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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산]최혼 선생묘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2. 8. 13. 10:00
최혼 선생묘
최혼 선생 묘는 안산시 감골도서관에 차를 주차한 후 찾아가야 한다. 항공사진으로는 묘역이 잘 정비되어
있어서 답사가 쉬울줄 알았는데.. 철조망이 견고하게 울타리로 처져있어서 접근이 안된다. 할 수 없이 울타리
한바퀴를 빙 돌면서 틈새로 사진을 찍어 이곳에 올린다.
철조망에는 관리인 연락처도 없고 그 어디에도 들어갈 방법이 없다. 할 수없이 담치기를 할 수 밖에 없는데
답사객을 범법자로 만들지 않으려면 개방하는 방안을 강구하기 바란다.
문화재로 지정된 묘역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아는데 최소한 연구하는 사람한테는
개방을 해야하지 않을까..? 안산시에 유난히 철조망친 묘역이 많은 것을 문화담당자는 알고 있는지...?
최혼 선생묘
양주 최씨(楊州崔氏)의 중시조(中始祖) 독선당(獨善堂) 혼(渾 9世)이 연산군 5년(1498) 무오 사화(戊午士禍)를 피해 父인 자준(自濬), 祖父인 담(潭)를 모시고 현 안산시 사동 감자골로 입향(入鄕)한 이래 이곳에서 별세한 6대 13기(27명)의 무덤과 시조로부터 상계(6世가지) 7명의 제단이 보존되어 있는 안산시 소재 최대 규모의 묘역이다.
서기 1500년대 초 감자골로 입향(入鄕)한 양주최씨(楊州崔氏)는 7, 8, 9世(獨善堂:혼渾)의 후손 두 계파가 490여년 동안 28世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으며 매년 10월 1일 이곳 묘역에서 시향제(時享祭)를 지냄으로서 전통적 유교식집성촌의 법도를 지켜왔는바 1976년 이래 반월공단 신도시개발로 광대했던 묘역의 상당 지역이 당국에 의해 수용(收用), 삭실(削失)되었다.
양주 최씨(楊州崔氏)의 시조 억(億)은 고려때 태사(太師)로 천거되어 공민왕 2년(1352) 호부상서 (戶部尙書)를 역임한 문경공(文敬公)으로 양주군으로 봉작 되었으며, 2世 연(淵)은 판도판서 (判圖判書), 3世 숙(淑)은 병조전서(兵曹典書), 4世 경운(慶雲)은 공조전서(工曹典書), 5世 항 (沆)은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를 지냈고, 6世 정안(井安)은 우정언부사직(右正言副司直)을 역임했고, 정연(井涓)은 김제군수(金堤郡守)를 지냈는바 이들 일곱분은 선영제단에 비(碑)를 세웠으며 안산 감자골로 입향하였으며 정걸(挺傑)은 절충장군(折衝將軍), 병자호란 때의 순절공신(殉節功臣)으로 사후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중직되었고 충장(忠壯)의 시호를 제수받았다.
이들 7世부터 12世까지의 거의 모두가 이곳 묘역에 봉분이 유존(遺存)되어 있을 뿐 아니라 비석, 상석, 망주석 등이 석물도 보전가치가 매우 크다..<안산시 문화관광사이트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안산시 향토유적 제10호 최혼 선생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 83-8 양주최씨 ▼ 최혼 선생 묘역.. 철조망 사이로 사진을 찍어서 정면 사진이 없음을 양해 바란다..
▼ 최혼 선생 묘 후경.. 아파트에 완전히 둘러싸여 있다.
▼ 최혼 선생 묘는 철조망에 둘러처져 있어서 빙 돌아가면서 사진을 찍었다.
▼ 최혼 선생 묘역에 있는 선조들의 단...
▼ 최혼 선생 묘 측경
▼ 최혼 선생 묘역
▼ 최혼 선생 묘
▼ 최혼 선생 묘역 아랫쪽에서 바라본 전경
▼ 최혼 선생 묘.. 정면사진이 없어서 측면에서 줌을 당겨 찍었다.
▼ 최혼 선생 묘.. 청룡쪽 담장사이로 찍었다.
▼ 최혼 선생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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