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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광주]이손(李蓀) 묘역 및 신도비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20. 3. 28. 09:00

    호간공(胡簡公) 한산군(漢山君) 이손(李蓀) 묘

     

    경기 광주는 광주이씨 본향이다. 내 블로그에도 광주이씨 묘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주로 성남, 서울 강동구 등에 있고, 근자에 광주이씨 시조 이당선생 묘를 영천까지 가서 보고 왔다. 풍수인으로 기본적으로 갔다와야 했는데 한번 기회를 놓치면 가기가 쉽지 않게 된다. 광주이씨 시조 묘는 누가봐도 좋은 곳이다. 반면에 시조비 묘는 하남시에 있는데 묘 앞쪽으로 아파트가 가로 막았고 너무 높아 능압이 우려된다. 오래 된 묘라서 괜찮다고 생각하면 안될 일이다. 아무튼 광주이씨는 조선조에서 크게 일어난 가문이다보니 여기저기서 답사기로 쓰게 된다.

    이손 묘는 한겨울에 찾았었는데 글을 올릴 때 뭔가 쫒겼는지 답사기를 빼놓고 본문만 올렸나본데 오늘 후손이 댓글을 써서 들어와보고 그동안 다음블로그의 형식이 바뀌면서 기존 글들이 깨지고 색갈이 없어지고 한 것을 수정하면서 답사기도 다시 올려드린다.

    잘 정돈된 묘역과 재실 등을 돌아볼 때면 후손들의 정성이 느껴지곤 한다. 이곳은 터로서 썩 좋은 곳이 아님에도 후손들의 정성은 최고라고 느껴지는 곳이다. 이손선생의 묘는 능선 끝자락에 매달려 있는 듯이 있어 필시 바람의 영향을 받게 되어 좋은 곳이 못된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후손들이 조상의 묘를 없애고 그 땅을 팔아먹는 가문들도 꽤나 많은 세상이다보니 숭조애족하는 집안들을 보면 본받아야 하고 널리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내용의 일부를 몰랐었는데 후손이 댓글로 알려주어 첨가하여 수정하였다.

     

    호간공(胡簡公) 한산군(漢山君) 이손(李蓀)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자방(子芳). 형조좌참의 이양중(李養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우생(李遇生)이다. 아버지는 평안도절도사 이수철(李守哲)이며, 어머니는 관찰사 이맹상(李孟常)의 딸이다.1459년(세조 5)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학문은 물론 활쏘기·말타기를 잘 하여 왕명으로 선전관이 되었다. 1470년(성종 1)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조정랑·도총부경력(都摠府經歷)을 역임하고, 김해부사·판교(判校)를 거쳤다.1492년 장례원판결사, 이어 충청도·함경도 절도사, 충청도·황해도·전라도 관찰사, 부제학·우부승지를 지냈다. 1504년(연산군 10) 한성부좌윤·우윤, 이조·예조참판을 거쳐, 형조·병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 때 공을 세워 정국공신 3등으로 한산군(漢山君)에 봉하여지고, 우참찬으로 승진하였다.1508년 좌참찬 재임시 재덕(才德)이 없고 늙음을 핑계로 치사(致仕)를 요청하였으나 궤장(几杖)을 하사받고 그대로 유임되었다. 그 뒤 우찬성·좌찬성을 역임하고, 1512년 일본의 화호(和好) 요청을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1513년 한산부원군(漢山府院君)에 진봉되고 판중추부사를 지냈다.만년에는 영의정 유순(柳洵), 판서 안침(安琛) 등 남학(南學)의 친우들과 구로회(九老會)를 만들어 서로 왕래하며 즐겼다. 시호는 호간(胡簡)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묘는 신월리 두월마을 광주이씨 세장지 내 최하단에 남서향하고 있다. 묘의 형태는 배 정경부인 이씨의 묘가 옆에 별도로 조성되어 있는 쌍분으로 높이 125㎝가량의 호석을 7각 2단으로 둘렀다. 3단의 계체석 구조로 다수의 석물을 적절하게 배치하였다. 각 봉분 중앙에 묘표∙혼유석∙상석∙향로석과 쌍분 중앙에 장명등 및 좌우에 망주석∙문인석과 묘소 하단에 신도비를 갖추고 있다. 문인석186㎝은 복두공복형으로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준수하다. 얼굴 부분이 60㎝인 3등신의 신체비례이며 턱 밑의 갓끈 등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엄지를 치켜든 양손은 깍지낀채 홀44㎝을 마주잡고 있다. 허리에 찬 관대는 후면의 한쪽 끝이 길게 늘어진 야대이다.묘표는 방부하엽형이다. 비신은 백색을 띠며 비문이 전면에만 있다. 종3열로 '秉忠奮義靖國功臣崇祿大夫議政府左贊成兼判義禁府事漢山君贈謚胡簡公李君之墓'라 새겨져 있다. 총높이 167㎝로 비좌42×78×50㎝, 비신 86×44×16㎝, 하엽 39×54×20㎝이다.신도비는 귀부이수형으로 묘소 아래에 있으며 주위 석재 난간을 둘러놓았다. 귀부는 입을 다문 채 몸통에서 41㎝가량 얼굴을 내밀고 있으며 등에는 'ㅇ'형태의 귀갑문을 장식하였다. 비신은 백색 대리석제로 전∙후 2면에 비문이 있다. 비제는 '有明朝鮮國秉忠奮義靖國功臣崇祿大夫議政府左贊成兼判義禁府事漢山君贈諡胡簡公神道碑銘幷序'이다. 전액은 비신 상부의 전면에 횡으로 '胡簡公神道碑'라 새겨져 있다. 비문은 이행(李荇)이 찬하고, 김희수(金希壽)가 서하였다. 입석연대는 1520년(중종 15)이다. 이수는 앞면에 구름속에서 여의주를 다투는쌍룡이 생동감있게 조각되어 있는데, 굵고 날카로운 4개의 발톱을 한 쌍룡 중 왼쪽의 것은 입을 다물었으며 오른쪽의 것은 입을 크게 벌렸다. 뒷면에는 단룡농주(單龍弄珠)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는데,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총높이 263㎝로 귀부46×96×116㎝, 비신164×70×21㎝, 이수53×76×28㎝이다.<위키백과에서 발췌>

     

    문화재지정  광주시 향토문화유산 제9호
    문화재명칭 이손(李蓀) 묘역 및 신도비
    소재지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신월리 산22-1(사우 :신월리 172-1)
    관리자(연락처) 광주이씨석탄공파종중

     

    ▼ 이손(李蓀) 묘역 및 신도비 안내판

    ▼ 이손(李蓀) 묘역 위성사진

     

    ▼ 이손(李蓀) 묘역 입구에 있는 석탄공 이양중 비각

    ▼ 이손(李蓀) 묘역 입구에 있는 석탄공 이양중 비문

    ▼ 이손(李蓀) 묘역 입구에 있는 석탄공 이양중 구 비갈

    ▼ 이손(李蓀) 사당 한산재...

    ▼ 이손(李蓀) 묘역에서 내려다본 사당

     

    ▼ 이손(李蓀) 묘역 및 신도비 안내판

    ▼ 이손(李蓀) 신도비각

    ▼ 이손(李蓀) 신도비

    ▼ 이손(李蓀) 신도비 귀부

     

    ▼ 이손(李蓀) 묘역 원경

    ▼ 한산군(漢山君) 호간공(胡簡公) 이손(李蓀) 묘 오르는 길 

     

    ▼ 한산군(漢山君) 호간공(胡簡公) 이손(李蓀) 묘 측경

     

    ▼ 한산군(漢山君) 호간공(胡簡公) 이손(李蓀) 묘 전경

     

    ▼ 한산군(漢山君) 호간공(胡簡公) 이손(李蓀) 묘

     

    ▼ 이손(李蓀) 묘

     

    ▼ 이손(李蓀) 묘표... 끝에 이공지묘(李公之墓)라 쓰는게 일반적인데 이군지묘(李君之墓)라 하였다. 어떤 이유가 있을까?(후손께서 보내준 내용을 보니 시호를 쓰는 경우 호간공이공지묘라 하면 공(公)이 중복되는데 중복을 막고자 군(君)을 썼다고 알려왔네요)

    ▼ 이손(李蓀) 배위 정경부인 이씨(용양위성호군 이계번의 따님으로 나오는데 본관은 잘 나오지 않는다.)-후손이 알려온 바 배위는 경주이씨라 함

     

    ▼ 이손(李蓀) 배위 정경부인 이씨 묘표

     

    ▼ 이손(李蓀) 묘 백호쪽 석물...

     

    ▼ 이손(李蓀) 묘 청룡쪽 석물

     

    ▼ 이손(李蓀) 묘역 후경... 특이하게 7각으로 둘레석이 만들어져 있다.

     

     

    ▼ 병조참판 양성이씨 이한 묘... 병조참판(兵曹參判) 이한(李澣)은 한원군(漢原君) 이수철(李守哲)의 처 조부(祖父)인데, 즉 이한(李澣)의 장남 이맹상(李孟常)의 딸과 한원군(漢原君) 이수철(李守哲)이 결혼하였다. 이맹상(李孟常)의 아들이 세종때 천문학자 이순지이다. 이순지가 이손(李蓀)의 외삼춘이 된다. 시기적으로 봐서 원래 이곳의 주인은 양성이씨 이한(李澣)이었을 것이다. 이곳의 지세를 봐도 이한(李澣) 묘가 정혈처로 판단된다.

    ▼ 병조참판 양성이씨 이한 묘갈... 언뜻 보면 광주이씨 묘역에 양성이씨가 들어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기적으로 보면 이한 묘가 먼저이니 오히려 처가 묘역에 광주이씨가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 병조참판 양성이씨 이한 묘 후경

     

     

    ▼ 이손(李蓀) 장남 이수언(李粹彦) 묘 전경

     

    ▼ 이손(李蓀) 장남 이수언(李粹彦) 묘표

     

    ▼ 이손(李蓀) 장남 이수언(李粹彦) 묘갈

     

    ▼ 이수언(李粹彦) 묘 백호방 석물... 건너편 묘는 이수언 장남 이경(李經) 묘이다.

    ▼ 이수언(李粹彦) 묘 청룡방 석물

     

    ▼ 이손(李蓀) 장남 이수언(李粹彦) 묘 후경

     

     

    ▼ 한산군(漢山君) 이손(李蓀)의 부친 이수철(李守哲) 묘 전경

     

    ▼ 한산군(漢山君) 이손(李蓀)의 부친 한원군(漢原君) 이수철(李守哲) 묘갈... 이 묘갈의 표기도 좀 이상하다. 남편의 묘라는 표기가 없고 직책 뒤에 흔히 제사 지방(紙榜)에서 쓰는 부군(府君)이라 적은 것은 처음보는 것이다. 

    ▼ 한원군(漢原君) 이수철(李守哲) 묘갈

     

     

    ▼ 묘역의 맨 위쪽에는 광주이씨석탄공파 파조이신 석탄공 이양중(李養中)의 묘가 근자에 옮겨왔다.

    ▼ 석탄공 이양중(李養中) 묘갈

     

    ▼ 한산군(漢山君) 이손(李蓀) 아우 이소(李艸+昭) 묘 전경

    ▼ 한산군(漢山君) 이손(李蓀) 아우 이소(李艸+昭) 묘갈

    ▼ 한산군(漢山君) 이손(李蓀) 아우 이소(李艸+昭) 묘갈

    ▼ 이소(李艸+昭) 구 묘갈

    ▼ 이소(李艸+昭) 묘 석물

    ▼ 이소(李艸+昭) 묘는 입구 재실 뒤편에 있다.

    ▼ 이소(李艸+昭) 묘 후경

     

    ▼ 이수언(李粹彦) 아들 이경(李經) 묘 전경.

    ▼ 이수언(李粹彦) 아들 이경(李經) 묘표

    ▼ 이수언(李粹彦) 아들 이경(李經) 묘 문인석

    ▼ 이수언(李粹彦) 아들 이경(李經) 묘 청룡방 문인석은 수리했는데 정성이 가득하다.

    ▼ 이수언(李粹彦) 아들 이경(李經) 묘 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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