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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김해]수로왕비릉(金首露王妃陵), 파사석탑과 구지봉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4. 10. 16. 09:00

     

    수로왕비릉(金首露王妃陵)

     

    수로왕릉을 둘러보고 그냥 오기가 뭐해서 인근에 있는 왕비릉을 찾았다. 왕비릉은 김해박물관을 통해서 들어갔는데 그러다보니 구지봉을 자연스럽게 답사를 하게 되었다. 구지봉은 수로왕이 탄강한 자리로 매우 중요한 사적이다. 더운데 산을 정상까지 갔다 다시 돌아오면서 정상을 넘어와야해서 같이간 사람은 무척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쩌랴... 안내자가 잘 못하면 다들 개고생을 하는 것을....ㅎ

     

    수로왕비릉(金首露王妃陵)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에 있는 가야의 수로왕비의 능. 사적 제74호. 무덤의 지름은 약 16m, 높이는 약 5m. 능은 대형의 원형봉토분으로 특별한 시설은 없고, 주위에는 범위를 넓게 잡아 얕은 돌담이 돌려져 있다. 앞쪽에는 장대석으로 축대를 쌓고 능 앞에 '가락국수로왕비진주태후허씨지릉'(駕洛國首露王妃晋州太后許氏之陵)이라고 새긴 능비가 서 있는데, 이러한 시설물은 1647년(인조 25) 수축 때 세운 것이다. 수로왕릉과는 상당한 거리가 떨어져 있으며, 왕릉에 비하면 시설이 빈약하고 수로왕비릉이라는 확증은 없으나 오래 전부터 구전되어오고 있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사적 제74호

    문화재명칭

    수로왕비릉(金首露王妃陵)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문화재청

     

    ▼ 수로왕비릉(金首露王妃陵) 문화재 안내도 

    ▼ 수로왕비릉(金首露王妃陵) 안내판

    ▼ 수로왕비릉(金首露王妃陵) 전경... 우측 건물이 파사석탑보존각이다.

    ▼ 수로왕비릉(金首露王妃陵)

    ▼ 수로왕비릉(金首露王妃陵)은 아주 단촐하다.

    ▼ 수로왕비릉(金首露王妃陵)에서 바라본 조안산....

     

    파사석탑(婆娑石塔)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에 있는 가야시대의 석탑. 한문음으로 ‘파사석탑’이라고 표기하나 범어(梵語)로는 ‘바사석탑’이라고 하는데, 파(婆)는 범어로 바(bha)이며 그 뜻은 유(有)이고, 사(娑)는 발음이 사(sa)로서 그 의미는 체(諦 : 진실한 도리)이다. 그러므로 파사는 유체(有諦)로서, 일체의 지혜가 현증(現證)한다는 뜻이다. 현재 남아 있는 석탑은 4각형의 지대석 상면에 높직한 굄대가 있어 그 위에 여러 개의 부재(현재는 6석임)를 받고 있는데, 각 부재의 측면과 하면 등에서 다양한 조각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을 뿐 전체적으로 파손과 마멸이 심하다.
    최근에 각 부재를 검토하여 새로이 탑을 복원하였다고 하나 본래의 부재와 똑같은지는 세밀한 고증이 필요하다. 이 석탑에 관해서는 《삼국유사》 권 제3 탑상편 제4 금관성파사석탑조(金官城婆娑石塔條)에 다음과 같이 보이고 있다.
    “금관성 호계사(虎溪寺)의 파사석탑은 옛날 이 읍(邑)이 금관국으로 되어 있을 때, 세조 수로왕의 비(妃) 허황후(許皇后) 황옥(黃玉)이 동한(東漢) 건무(建武) 24년 갑신(甲申)에 서역의 아유타국(阿踰陁國)에서 싣고 온 것이다. 처음에 공주가 어버이의 명을 받들고 동쪽으로 오려고 하다가 파신(波神)의 노여움에 막혀서 할수없이 돌아가 부왕(父王)에게 아뢰니 부왕이 ‘이 탑을 싣고 가라.’ 하여 무사히 바다를 건너 남쪽 물가에 와서 닿았는데, 비범(緋帆 : 붉은색의 배)·천기(茜旗 : 붉은 색의 기)·주옥(珠玉)의 아름다움이 있었으므로 지금도 이곳을 주포(主浦)라 한다. …(중략)… 탑은 사면으로 모가 나고 5층인데, 그 조각이 매우 기이하며 돌에는 조금씩 붉은 반점이 있고 석질이 매우 부드럽고 특이하여 이 지방에서 구할 수 있는 돌이 아니다. ”
    이와 같은 내용에서 파사석탑의 존재를 알 수 있는데, 호계사에 있던 탑을 조선시대에 이르러 김해부사로 있던 정현석(鄭顯奭)이 “이 탑은 허황후께서 아유타국에서 가져온 것이니 허황후릉에 두어야 한다. ”고 하여 현재의 자리에 옮겨놓았다는 것이다.
    한편, 이 탑에 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2 김해도호부 고적조(古蹟條)에 “婆娑石塔 在虎溪邊 凡五層 其色赤斑 其質良脆 彫鏤甚奇 世傳許后自西域來時 船中載此塔 以鎭風濤(파사석탑 재호계변 범5층 기색적반 기질양취 조루심기 세전허후자서역내시 선중재차탑 이진풍도)”라 보인다.《삼국유사》에서 5층탑의 조각이 매우 기이하다고 표현한 것과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 내용이 일치하나 현존 실물이 크게 파손되어 있어 매우 유감스럽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자료 제227호

    문화재명칭

    파사석탑(婆娑石塔)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김해시청

     

    ▼ 파사석탑(婆娑石塔) 보존각... 수로왕비릉 앞에 위치

    ▼ 파사석탑(婆娑石塔) 문화재 안내판

    ▼ 파사석탑(婆娑石塔) ... 무척 특이하다.

    ▼ 파사석탑(婆娑石塔)은 수로왕비릉(왼편) 앞쪽에 위치

    ▼ 수로왕비릉 앞 잔디밭

     

    김해 구지봉(龜旨峰)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에 있는 산. 구지봉(龜旨峰)은 시의 중심부로부터 북쪽으로 약 2㎞ 정도 떨어져 있는데, 봉(峰)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낮은 동산에 해당된다. 그러나 가야의 건국설화로 인하여 구지봉은 역사적인 봉우리로 자리 잡고 있으며, 국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구지가(龜旨歌)」의 산실인 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구지봉은 봉우리의 모양이 넓은 원형으로, 마치 거북이가 엎드린 형상과 같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가야 건국설화에 따르면, 가야 땅을 다스리던 아홉 추장이 구지봉에 모여 제사를 지내는데, 문득 하늘에서 알 여섯 개가 담긴 금합이 붉은 실에 매달려 내려왔다. 이튿날에 그 알 여섯 개가 차례로 깨어지며 아이가 하나씩 나왔다고 한다. 그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자라나서 열흘째가 되자 모두 키가 아홉 자가 넘는 어른이 되었으며, 그 가운데 맨 먼저 나온 이가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이 되었다고 전한다.
    산봉우리 동쪽에는 수로왕비 허왕후릉(許王后陵)이 자리 잡고 있고, 구지봉 정상에는 1976년에 세운 여섯 개의 알과 아홉 마리의 돌거북으로 구성된 천강육란석조상(天降六卵石造像)이 있다. 그 북쪽 5m쯤에는 1908년에 건립된 ‘대가락국태조왕탄강지지(大駕洛國太祖王誕降之地)’라고 새겨진 비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거북의 목에 해당하는 부분에 고의적으로 도로를 개설하여 거북 모양의 원래 모습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김해 구지봉은 2001년에 사적 제429호로 지정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사적 제429호

    문화재명칭

    김해 구지봉(龜旨峰)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문화재청

     

    ▼ 김해 구지봉(龜旨峰) 문화재 안내판 

    ▼ 수로왕비릉에서 김해 구지봉(龜旨峰) 가는길...

    ▼ 김해 구지봉(龜旨峰) 표석

    ▼ 구지봉(龜旨峰)에 있는 구지가(영대왕가비) ...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 구지봉(龜旨峰) 정상에 있는 지석묘..

     ▼ 구지봉(龜旨峰) 지석묘...

    ▼ 구지봉(龜旨峰) 정상부근에 있는 고인돌... 덮개돌 위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 아마도 석등의 지대석으로

    썼던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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