잡록(衿陽雜錄)』ㆍ『사시찬요초(四時纂要抄)』 등이 있고, 시호는 문량(文良)이다.

    묘역은 봉분을 중심으로 가운데 묘비가 있고, 그 앞에 상석(床石)과 향로석(香爐石)이 있으며, 한 단 아래 좌우에 문신석인(文臣石人) 한 쌍이 서 있다. 이 묘역에 배치된 석물들은 다른 묘역에 배치된 것보다 훨씬 간소하게 되어 있다. 상석 바로 앞에 놓이는 장명등(長明燈)도 없고 망주석(望柱石)도 없다. 이러한 것은 생시 선생의 청렴한 성품이 묘역 내에서도 나타나는 듯하다.

    신도비는 묘역에서 동쪽으로 약 5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2단의 기단석 위에 비신을 세워 놓았다. 기단석 사방에는 연판문(蓮瓣文)을 새기고 있으며, 비신의 뒷부분에는 두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형상을 사실적으로 조각해 놓았다. 한편 신도비는 성종 19년(1488)에 건립되었으며, 그 후 500년이 지난 1988년에 비각(碑閣)이 세워졌다. 신도비의 규모는 비신의 높이 1.95m, 폭 80cm, 두께 20cm로 대제학 서거정(徐居正)이 비명을 짓고, 글씨는 홍문관 박사(弘文館 博士) 박증영(朴增榮)이 썼으며 아울러 전자(篆字)를 하였다.

    묘역 주변에는 선생의 양부(養父)인 강순덕(姜順德, 1398~1459 이숙번의 사위. 사헌부 감찰) 묘를 비롯하여, 선생의 백씨 강희안(姜希顔, 1418~1464 인수부윤) 묘, 선생의 장남 강구손(姜龜孫, 1450~1505, 우의정) 묘, 손 강태수(姜台壽, 1479~1526 순천부사) 묘, 증손 강복(姜復, 1508~1529, 충좌위 부사용) 묘, 고손 강극성(姜克誠, 1526~1576 장단부사) 묘 등이 있다.

    묘역 입구에는 선생의 재사(齋舍)인 연성재(蓮城齋), 1965년 건립)가 있고, 묘역 앞에는 하지골(荷池谷, 연꽃 연못의 뜻)이란 마을이 있었다가 연성1지구 택지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996년에 폐동된 뒤 1999년에 대단위아파트 단지로 조성되자 하지골의 뜻을 지닌 연꽃마을로 명명되었다.

    <시흥시 문화관광 사이트에서 인용>

     

     

     

     

     

     

     

     

     

     

     

     

     

     

     

     

     

     

     

      

     

     

     

     





    ★ 강희맹, 강희안 가계도

     

    ▼ 강희맹선생 묘역... 앞쪽에 있는 것이 강희맹의 신도비각

    ▼ 강희맹선생 신도비각

    ▼ 강희맹선생 신도비

    ▼ 강희맹선생 묘역

    ▼ 강희맹선생 묘역 연못...

    ▼ 강희맹선생 묘 안내판

    ▼ 강희맹선생 묘

    ▼ 강희맹선생 묘... 망주석이 없고 문인석도 특이한 형태다..

    ▼ 강희맹선생 묘 전경...

    ▼ 강희맹선생 묘비

    ▼ 강희맹선생 묘 문인석... 연천 비무장지대에 있는 강희맹의 조부 강회백 묘, 부친 강석덕 묘 등에

    있는 문인석과 비슷한 형태이다.

    ▼ 강희맹선생 묘 후경... 넓은 들판의 앞쪽 명당이 보여야하는데 가로막혀 답답하다..

    ▼ 강희맹선생 묘 측면 모습...

    ▼ 강희맹선생 묘역 신도비들...

    ▼ 강희맹선생 신도비...

    ▼ 강희맹선생 재실 연성재...

    ▼ 연성재 옆모습...

    ▼ 강희맹선생 묘역의 특이한 문인석... 여자 문인석은 처음본다..

    ▼ 투구를 뒤집어쓴 형상...

     


    ◐야초 풍수강의 소개합니다.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평생교육원 풍수지리강의 수강생 모집(웰빙실전풍수, 매년 2월,8월 모집, 매주 목요일 10시~13시) 바로가기




    ■ 웰빙실용풍수 수강생 수시 모집(매주 목요일, 저녁 7시~8시30분)

    ☎성북문화원 : 02- 765-1611

    수강신청 바로가기


    ■ 웰빙생활풍수기초과정 수강생 모집(매주 수요일, 10시~12시)

    ☎월곡1동 주민센타 :02- 2241-5564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