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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강진]다산(茶山) 사의재(四宜齋)에서 영랑생가(永郞生家)까지
    답사는 즐거워/문화재답사 2019. 7. 10. 09:00


    다산(茶山) 사의재(四宜齋)에서 영랑생가(永郞生家)까지


    강진을 가게 되면 볼거리 먹거리가 많아 항상 고민했었다. 어디를 가야할까? 어쩌면 어디를 빼고 가야할까? 이런 고민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꼭 가야할 곳을 나름 정해놓고 보면 항상 가는 곳만 가게 된다. 이번에는 강진 패키지 여행에 합류해서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돌아다닐 수 있어서 좋기는 했지만 패키지 여행 업체에서 자기들 맘대로 일정을 바꾸고 하여 나같이 문화재 위주로 돌아다니는 사람에게는 아주 기분 언짢은 여행이 되었다.

    아무튼 그래서 다산 사의재와 영랑 생가는 한밤중에 찾았는데 문을 닫아서 들어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건데도 여행사 측은 한마디 사과도 없다. 그냥 둘러보는 정도로 만족하라는 얘기다. 나 또한 까탈스럽다는 소리 듣기 싫어 답사기도 대충 그냥 올리니 이해 바란다.ㅎ  

    강진군에서 나름대로 다산 유적지 등 문화에 대해 많은 노력을 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사의재에서 영랑생가에 이르는 골목에 다산 유배지에 대한 안내와 시기별 다산의 일대기를 적어 놓은 것은 신선해 보였다. 사의재에서 군청을 거쳐 영랑생가 까지는 대략 20여분 소요되는데 조금 지루할까 싶으면 벽화 형태로 다산 일대기가 나타나 지루함을 모르고 가게 된다. 아쉬운 것은 시간이 없어 자세히 둘러보지 못하고 주마간산으로 대충 보고 지나친 것인데 글을 쓰려니 어려움이 따른다. 오래 전에 다녀온 곳들이고 최근에도 몇몇 곳은 다녀온 곳이라 글을 쓰는 것도 별로 내키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야 사진 몇 장 올린다.

     

    사의재(四宜齋)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丁若鏞)이 전라남도 강진에 유배되었을 때 머물던 주막집이다.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되었을 때 주막집 주인 할머니의 배려로 4년 동안 기거하며 《경세유표(經世遺表)》 등을 집필하고 제자들을 교육하던 곳이다. 사의재란 '네 가지를 마땅히 해야 할 방'이라는 뜻으로, 네 가지는 곧 맑은 생각과 엄숙한 용모·과묵한 말씨·신중한 행동을 가리킨다. 2007년 10월 26일 전라남도 강진군에서 다산실학 성지(聖地)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강진읍 동성리의 옛터에 복원하였다. 대지면적 1,156㎡에 주막채·바깥채·초정(草亭) 등으로 이루어졌다. 강진군에서 위탁한 문화해설사 7명이 주막을 운영하면서 문화관광 해설을 제공한다. 300여m 거리에 시인 김영랑(金永郞)의 생가가 있다.

    <두산백과에서 인용>


    강진영랑생가(康津永郞生家)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에 있는 20세기 초에 지어진 김영랑(金永郞, 1903∼1950)의 생가. 영랑생가는 현재 본채와 사랑채, 그리고 문간채 등 3동만 남아 있고, 주변에는 영랑의 시어(詩語)가 되는 모란밭이 있다.

    생가의 본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인 초가집이지만 뼈대가 굵은 네모기둥을 사용한 규모가 큰 집이다. 상량문에 “광무 10년 병오 4월(光武十年丙午四月)…”이라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 집의 건립연대는 1906년임을 알 수 있다. 사랑채는 흔히 안채 앞에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영랑생가는 옆으로 길게 위치한다.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오히려 본채보다도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특이한 것은 전면과 양측 2칸에 ㄷ자형으로 마루를 깔았으며 우측 1칸에는 마루 앞에 나지막한 난간을 설치하였는데 안상형(眼象形) 궁창(문의 하부에 낮게 끼워 댄 널)을 뚫었다. 창문은 이중창문으로 내창은 아자(亞字)살 모양의 미서기창이며 외창은 띠살 모양의 여닫이창이다. 이 사랑채는 1930년대 건물로 전해지고 있다.

    영랑의 본명은 김윤식(金允植)으로 1903년 바로 이곳에서 태어났다. 서울의 휘문고보를 거쳐 일본 동경 청산학원에서 수학한 후 귀국하여 박용철(朴龍喆) 등과 교류하면서 최초로 『시문학』 동인지를 만들면서부터 작품을 발표하였다. 영랑은 일제치하에서 설움 받은 내용을 시로 표현하고 자신의 젊은 정열과 민족의 기상을 은연중에 문학을 통해서 불살랐던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거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가옥은 건축적 의미를 지녔다기보다는 영랑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하겠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중요민속문화재 제252호

    문화재명칭

    강진영랑생가(康津永郞生家), 사의재(四宜齋)(문화재 미지정)

    소재지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영랑생가길 15,  강진읍 사의재길 27

    관리자(연락처)

    강진군청

     

    다산(茶山) 사의재(四宜齋)에서 영랑생가(永郞生家)까지... 사의재(주막집)는 옛 객관이 있던 곳에 있었다고 한다. 객관의 남문인 청조루를 복원하였다.

    ▼청조루 안내판

    ▼객관 안쪽으로 시설들을 복원하였는데 운치가 있다.

    ▼사의재는 객관의 옆에 위치하는데 객관 안쪽으로 우물과 몇몇 건물을 복원하였다.

    ▼주막집 부근...

    ▼전남 강진에서의 다산(茶山)실학 4대 성지를 잘 정리해 놓았다.

    다산(茶山)의 남도유배길을 알기 쉽게 정리해 놓았다.

    다산(茶山)이 강진으로 유배온 처음에 거쳐한 곳... 즉 사의재 터이다.

    다산(茶山)이 기거하던 사의재 안내판 

    다산(茶山)이 기거한 주막집... 주모상이 세워져 있다. 

    ▼사의재는 주막집 한쪽 끝방이다. 

    ▼사의재(四宜齋) 현판은 다산(茶山)의 글자를 집자하여 새긴 것이라 한다.

    ▼사의재(四宜齋) 주변 풍경

    ▼사의재(四宜齋)와 연못... 

    ▼사의재(四宜齋) 앞 연못과 정자 

    ▼사의재(四宜齋)에서 영랑생가로 가는 길목에 벽화처럼 새겨진 정약용 관련 작은 공원...  

    ▼사의재(四宜齋)의 뜻을 잘 풀이해 놓았다. 

    ▼다산의 유배 18년을 정리해 놓은 다산일대기... 풀이 덮여있는데 오히려 운치는 더 있다. 

    ▼다산의 유배18년 시작... 

    ▼영랑생가 가는 길목에 있는 강진군청 앞마당의 보호수와 선정비...  

    영랑생가(永郞生家)에 도착했으나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너무 늦게 도착... 

    ▼담장 너머로 보이는 영랑생가(永郞生家) 

    영랑생가(永郞生家)는 보은산 줄기를 타고 내려와 북산에서 터를 감싸주는 길지에 위치하는 곳이다. 인물이 나오는 곳이다.  

    영랑생가(永郞生家) 위쪽에는 세계모란공원이 위치해 있다.

    영랑생가(永郞生家) 앞에는 시문학파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영랑 동상도 있다.

    ▼시문학파 9인의 이름과 동판도 같이 새겨져 있다. 

    ▼시문학 제1호가 기념탑으로 돌에 새겨져 있다. 다음에는 영랑생가(永郞生家) 위주로 강진 답사를 진행해볼 예정이다. 강진에서 맛보는 한정식은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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