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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성북)비공개지역인 성락원(城樂園)을 오랫만에 찾아서...
    답사는 즐거워/문화재답사 2017. 11. 7. 09:00

    성락원 (城樂園)을 다시 찾은 감회


    예전에 성락원을 딱 한 번 방문한적이 있는데 그 때는 정말 우연히 들어갔었다. 이번에 성북동문화재야행 행사의

    일환으로 성락원을 개방해서 기쁜 마음으로 찾았다. 이번 방문을 계기로 지난 번 다녀온 답사기를 확인해 봤더니

    2006년에 다녀왔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했는데 이번에 찾아보니 내가 생각했던 곳과 많이 차이가 난다. 아마도 내

    기억이 잘못 되었었나보다.

    성락원은 입구에 쌍류동천이라는 각자가 새겨져 있어서 이곳이 두 계곡이 만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입구를

    들어서면 앞이 산으로 막혀있는데 이는 가산으로 인공으로 조성한 조산이다. 이를 용두조산 또는 용두가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용두조산을 돌아 들어가면 드디어 내원 정원이 나타나는데 계곡물이 잔잔히 흐르는데 인공으로 폭포를 조성하였고

    작은 소를 만들어 물을 가두었다. 그곳에 둥근물확이 있는데 이는 하늘의 달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곳에 추사선생의

    장빙가 각자가 새겨져 있고 다른 몇개의 각자들도 보인다.

    동쪽에 있는 집이 의친왕이 살았던 곳이라고 전한다. 사대부가의 집은 담장의 높이를 적절하게 조절하여 앞쪽의 

    정원을 바라보게 하였고 또한 담장 사이로 틈을 만들어 정원이 보이도록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윗쪽으로 오르면 또다른 연못이 나타나는데 그곳에는 비교적 큰 정자가 있다. 바로 송석정이다. 이번에 그 안을 

    들어가는 행운을 얻었는데 응접세트가 내 눈길을 끌었다. 이곳에서 창가로 바라보니 멀리 남산까지 한 눈에 들어

    온다.

    성락원을 그토록 관람하기를 바랬는데 이번에야 이루어져 참으로 반가웠다. 이번에도 참가비 1만원씩을 받았는데

    앞으로도 안내자를 동반해서 상시 개방하는 방안을 강구해줬으면 한다. 같은 성북동에 있는 한국가구박물관 처럼

    예약제로 운영해도 될 것 같다.


    성락원 (城樂園)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이었으나, 의친왕 이강(1877∼1955)이 35년간 별궁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물이 흐르는 경치에 따라 세 개의 공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자연 지형으로 앞뜰, 안뜰, 바깥뜰로 나눌 수 있다. 앞뜰은 두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쌍류동천과 안뜰 앞을 막아 아늑하게 감싸 만든 용두가산이 있다. 물줄기 속 암벽에 행서체로 새긴 ‘쌍류동천’이란 글은 성락원의 지맥을 보호하는 뜻도 있다고 한다. 또한 쌍류동천 주위와 용두가산에는 200∼300년 되는 엄나무를 비롯하여 느티나무, 소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다래나무, 말채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어 안뜰과 성락원 바깥을 가려주는 구실을 하고 있다. 

    안뜰은 영벽지와 폭포가 있으며 바깥뜰은 송석과 연못이 있는 지역이다. 서쪽 아래 지역에 늪이 있고, 북쪽에는 물길을 파서 인공폭포를 만들었다. 늪의 서쪽 암벽에 ‘장빙가(檣氷家)’라고 새긴 글씨는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의 것이다.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져 그 아름다움을 맘껏 뽐내고 있는 성락원은 조선시대 서울 도성 안에 위치한 몇 안되는 별서정원의 하나로 가치가 크다.

    <문화재청에서 인용>


    성락원 (城樂園)


    명승 제35호. 지정 면적 1만 4407㎡. 성락원은 뒤에 산등성이를 등지고 좌우에 청룡·백호의 산줄기가 벌려선 형국에 자리잡고 있다.

    성락원 입구에 들어서면 두 줄기 계류가 하나로 모이는 산문(山門) 같은 계곡이 있으며, 여기에 ‘雙流洞天(쌍류동천)’이라는 글자가 계류 암벽에 새겨져 있다.

    쌍류동천 안으로는 용두가산(龍頭假山)을 만들어 성락원이 밖에서 보이지 않는다. 이 용두가산은 성낙원 내원(內園)을 아늑하게 감싸서 깊이를 주기 위해 만든 인공조산(人工造山)으로 200∼300년 된 느티나무·음나무·참나무 숲이 울창하다.

    내원에는 계류의 암벽 밑에 소(沼)를 조성하였다. 이 소는 장축이 16m, 단축이 약 12m이며, 물 깊이는 약 1.5m이다. 소의 주위는 자연암벽과 암반으로 이루어졌는데 물이 흘러내리는 북쪽 암벽에는 인공으로 수로를 파고 3단의 폭포를 조성하였다.

    제일 위의 폭포는 낙차가 15㎝로, 직경 30㎝, 깊이 15㎝의 둥근 석구(石臼: 돌절구)에 떨어진다. 중간폭포는 낙차가 30cm로 역시 같은 크기의 석구에 떨어진다.

    제일 밑단의 폭포는 낙차가 150㎝로 가장 큰데, 직경 80㎝, 깊이 20㎝의 석구에 떨어졌다가 소 속으로 넘쳐 흘러들어간다. 폭포로 떨어지는 3단의 물줄기는 생동감 있는 수경(水景)을 연출하고 고요한 계곡에 요란한 물소리를 낸다.

    이 폭포 옆 바위에 ‘靑山壹條(청산일조)’라는 전서체 각자가 있으며, 소의 서쪽 암벽에는 행서체의 ‘檣氷家 阮堂(장빙가 완당)’이 새겨져 있는데, 장빙가란 겨울에 고드름이 매달린 집이란 뜻으로 김정희(金正喜)가 썼다.

    이 장빙가 각자가 있는 암벽 위에 “影碧池 海生(영벽지 해생)”, “百泉會不流 爲沼碧闌頭 自吾得此水 少作江湖遊 癸卯五月 孫文鶴書(온갖 샘물을 모아 고이게 하니 푸른 난간머리에 소가 되었네. 내가 이 물을 얻은 뒤부터 약간의 강호놀이를 하네. 계묘 5월 손문학 씀).” 이라는 각자가 있다. 영벽지란 세 글자는 초서체로 썼으며, 해생이란 호를 가진 사람이 오언시를 해서체로 쓴 것이다. 계묘는 1843년(헌종 9)으로 추정된다. 이로써 성락원의 소의 명칭이 ‘영벽지’임을 알 수 있다.

    이 영벽지 각자 위의 바위에 전서체로 내리쓴 또 하나의 각자가 있는데, 원문은 “明月松間照 靑泉石上流 靑山數疊 吾愛吾盧 (밝은 달은 소나무 사이에 비치고 맑은 샘물은 돌 위에 흐르며 푸른 산이 몇 겹 싸여 나는 내 농막을 사랑한다).” 이다.

    영벽지 소 속에는 괴석 하나를 물 속에 배치하여 놓았으며, 이 영벽지 동쪽 언덕 위에 변형된 고가 한 채가 남아 있는데, 이 집은 원래 농막의 본채로 이강(李堈)이 살았다 한다.

    이 집에서 숲 속의 돌계단을 오르면 또 하나의 못[池]이 영백지 위에 있다. 못 동쪽에는 근래 지은 ‘송석정(松石亭)’이란 누(樓)가 있으며, 못 북쪽 계류가에 ‘松石(송석)’이란 각자가 있어 원래 이 못가 바위 사이에 큰 소나무들이 울창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못으로 흘러내리는 계류는 중간중간에 작은 폭포를 이루기도 하며, 상류에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집수하는 기능의 못이 하나 더 있다. 성락원은 산의 계류를 이용하여 상·중·하에 세 개의 연못을 만든 곳으로 성락원 내에는 좋은 샘물도 있었으나 지금은 많이 오염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명승  제35호

    문화재명칭

    성락원 (城樂園)

    소재지

    서울 성북구 선잠로2길 47 (성북동)

    관리자(연락처)

    (주)제남기업, 성북구청

     

    ▼ 성락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송석정... 

    ▼ 성락원 위성사진과 시설배치도(성락원의 후원쪽은 들어가지 못한다)

     

    ▼ 성락원 입구 

    ▼ 성락원을 들어서면 바로 쌍류동천 각자가 나타난다.

    ▼ 쌍류동천 각자에서 바라본 정문

    ▼ 성락원이 10년만에 개방한다해서 많은 답사객들이 신청했다.

    ▼ 두 계곡물이 만나는 지점...

    ▼ 성락원 영벽지에서 내려오는 물...

    ▼ 성락원 영벽지를 오르며 뒤돌아서서 찍었는데 역광이라 엉망이다. 우측의 산이 인공으로 조성한 산이다.

    ▼ 성락원 용두조산(왼쪽)은 수구를 막기 위한 가산이다.

    ▼ 성락원 영벽지에서 바라본 용두조산...

    ▼ 성락원 내원에 해당하는 영벽지 전경

    ▼ 영벽지에는 인공으로 삼단폭포를 조성하였고 그 옆에 청산일조(靑山壹條)라 새겨져 있는데 아마도 이곳이 소나무로 울창하게 뒤덮여 있어서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 성락원 내원의 본체

    ▼ 성락원 영벽지와 본체

    ▼ 성락원 본체

    ▼ 성락원 내원의 각자... 윗쪽으로 송석정이 보인다.

    ▼ 성락원 영벽지 연못

    ▼ 연못 가운데 둥그런 돌확이 있는데 이는 달을 상징한다고 한다. 

    ▼ 성락원 영벽지 암벽에 추사가 쓴 장빙가(檣氷家)란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장빙가란 겨울에 고드름이 매달린 집이란 뜻이다.

    ▼ 성락원 본체의 담장을 빗살로 터놓은 것은 본체에서 자연을 즐기려는 선비들의 혜안이다.

    ▼ 성락원 본체

    ▼ 성락원 가을이 무르익었다.

    ▼ 이 건물이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추후 복원될 때 철거해야 한다고 한다.

    ▼ 성락원 후원에 해당하는 곳... 이 위쪽으로 약수터와 집 한채가 있는데 개방을 하지 않는다.

    ▼ 송석정 앞에서 바라본 내원

    ▼ 성락원 후원에서 바라본 남산...

    ▼ 성락원 후원의 상징 송석정과 연못...

    ▼ 성락원 송석정은 옆으로 들어간다.

    ▼ 송석정 가운데 문으로 본 연못...

    ▼ 송석정 누각에서 본 외부 풍경...

    ▼ 송석정으로 내려오는 산줄기...

    ▼ 송석정이란 이름을 얻은 송석(松石) 각자... 

    ▼ 송석정 내부... 응접실.

    ▼ 성락원에서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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